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가 10일 입수한 경기도 파주우체국의 택배 업무를 위탁받은 용역업체 팀장이 소속 배달원들에게 보낸 문자.
“안씨 사인은 평소 몸 관리가 안 돼서 그렇게 된 겁니다. 괜히 ‘과로(사)다’ 이상한 말씀들 하지 마세요.”
<한겨레>가 10일 입수한 경기도 파주우체국의 위탁 택배 용역업체 팀장이 소속 배달원들에게 지난 2일 보낸 문자메시지 내용이다. 이 용역업체 팀장은 지난달 31일 한 위탁 배달원이 배달 중 사망하자, 직원들에게 이런 문자를 보내 ‘입단속’을 시키려 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지난달 31일 오후 1시께 파주우체국 위탁 배달 노동자인 안아무개(54)씨는 한 아파트 경비실 앞에서 경비원에게 배달 확인 서명을 받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안씨의 무릎이 꺾이며 차가운 바닥에 쓰러졌다. 곧바로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끝내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부검 결과 사망 원인은 심근경색(심장마비)이었다.
안씨는 지난 1월 중 3000여개의 택배를 배송했다고 한다. 하루에 150여개의 택배를 배송한 셈이다. 문자를 보낸 용역업체 팀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안씨는 계약한 물량대로 하루 150건 수준을 배달했다. 원래 지병으로 몸이 좋지 않아서 설 연휴 때 병원에 입원했었다고 했다. 그런데 자꾸 과로사라고 말이 와전돼 정확한 상황을 알리기 위해서 문자를 보냈다”고 해명했다. 우정사업본부 산하기관인 우체국물류지원단 이아무개 택배품질팀장은 “민간 택배 업체는 한 달에 5000~6000개 정도 배달한다. 안씨는 평균적인 수준의 물량을 배달한 것이라, 과로사와 연관성이 적은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조 쪽에선 업체가 나서서 입단속에 나선 것이 과중한 노동을 은폐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집배노조(이하 집배노조) 관계자는 “한 달에 3000건 배달하는 건, 적은 물량이 아니다. 설 특송기간이라 노동강도는 더 강했을 것”이라며 “산재 여부는 산재보험공단에서 판단할 문제인데, 업체 쪽에서 과로에 의한 사고가 아니라고 단정하고 나서는 건 과중한 근무를 은폐하려는게 아닌가 의구심이 든다”라고 말했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과로사의 대부분이 심근경색이나 중풍으로 온다. 과로사가 산재 사망 중에 굉장히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고 설명한다.
평소와 같은 물량이라도 ‘설 우편물 특별소통기간’은 집배원들에게 악명이 높다. 빙판길로 오토바이 속도를 내기 어려워 배달 속도가 늦어지고 사고 위험도 커지기 때문이다(▶관련 기사:
폭설이 끝난 뒤…이들에겐 혹독한 ‘진짜 겨울’이 시작된다). 우정사업본부는 지난달 16일부터 26일까지를 ‘설 우편물 특별소통기간'으로 정하고 비상근무체계에 돌입한 바 있다.
용역업체 팀장이 “안씨가 평소 몸관리가 안 돼서 죽었다”고 말한 점도 유가족의 분노를 키웠다. 안씨의 유가족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안씨가 평소 앓던 지병이 없었다. 혹시나 싶어 건강관리공단에 가서 병원에 다닌 기록이 있는지 확인해봤는데 그런 기록도 없었다. 아파도 바빠서 병원에 갈 시간이 없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우체국에서 배달 업무를 맡은 이들은 1만8500명으로, 이중 정규직 집배원이 1만3500명, 비정규직 집배원은 2500명, 위탁 배달원도 2500여명 수준이다.
박수진 기자
jjinp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