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기보조기구 ‘플레이그립’을 써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한 장애 어린이. 그립플레이 제공.
최요한(17)군은 두살 때 근육이 점점 약해지는 난치성 질환인 근이영양증 진단을 받았다. 여섯살 때부터 미술치료를 받으며 그림에 흥미가 생겼지만, 손힘이 계속 빠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미술치료를 관뒀고, 3년 전 척추 수술을 받은 뒤부터 연필 잡는 것조차 어려워졌다.
그런 최군이 지난해부터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2014년 개발된 맞춤형 필기보조기구 ‘플레이그립’을 알게 되고서다. 손 모양과 장애 특성에 딱 맞춘 이 기구 덕분에 최군은 정교한 그림도 그릴 수 있게 됐다. 3디(D) 프린팅으로 제작한 플라스틱 장치인데, 손을 끼우고 검지 옆에 필기구를 고정하면 악력이 부족한 최군 같은 이들도 비교적 힘을 줘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최군은 “그림을 그릴 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며 “화가가 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지난 6일부터 19일까지 2주 동안 서울 종로구 혜화아트센터에서 ‘Using Another Hands; 브레멘음악대’라는 전시회가 열린다. 최군 등 장애 아동·청소년 70명이 필기보조기구 도움을 받아 혼자, 또 같이 그린 작품 50점이 내걸렸다. 그림 형제의 동화 <브레멘음악대>를 묘사한 그림들이다. 주인에게 버림받은 동물들이 ‘브레멘’이라는 유토피아를 찾아 떠났다가 도둑을 만나고, 함께 도둑에 맞서 싸우는 과정을 그림에 담았다. 필기보조기구를 개발한 예비사회적기업인 ‘그립플레이’가 주최했다.
서울 종로구 혜화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Using Another Hands; 브레멘음악대’ 전시에 근육 장애를 겪고 있는 최요한(17)군이 그린 그림이 걸려 있다. 임세연 교육연수생
지난 6일 서울 종로구 혜화아트센터에서 열린 ‘Using Another Hands; 브레멘음악대’ 전시에서 아이들이 줄지어 그림을 보고 있다.
최군은 여기서 당나귀, 강아지, 고양이가 함께 브레멘으로 가다가 울고 있는 닭을 만나는 장면을 그렸다. 최군 어머니 문윤희(39)씨는 “몸이 불편하면 혼자서 하는 일 대부분을 포기하게 된다. 보조기구 도움을 받으면 혼자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점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박수지 기자, 임세연 교육연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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