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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박근혜 ‘대독 성명’이 소환한 전두환 ‘골목 성명’

등록 2017-03-14 14:44수정 2017-03-14 16:43

22년전 검찰 소환날 사저 앞 불응 성명
정치적 탄압·색깔론 주장하며 ‘법치’ 강조
박근혜 전 대통령과 상황 인식 ‘닮은꼴’
2017년 3월12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서울 삼성동 자택으로 돌아간 뒤 민경욱 전 청와대 대변인이 ‘대독’한 입장문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1995년 12월2일 서울 연희동 자택 골목에서 내놓은 대국민담화를 떠올리게 한다.
2017년 3월12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서울 삼성동 자택으로 돌아간 뒤 민경욱 전 청와대 대변인이 ‘대독’한 입장문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1995년 12월2일 서울 연희동 자택 골목에서 내놓은 대국민담화를 떠올리게 한다.

“제게 주어졌던 대통령으로서의 소명을 끝까지 마무리하지 못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저를 믿고 성원해주신 국민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이 모든 결과에 대해서는 제가 안고 가겠습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고 있습니다.”

2017년 3월12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서울 삼성동 자택으로 돌아간 뒤 민경욱 전 청와대 대변인이 ‘대독’한 입장문에는 헌법재판소 결정에 사실상 불복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 대독 성명은 1995년 12월2일 군형법상 반란수괴 혐의를 받고 있는 ‘피의자’ 신분이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이 서울 연희동 자택 골목에서 내놓은 대국민담화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는 검찰 소환 통보에 불응한다는 입장을 당당히 밝혔지요.

12·12 쿠데타와 5·18 민주화운동 유혈 진압으로 집권한 전두환 전 대통령이 16년 만에 ‘피의자’가 되기까지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1995년 7월 서울지검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로 전두환·노태우 등 58명에 대해 ‘공소권 없음’ 결정을 내립니다. 이런 결론에 시민들의 비판이 격렬했는데요. 같은 해 11월 여당인 민자당은 5·18 민주화운동 진압 관련자들을 소급처벌할 수 있는 5·18 특별법을 제정하기로 합니다. 노태우 비자금으로 촉발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민심’을 안은 것이지요.

이에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급물살’을 타게 됩니다. 지금처럼 검찰에 ‘특별수사본부’가 설치됐고요. 검찰은 1995년 12월1일 전 전 대통령 법률대리인에 전화를 걸어 다음날 오후 3시 서울 서초동 서울지검 청사로 출두하라고 합니다.

검찰 소환이 예정된 2일, 오전 9시 전 전 대통령은 서울 연희동 자택 앞에서 소환에 불응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골목 성명에 담긴 전 전 대통령 입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현재 상황을 인식하는 시각과 비슷한 지점이 있습니다.

우선, 지금 처지에 대해 자신의 잘못을 짚기보단 ‘정치적 탄압’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제기한 혐의를 모두 부인하고 있는 박 전 대통령 역시 지난 1월 <한국경제> 정규재 주필이 진행하는 인터넷 방송 인터뷰에서 ‘음모론’을 제기했지요.

전 전 대통령이 골목에서 꺼내든 비장의 카드는 역시나 이념 공세였습니다.

박 전 대통령은 정규재 주필이 ‘국회·언론·노조·검찰 4대 세력이 대통령을 포위해 침몰시키는 까닭’을 묻자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검찰 수사와 헌재 결정에 불응하면서도 ‘법치’를 강조합니다. 전 전 대통령은 성명 말미 “대한민국의 법 질서를 존중하기 위해 사법부가 내릴 조처에는 그것이 어떤 것일지라도 저는 수용한다”고 했습니다. 박 전 대통령은 정규재 주필과 인터뷰에서 태극기 집회 참여자들에 대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해야 된다, 법치를 지켜야 된다, 그런 것 때문에 여러가지 고생도 무릅쓰고 이렇게 나오신다는 것을 생각할 때 가슴이 좀 미어진다”고 답했었죠.

1995년 12월3일 전두환 전 대통령이 구속됐다는 소식을 전한 <한겨레> 지면.
1995년 12월3일 전두환 전 대통령이 구속됐다는 소식을 전한 <한겨레> 지면.
전두환 전 대통령은 골목 성명을 발표한 뒤 곧바로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 들러 참배하고 고향인 경남 합천으로 내려가는데요. 그가 소환에 불응하자 검찰은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고, 이날 밤 11시23분 법원은 영장을 발부합니다. 검찰 수사관 9명이 합천 생가마을로 내려갔고, 다음날 새벽 전 전 대통령은 머물고 있던 5촌 조카의 집에서 구속돼 안양교도소로 압송됐습니다.

◆전두환 ‘골목 성명’ 전문(<한겨레> 1995년 12월3일치)

국민 여러분, 저는 오늘 이 나라가 지금 과연 어디로 가고 있고 또 어디로 가고자 하는지에 대한 믿음을 상실한 채 심히 비통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국민 여러분께서도 잘 기억하고 계시겠지만 6년 전인 89년 12월15일 당시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세 야당 총재의 영수회담 결정에 따라 저는 소위 5공 청산정국의 정치적 종결을 위해 그해 12월31일 국회의 증언대에 올라 과거 문제의 매듭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이렇듯 이미 정치적으로 완전 종결되었던 사안이 최근 또다시 제기되어 온 나라가 극도의 혼란과 불안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다시금 문제제기가 되고 있는 일련의 사건에 대한 개별적인 시시비비는 앞으로 여러 경로를 통해 말씀드릴 기회가 있을 것으로 보아 오늘 이 자리에서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계속해서 되풀이될 것이 분명해 보이는 사회적 혼란과 불안에 직면해서 몇 가지 말씀을 드리고 이에 대해 현재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김영삼 대통령의 명쾌한 설명이 있기를 바랍니다.

지난 11월24일 김 대통령은 이 땅에 정의와 진실과 법이 살아있는 것을 국민에게 보여주기 위해 5·18특별법을 만들어 저를 포함한 관련자들을 내란의 주모자로 의법처리하겠다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잘 기억하고 있는대로 현재의 김영삼 정권은 제5공화국의 집권당이던 민정당과 제3공화국의 공화당을 중심으로 한 신민주공화당 그리고 야권의 민주당, 이 3당이 지난 과거사를 모두 포용하는 취지에서 ‘구국의 일념’이라고까지 표현하며 연합하여 이루어진 것입니다.

저는 대한민국 전임 대통령의 자격으로 김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해서 격려를 아끼지 않았고 김 대통령이 저를 방문했을 때에는 조언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취임 뒤 3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에 와서 김 대통령은 갑자기 저를 내란의 수괴라 지목하며 과거 역사를 전면 부정하고 있습니다. 만일 제가 국가의 헌정질서를 문란케 한 범죄자라면 이러한 내란세력과 야합해온 김 대통령 자신도 이에 대한 응분의 책임을 져야하는 것이 순리가 아니겠습니까.

다음으로 현 정부의 통치이념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부터 현 정부까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인하고 타도와 청산의 대상으로 규정한 것은 좌파 운동권의 일관된 주장이자 운동 방향입니다. 그런데 현 정부는 과거 청산을 무리하게 앞세워 이승만 정권을 친일 정부로, 3공화국·5공화국·6공화국은 내란에 의한 범죄집단으로 규정하여 과거 모든 정권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현 정부의 이념적 투명성을 걱정하는 국민의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서라도 김 대통령은 이번 기회에 자신의 역사관을 분명히 해주기를 기대합니다.

다음으로는 현재 거론되고 있는 검찰의 재수사와 관련된 문제입니다. 국민 여러분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저는 이미 지난 13대 국회의 청문회와 장기간의 검찰 수사 과정을 통해 12·12, 5·17, 5·18 등의 사건과 관련하여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답변을 한 바 있고 검찰도 이에 의거하여 적법 절차에 따라 수사를 종결한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검찰은 대통령의 지시 한 마디로 이미 종결된 사안에 대한 수사를 재개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검찰의 태도는 더 이상의 진상규명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다분히 현 정국의 정치적 필요에 따른 것이라고 보아 저는 검찰의 소환요구 및 여타의 어떠한 조치에도 협조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다만 검찰이 저에 대한 사법처리를 하고자 한다면 이미 제출되어 있는 자료에 의거하여 진행해 주시기 바랍니다. 대한민국의 법질서를 존중하기 위해 사법부가 내릴 조처에는 그것이 어떤 것일지라도 저는 수용하고 따를 것입니다. 끝으로 12·12를 포함한 모든 사건에 대한 책임은 제5공화국을 책임졌던 저에게 모두 물어주시고 이 일을 계기로 여타의 사람들에 대한 정치보복적 행위가 없기를 희망합니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그래픽 강민진 디자이너 rkdalswls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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