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이 지난 4월19일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나쁜 사람’으로 낙인찍혀 좌천된 인물로 알려진 노태강 전 문화체육관광부 체육국장이 인사 조치하기 어려울 정도로 근무 성적이 우수했다고 유진룡 전 장관이 증언했다. 유 전 장관은 “청와대가 노태강을 쫓아내기 위해 ‘노태강이 문제 많은 공무원’이라고 한 것은 말도 안 되는 변명”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재판장 김세윤) 심리로 13일 열린 박근혜 전 대통령 재판에 유 전 장관이 나와 이같이 증언했다. 유 전 장관은 이날 2013년 박 전 대통령이 노태강 당시 문체부 체육국장과 진재수 당시 문체부 체육정책과장을 지목해 ‘나쁜 사람이라더라’고 말하며 인사 조치를 지시한 상황을 설명했다.
노 전 국장은 최순실(61)씨 딸 정유라(21)씨가 전국대회에서 준우승한 뒤 청와대 지시로 승마협회에 대한 감사에 나섰다가 “최씨 쪽과 반대 쪽 모두 문제가 있다”고 보고했다. 이에 박 전 대통령이 유 전 장관을 불러 노 전 국장과 진 전 과장의 인사 조치를 지시했다는 게 유 전 장관 증언이다. 유 전 장관은 “(박 전 대통령이 ‘나쁜 사람이라더라’고 말한 것이) 굉장히 뜻밖이고 여러 문제 낳을 것이라 생각해 ‘인사 부분은 맡겨주시는 게 좋지 않겠냐’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유 전 장관은 이어 “노태강은 문체부에서 다면평가 결과 가장 최상의 성적을 받는 사람이었다”며 “부하 직원들이 좋아하고 동료들이 능력을 모두 인정했다”고 했다. 당시 청와대가 노 전 국장 인사 조치를 두고 “민정(수석실) 쪽 공직기강에서 문제 많은 공무원으로 보고했다”는 취지로 주장한 것을 두고 “말도 안되는 변명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유 전 장관은 노 전 국장이 부처에 불이익을 갈 것을 우려해 직접 자신에 대한 징계를 호소했다고도 밝혔다. 유 전 장관이 노 전 국장 인사를 정기인사 때까지 미루려고 하자 모철민 당시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이 “그렇게 하면 부처가 큰일날 수 있으니 노태강을 징계 형식으로 부쳐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이에 노 전 국장이 “저를 징계하지 않으면 부처가 큰일 난다. 제발 저를 징계하는 모양을 갖춰 달라”고 했다는 게 유 전 장관 증언이다. 이후 노 전 국장은 한달간 대기발령 조처됐다가 문체부 산하기관인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좌천됐다.
이날 박 전 대통령 쪽 유영하 변호사는 증인 신문 과정에서 유 전 장관과 말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유 변호사가 “승마대회 관련 보고와 지시를 여러 번 받았다고 증언했는데, 언제 누구로부터 몇 번 지시를 받았다는 것이냐”고 묻자 유 전 장관은 “방금 읽은 부분에 다 나온다”면서 “그걸(신문 내용이 적힌 종이) 줘보시라”고 답했다. 이에 유 변호사는 “주긴 뭘 줘요. 듣고 얘기하면 되지 않아요”라고 소리를 높였다. 유 전 장관이 “지금 큰소리치는 거예요”라고 받아치자 유 변호사는 “반말하시는 겁니까? 반말하지 마시라고요”라고 하면서 언성을 높였다. 이에 재판장이 “(변호인이) 평소에는 흥분을 안 하셨는데, 흥분하면 사건 파악이 어려워진다. 감정적인 면이 개입되지 않도록 해달라”며 중재했다. 증인 신문 내내 유 전 장관을 정면으로 응시하거나 오른손으로 턱을 괴고 있던 박 전 대통령은 두 사람이 말싸움을 벌이자 웃음을 터뜨리더니 고개를 숙였다. 현소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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