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새벽, 시민 김원재씨와 전승민씨는 19대 대선 사전투표가 진행되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 주민센터 앞에서 가장 먼저 투표에 참여하려고 텐트를 치고 밤을 새웠다. 김원재씨 제공
19대 대통령 선거 사전투표 열기가 뜨겁다.
대선에선 처음 실시되는 사전투표 첫날인 4일 전국 투표율이 11.70%에 이르렀다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밝혔다. 전체 선거인 4247만9710명 가운데 497만902명이 이날 하루 투표한 것이다. 지난해 4월 20대 총선의 첫날 사전투표율은 5.45%, 2014년 6월 지방선거 때는 4.75%였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최근 유권자 의식조사에서 사전투표 하겠다는 비율이 20.9%였는데, 거의 근접할 것으로 보인다”며 “높은 사전투표 열기가 본선거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날 많은 유권자들이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일찌감치 발걸음을 서둘렀다. 사진작가 김원재(36)씨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 주민센터에 설치된 사전투표장 앞에서 새벽을 맞았다. 전날 밤 투표소 건물 앞에 휴대용 텐트를 설치한 김씨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투표 독려 생중계 방송을 하면서 투표 시작 시간인 아침 6시를 기다렸다. 김씨는 “2년 정도 쓰는 스마트폰을 사려고 휴대전화 가게 앞에서 며칠씩 기다리기도 하는데, 이번 대통령 선거는 그것보다 더 중요하니까 1등으로 투표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투표를 마친 김씨는 “이번 대통령 선거는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과 지금껏 쌓여 있던 적폐 청산의 의미도 있다”며 “투표율을 높이면 정치인들한테 일종의 경고가 된다. 중요한 선거인 만큼 우리의 미래와 어린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바꾸기 위해 유권자들이 소중한 권리를 행사하면 좋겠다”고 했다.
안경연(20)씨는 서울 중구 필동 주민센터에 마련된 사전투표소에서 생애 첫 대선 투표를 했다. 안씨는 “원래 선거에 관심 없었는데 광화문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참여하면서 투표를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투표로 내 의사가 반영된다는 게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공무원시험을 준비 중인 이창근(27)씨도 두꺼운 수험서를 손에 들고 투표소를 찾았다. 이씨는 “선거 때마다 20대 투표율이 가장 낮아 안타까웠다”며 “이번 대선에는 20~30대 젊은층의 투표율이 올라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 강북구에 사는 신상호(31)·이은향(30)씨 부부도 “아이가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데 한 표라도 힘을 실어주고 싶다”며 60일 된 아기와 함께 투표장을 찾았다.
인천국제공항 3층에 마련된 사전투표소에도 많은 인파가 몰렸다. 투표를 위해 30~40분 줄을 서야 했다. 비행기 출발시각 때문에 투표를 포기하는 안타까운 모습도 보였다. 선관위는 인천공항에 기표소 12곳과 투표용지 발급기 10대를 설치했다가 사람이 몰리자 오전 중 투표용지 발급기 4대를 추가했다. 이날 인천공항에서 사전투표를 한 유권자는 8500여명으로 집계됐다.
경기도 파주시 민간인출입통제선 북쪽 마을인 통일촌 마을회관의 사전투표소에선 장병들이 아침 8시부터 군용 트럭을 나눠 타고 와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다. 박아무개(22) 일병은 “국가의 미래가 달린 중요한 선거인 만큼 신중하게 후보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제주도는 국내 최대 관광지답게 사전투표소마다 관광객들이 눈에 띄었다. 유명 관광지인 서귀포시 성산일출봉 주변 사전투표소에는 관광객들이 줄을 섰다. 성산읍 김아무개(54)씨는 “사전투표소인 성산일출봉농협에는 오전부터 15~20명씩 긴 줄을 서서 투표 차례를 기다렸다. 주민들은 많지 않고 대부분 관광객이었다”고 말했다. 제주도의회에 마련된 사전투표소에도 아침부터 유권자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서울에서 온 박미성(41)씨는 “새로 대통령이 뽑히면 서민들이 빈곤에 빠지지 않게 신경써달라. 탈북자 인권 존중을 특별히 고려해주면 좋겠다”며 투표에 부치는 바람을 밝혔다. 제주시에 사는 김아무개(65)씨는 “대통령은 올바르고, 국방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며 “오래전부터 생각했던 후보를 찍었다”고 밝혔다. 제주에서 직장을 다니는 전북 전주시 출신 임현조(38)씨는 “변화가 필요한 시기에 국민의 주권을 정당하게 행사하고 싶다”고 투표를 마친 소회를 설명했다.
마당극패 우금치 배우인 이상호씨는 이날 오후 전북 정읍에서 사전투표를 했다. 이씨는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 의미를 담은 창무극 <천명> 공연을 준비하느라 동학혁명의 전적지 정읍에 내려왔다. 죽창 대신 장갑 끼고 무대를 만들다 시민혁명을 사전투표로 완성했다”고 말했다.
첫날 지역별 사전투표율은 전남이 16.76%로 가장 높았다. 세종(15.87%), 광주(15.66%), 전북(15.06%)이 뒤를 이었다. 가장 낮은 곳은 9.67%에 그친 대구였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첫날 사전투표율이 한 자릿수에 그쳤다.
대선에선 처음 실시되는 사전투표인 만큼 각 당의 선거대책위원회 지도부는 이날 전국 곳곳의 사전투표장에 총출동했다.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정의당 모두 선대위 위원들이 사전투표에 참여해 인증샷을 남겼다.
선거법 개정으로 특정 기호를 연상시키는 인증샷이 허용되면서 에스엔에스에는 지지 후보가 누구인지 드러내는 인증샷이 끊이지 않고 올라왔다. 투표 인증샷을 올리면 추첨으로 500만원을 주는 ‘국민투표로또’에는 오후 7시 현재 7만8000여명이 응모했다.
시민들은 사전투표 열기가 전체 투표율과 대선 결과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에도 관심을 보였다. 에스엔에스에는 ‘사전투표소를 20~50대가 주로 찾고 있다’는 평가와 ‘60대 이상 노년층도 생각보다 많이 눈에 띈다’는 관측담 등이 뒤섞여 올랐다. 중앙선관위가 월드리서치에 의뢰해 대선을 열흘 남겨둔 시점(4월28~29일)에 실시한 19대 대선 유권자 의식조사(2차)에서 ‘반드시 투표하겠다’는 응답은 86.9%에 달했다. 지난 대선 때 중앙선관위가 실시한 같은 조사보다 7%포인트가 높다. 30대가 지난 대선 때보다 19.4%포인트 오른 91.2%로 가장 높았고, 60대가 지난 대선 때보다 10.7%포인트 내린 80.8%로 가장 낮았다.
박수진 엄지원 기자, 최호진 교육연수생, 전국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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