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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1975년 발행 1000원 지폐가 ‘1966년 간첩죄’ 증거였다

등록 2017-06-30 17:36수정 2017-06-30 17:36

1980년대 ‘김제 가족간첩단 사건’ 재심 판결문 보니
수사기관 고문·가혹 행위에 따른 허위 자백만 가득
‘66년 북한서 1000원 500장 받아’ 자백이 사형선고로 이어져
재판부 “국가가 범한 과오에 대해 진정으로 용서 구한다”
1980년대 이른바 ‘김제 가족간첩단 사건'에 휘말려 억울하게 사형을 당하고 옥살이를 한 당사자들에게 법원이 34년 만에 무죄 판결을 내렸다.

30일 공개된 법원의 판결문을 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 김태업)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사형을 당한 고 최을호씨와 징역 9년을 복역한 고 최낙전씨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김제 가족간첩단’ 사건은 1982년 전북 김제에서 농사를 짓던 최을호씨가 북한에 나포됐다 돌아온 뒤 조카인 최낙전, 최낙교씨를 간첩으로 포섭해 간첩활동을 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다. 이들은 경찰에 체포된 뒤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가 40여 일 동안 고문을 당하고 서울지검 공안부에 넘겨져 수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최낙교씨는 검찰 조사를 받던 도중 수사기관의 고문 등 가혹 행위에 시달리다 사망해 공소기각 처분됐으며, 당시 검찰은 자살이라고 발표했다. 최을호, 최낙전씨의 1심 선고는 1983년 3월 이뤄졌다. 재판부는 최을호씨에게 사형, 최낙전씨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항소와 상고는 차례로 기각됐다. 이후 최을호씨는 서대문구치소에서 복역하다 1985년 10월 사형당했다. 최낙전씨는 9년을 복역하고 나와 보안관찰에 시달리다 석방된 지 4개월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날 법정에는 최을호씨의 아들과 최낙전씨의 아들이 고인이 된 피고인을 대신해 법정에 섰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여러 자료와 증언을 통해 당시 수사과정에서 고문과 가혹 행위가 있었음을 인정할 수 있고, 고문에 의한 경찰 진술조서와 검찰 피의자신문조서는 간첩활동의 증거가 될 수 없으며, 이밖에 검찰의 공소사실을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특히 판결문에서 당시 검찰의 ‘엉터리 수사’와 법원의 허술한 판단의 여러 근거 중 하나로 ‘1000원권 지폐’의 사례를 들었다. 재판부는 “피고인 최을호씨는 경찰 조사에서 당시 1966년 입북해 공작금 명목으로 한화 50만원, 즉 1000원권으로 500매를 건네받아 돌아왔다고 진술했는데, 한국은행 1000원권 지폐는 1975년 8월14일에 처음 발행된 화폐이기 때문에 1966년에는 존재하지도 않는 화폐였다. 그럼에도 피고인 최을호는 자신에게 불리한 허위의 사실을 적극적으로 상세하게 진술했고, 심지어 검찰에 송치된 뒤 검찰 수사과정에서도 1000원권과 관련된 허위 자백을 그대로 반복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런 사례를 근거로 “피고인들이 외부와 접촉이 차단된 채 불법 구금 상태에서 고문과 가혹 행위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있었음이 충분히 추단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판결문 말미에 “피고인들은 위법·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하여 헌법에 보장된 방어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한 채 북한의 지령을 받아 간첩 행위를 한 국가보안법 위반 범법자로 낙인찍혔고, (최낙교씨를 포함해) 피고인 등은 모두 가슴에 한을 풀지 못한 채 유명을 달리하였다”면서 “피고인들과 최낙교씨에게 국가가 범한 과오에 대하여 진정으로 용서를 구한다”고 밝혔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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