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성 경찰청장이 16일 오후 서울 미근동 경찰청 대청마루에서 열린 경찰개혁위원회 발족식에서 인사말을 하기 전 인사하고 있다. 이 청장은 인사말을 통해 경찰의 '물대포'에 맞고 아스팔트에 쓰려지며 머리를 다쳐 숨진 고 백남기 농민 사건 등에 대해 사과한 뒤 고개숙여 인사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2015년 민중대회에서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뒤 병원 치료를 받다가 지난해 9월 숨진 고 백남기 농민과 유족에게 경찰이 사고 1년7개월여만에 공식 사과 입장을 밝혔지만 유족과 시민 사회의 반응은 싸늘하다. 사과의 내용과 형식 등에서 진정성을 체감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16일 이철성 경찰청장의 사과문 안에는 고 백남기 농민이 쓰러진 이유 등이 전혀 담기지 않았다. 이 청장은 유족에게 사과한 뒤 “앞으로 공권력으로 인한 피해가 없도록 하겠다”는 원칙적 의지만 밝혔다. 백남기 농민이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쓰러졌다는 것을 언급하면 해당 경찰의 법적 책임이 뒤따르게 될 것을 고려한 사과문으로 분석된다.
백남기 농민의 큰딸인 백도라지씨는 “사과만 하고 이후 뒤따르는 법적 사회적 책임은 피하려는 꼼수 같다”고 비판했다. 그는 “사과 발표와 관련해 유족과 어떤 사전 협의도 없었다. ‘경찰이 사과하니 유족은 사과를 수용하라’고 선언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107개 단체가 함께 한 ‘백남기투쟁본부’는 이 청장의 사과 발표 두시간만에 “사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성명을 냈다.
시민단체의 반응도 비판적이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성명을 내어 “경찰이 늦게나마 사과한 것은 진전된 행동으로 보이나 그 내용과 방법이 충분치 않다. 경찰의 발표가 사과로 받아들여지려면 백남기 농민 사망에 대한 진상규명, 책임 추궁, 효과적인 배상,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 개혁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백 농민 사망에 책임있는 한아무개, 최아무개 경장 등은 현직에서 정상 근무중이다. 경찰은 “검찰 수사가 시작되어 경찰 내부 감찰이 중단되었기 때문에 일단 정상 근무중”이라고 설명하지만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이 나온다. 경찰개혁위원회에 인권보호분야 위원으로 참여한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얼마전 서울 옥수역에서 일반 시민을 범인으로 착각하고 붙잡으려다 구타한 사건에서 경찰은 문제의 경찰들을 직위해제 조처했다.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에 책임 있는 경찰에게만 이중 잣대를 적용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경찰은 집회 현장에서 살수차를 원칙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은 대통령령을 새로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역시 ‘공공의 안녕질서에 대한 직접적인 위험이 명백한 경우’에 대해서는 예외를 두었다. 인권단체 인권운동공간 ‘활’의 랑희씨는 “경찰이 살수차 사용을 계속 하겠다는 선언을 한 것과 다를 바 없고, 직사살수를 금지하는 규정도 없어 인명사고 우려는 여전한 것 같다”고 말했다.
허재현 황금비 박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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