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회사 ‘소다’와 계약 맺은 제화공 퇴직금 지급 소송
1심 패소 판결 뒤집고 항소심서 “근로자에 해당” 판결
“회사 지시와 감독 하에 작업”…변칙 계약 관행에 제동
1심 패소 판결 뒤집고 항소심서 “근로자에 해당” 판결
“회사 지시와 감독 하에 작업”…변칙 계약 관행에 제동
구두회사와 도급계약을 맺은 제화공도 개인사업자가 아닌 노동자로 인정해 퇴직금을 줘야 한다는 고등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법 민사1부(재판장 김상환)는 구두업체 ‘소다’와 도급계약을 맺어 일했던 고아무개씨 등 15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퇴직금 청구소송에서 “소다가 퇴직금 654만~4867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패소 판결한 1심을 뒤집고 고씨 등의 손을 들어줬다고 11일 밝혔다.
1998년부터 소다 근로자로 일했던 고씨는 2000년대 들어 갑자기 도급계약을 맺고 개인사업자가 됐다. 소다 쪽 주문에 따라 발 모양 골에 가죽을 씌우고 소다에 넘기는 내용이었다. 계약서에는 “고씨는 제작물 공급에서 소다의 지휘감독을 받지 않는다”, “고씨가 소다의 장소를 사용한다고 해서 소다에 전속되는 것은 아니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근무 여건과 성격은 이전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고씨는 매일 소다 공장으로 출근해 소다가 제공한 비품을 이용해 하루 평균 25족의 구두를 만들었다. 소다가 준 작업지시서에 따라 일했고, 다른 회사 구두를 만드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지만, 퇴직금은 받지 못했다. 고씨 등은 지난해 5월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일했으니 근로자에 해당한다”며 소송을 냈다.
1심 법원은 회사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고씨 등은 회사의 인사규정, 취업규칙을 적용받지 않았고 자신의 역량이나 작업방식에 의해 작업했다”며 회사에 종속된 관계가 아니었다고 봤다. 또 “회사가 고씨 등에게 설비와 장소를 제공했다”고 인정하면서도 고씨 등이 부가가치세를 별도로 냈다는 점을 부각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 판단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먼저 법원은 “고씨 등은 다른 근로자와 같이 소다 공장에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출근했고, 전적으로 회사가 정한 작업지시서와 견본에 따라 소다 임직원의 관리감독 하에 작업했다”고 짚었다. 이어 법원은 “여러 작업자가 공정을 분담했고, 고씨 등의 작업은 구두제작 관련 핵심 공정으로 분류됐다”고 지적했다. 이들의 작업이 구두제작 공정의 일부여서 개인사업자라고 할 만한 독립적인 지위가 없었단 취지다.
재판부는 이어 1심 법원이 근거로 삼았던 도급계약이 형식적이었음을 지적했다. 재판부는 “회사는 계약서에 ‘고씨는 회사의 지휘?감독을 받지 않는다’, ‘고씨는 재도급할 수 있다’ 등 문구를 썼지만, 이는 일반적인 임가공 형태의 도급계약에서 발견하기 어려운 조항”이라며 “회사가 의도적으로 근로자성을 배제하기 위해 위 문구를 기재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재판부는 고씨 등이 근로소득세를 내지 않았다거나 4대 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았으므로 노동자가 아니라는 회사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고씨 등이 근로소득세를 낼 때나 사업소득세를 낼 때나 노무 제공 형태에 변화가 없었고, 회사가 고씨 등의 사업자등록을 유도했다”고 지적했다.
앞서 서울고법은 지난 2월 탠디 퇴직 노동자 9명이 낸 소송에서도 “회사가 제화공들의 사업자등록을 유도했다”며 같은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김진 변호사는 “법원이 고숙련 작업자들을 독립사업자로 위장하는 변칙적 계약 관행에 잇따라 제동을 걸었다”고 평가했다.
현소은 기자 s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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