가볍고 따뜻해서 겨울옷으로 인기인 패딩. 그런데 제작 과정의 ‘동물학대 논란’도 인기만큼 뜨겁습니다. 패딩 충전재로는 오리털(덕다운)과 거위털(구스다운)이 많이 쓰입니다. 오리와 거위들은 ‘산 채’로 털을, 그러니까 생살을 뜯깁니다. 그 고통 때문에 쇼크로 죽기도 하고요. 비거니즘(Veganism)은 채식뿐 아니라 동물의 희생을 필요로 하는 물건을 거부하는 삶의 방식까지 포함합니다. 패딩, 테이크아웃잔, 일회용 식기, 콘돔, 치약 등 일상의 ‘비건 아이템’을 소개합니다.
■ 동물학대 없이 만든 ‘비건 패딩’
다운(down)은 새의 목부터 가슴, 겨드랑이에 난 부드러운 솜털을 이른다. 솜털은 몸을 덮고 있는 깃털보다 잔털이 훨씬 많다. 이 잔털이 더 많은 공기를 머금어 체열을 효과적으로 유지시킨다. 식용·산란용으로 사육되는 오리·거위는 보통 생후 10주부터 솜털을 뜯기기 시작한다. 다시 나면 뽑히고 또 뽑히다 도살당하는데, 패딩 한 벌엔 보통 15~20마리의 털이 들어간다. 다운 패딩은 조류를 착취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유럽연합(EU)은 살아 있는 오리와 거위의 털을 뽑는 행위를 금지한다.
산 채로 털이 뽑히는 거위. 동물자유연대 제공
2013년 7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동물보호단체 페타(PETA)가 산 채로 오리와 거위의 털을 뽑는 행위를 비판하는 시위를 하는 모습. <샌프란시스코 이그저미너>(San Francisco Examiner) 제공
동물을 학대해서 얻은 가죽이나 털을 사용하지 않은 옷과 잡화를 일컫는 ‘비건 패션’. 이를 지향한다면 솜패딩이나 웰론·프리마로프트·신슐레이트 등 인공 충전재가 사용된 옷을 고르는 것도 방법이다.
새가 털갈이 중일 때 모은 털, 도축된 새의 털을 쓴 제품도 있다. 미국 의류업체 ‘파타고니아’는 저런 과정에서 생긴 다운만 사용한다고 설명한다. ‘유통과정 추적 다운’(Traceable down)으로, 살아 있는 조류한테서 억지로 뽑은 털은 안 쓴다는 것이다. 이 업체는 2012년 유통과정 추적에 관한 외부 전문가를 둬 국제다운협회(IDFL)가 참여하는 조사연구를 시작했고, 사료를 강제로 먹여 키운 새와 살아 있는 새에게서 다운을 채취하지 않았다는 최종 평가를 받았다. 파타고니아 한국지사 마케팅팀 쪽은 13일 “시즌마다 제품을 생산할 때 유통과정 추적 조사를 실시한다. 2016년 하반기부터는 패딩 재활용 사업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산 채로 두면 마리당 약 15번까지 털을 뽑을 수 있는 방법에 비해 ‘덜 잔인한’ 방법은 공급량이 달릴 수밖에 없다. 파타고니아 다운 제품의 경우 20만~100만원대로 가격이 만만치 않다. 윤리적 소비는 경제성과 존엄성 사이에서 자주 갈등하는 처지가 된다.
‘파타고니아’ 누리집에는 각 나라에서 운영 중인 농장, 섬유공장, 생산공장 정보가 공개돼 있다.
■ 옥수수 코팅…생분해되는 종이컵
식품의약품안전처 자료를 보면, 2016년 기준 연간 일회용 종이컵 소비량은 약 166억개다. 1인당 연간 소비량은 약 240개, 직장인 하루 평균 소비량은 3개다. 여성환경연대가 2013년 커피전문점 7곳을 대상으로 일회용 종이컵을 조사한 결과, 뇌·신경 등에 독성을 끼치고 눈에 자극을 주는 환경호르몬(PFOA·과불화화합물)과 발암물질 등이 검출됐다. 유해물질로부터 더 안전한 종이컵은 없을까.
옥수수 전분으로 코팅되고 본드 없이 접착된 ‘한국설란’의 친환경 종이컵.
서울시 친환경녹색운동본부 자회사인 ‘한국설란’은 천연 크라프트지를 사용하고 옥수수 전분으로 코팅한 종이컵을 개발했다. 일반적인 종이컵은 일종의 플라스틱인 폴리에틸렌으로 비닐코팅을 한 뒤 본드나 화학제품으로 접착한 것들이다. 한국설란의 친환경 종이컵은 옥수수 전분으로 코팅되고, 화학접착제 대신 양면조립 방식으로 제작돼 뜨거운 물을 부어도 유해물질이 발생하지 않는다. 일회용이 아니라 재활용이 가능하며 100% 자연생분해 된다. 이 ‘옥수수컵’은 환경부 친환경인증마크와 미국 환경보호청(EPA) 친환경인증마크, 미국 식품의약국(FDA) 인증을 받았다.
가정과 사무실에서 흔히 쓰는 종이컵 사이즈인 192㎖(6.5온스)부터 카페에서 테이크아웃용으로 주로 사용하는 384㎖(13온스)까지 다양한 크기로 출시돼 있다. 6.5온스 1박스(1000개 들이)가 약 4만원, 13온스 1박스(1000개 들이)는 10만원 정도다.
한국설란 쪽은 “비닐코팅 일회용컵에 비해 비싸서 대량주문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한 번 사용한 고객은 꾸준히 주문한다. 카페 사장분들은 컵에다 자체 마크를 새기려고 따로 주문을 주기도 한다. 그렇지만 가정에 비해 훨씬 많은 수량이 필요한 사업주 입장에선 단가가 부담스러워 고민하는 분이 많다”고 전했다.
■ ‘낙엽 접시’ 60일 후면 완전분해
낙엽 위의 식사. 친환경 일회용기를 만드는 스타트업 ‘나무리프’가 사용하는 재료는 낙엽이다. 무화학약품, 무코팅, 무색소 제품으로 사용한 뒤 60일 안에 완전분해 된다.
낙엽으로 만들어져 사용 60일 뒤 생분해되는 ‘나무리프’의 일회용 식기.
나무리프는 캄보디아 트봉크뭄주(Tboung Khmum Province)에 공장을 두고 있다. 이 지역 장애인, 여성, 노인 70여명이 야자나무 낙엽을 모아 일회용 접시와 그릇을 만든다. 야자나무 이파리는 길이가 1m에 이르기도 하는 등 워낙 커서 1장으로 식기 1개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잎은 접시로 어떻게 변할까. “낙엽을 수거한 뒤 분류, 세척을 한다. 그런 뒤 150도 이상 수증기로 살균한 다음 모양을 잡고 포개서 건조시킨다.”(나무리프)
전자레인지와 오븐에 사용할 수 있고, 액체는 약 6시간 동안 담아놓을 수 있다. 접시는 라지(245㎜×245㎜), 미디엄(190×190), 스몰(145×145) 3종류가 있다. 그릇은 미디엄(170×170), 스몰(140×140) 2종류다. 가격은 10개 들이 기준 5500~7500원.
나무가 떨어뜨린 잎만 사용하기 때문에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다는 점, 버려지는 낙엽을 활용하기 때문에 특별한 원재료 없이도 현지 주민들이 생산활동을 할 수 있다는 점. ‘낙엽 식기’ 프로젝트는 이런 취지를 인정받아 한국국제협력단(KOICA) ‘창의적 가치 창출 프로그램’에 선정됐으며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의 자문을 받고 있다. 현재 한국에서만 판매되고, 미국·일본 시장 진출을 협의 중이다.
■ 토끼 질에 콘돔? 동물실험 그만…비건 콘돔·치약
콘돔도 동물실험을 거치는 제품이 많다. 주로 암컷 토끼의 질이 콘돔 실험의 대상이다. 청년벤처 인스팅터스의 ‘이브 콘돔’은 지난해 세계적 동물보호단체 페타(PETA)로부터 동물실험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동물성 원료를 사용하지 않은 제품 인증(Vegan & Cruelty-Free)을 받았다. 국내 업체 중에선 처음이라는 게 회사 쪽 설명이다. 같은 해 국내 동물보호단체 ‘카라’가 선정한 ‘동물실험을 반대하는 착한 회사’ 생활용품 부문에도 뽑혔다.
이브는 발암물질인 니트로사민과 파라벤, 탈크, 탈취제, 향료, 색소가 없는 콘돔이기도 하다. 시트로사민은 천연고무를 사용한 라텍스 콘돔을 제조할 때 고무에 첨가하는 질산염과 라텍스의 아미노산이 반응해서 생기는 물질. 세계보건기구(WHO)는 2010년 콘돔 제조사들에 시트로사민을 최소화할 것을 권고했다.
한국소비자원이 지난해 시중에 판매되는 콘돔을 전수조사한 결과, 55%(15종)에서 니트로사민이 검출됐다. 국내엔 유아용 젖꼭지의 니트로사민 허용기준은 있지만, 콘돔에 대한 기준은 없다.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지지하는 이브 콘돔 온라인몰에는 성인인증창이 없다. 성인뿐 아니라 청소년도 콘돔을 주문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인스팅터스는 신청하는 청소년한테 한 달에 콘돔 두 개를 우편 지원하는 ‘프렌치레터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이브는 2015년 서울시가 진행한 청년창업 지원사업 ‘챌린지1000 프로젝트’에 합격해 서울시립청소녀건강센터 ‘나는봄’에선 청소년에게 이브 콘돔을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한 통(10개 들이)에 1만3900원.
‘일상이 기부’ 콘셉트로 시작한 치약 제조 스타트업 ‘위드마이’. 치과 의사가 창업한 이 업체는 치약을 하나 사면, 국내외 어린이에게 똑같은 치약 하나를 전달하는 일대일 기부 사업을 한다.
위드마이 제품 역시 동물실험을 반대하는 비건 치약으로 페타의 인증을 받았고, 미국 성분 안전도 평가단체 EWG(Environmental Working Group) 인증마크를 얻었다. 1만여종의 성분을 규제하는 이 단체의 검증을 통과한 치약 브랜드는 세계적으로 5개뿐이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중심 성분 CMIT/MIT, 합성 계면활성제와 파라벤, 미국이 올해부터 사용을 전면 금지한 미세 플라스틱 알갱이 ‘마이크로비드’도 사용하지 않았다고 업체 쪽은 설명한다. 개당 1만원대.
석진희 기자
ninan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