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이지 않는 ‘여성살해’가 ‘강남역 10번 출구’를 다시 불러냈다. 배아무개(31)씨는 지난달 5일 여성 혼자 일하는 왁싱숍을 찾아가 주인 ㄱ(30)씨를 성폭행하려 시도한 뒤 살해했다. 지난달 31일 배씨가 구속기소되면서 이 사건이 알려지자 “일상의 공간인 일터에서도 여자라는 이유로 죽임을 당해야 하느냐”며 여성살해를 규탄하는 시위가 마련됐다. 오는 6일 낮 12시,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다. 트위터에선 #왁싱샵여혐살인사건 등의 ‘해시태그’를 단 여성들의 글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혼자 일하는 여성들은 세대와 관계없이 “신씨 일이 남의 일 같지 않다”며 일터에서 겪은 고충을 토로했다.
서울 번화가에서 2년째 ‘1인 왁싱숍’을 운영하는 30대 여성 이영주(가명)씨는 진작 ‘온라인 홍보’를 포기했다. 인스타그램 등을 통한 가게 홍보가 대세로 자리 잡았지만 성적인 암시가 담긴 이상한 쪽지가 너무 많이 와서다. 이씨는 3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어떤 남자 손님은 왁싱을 받고 난 뒤 싸늘한 느낌으로 ‘왜 발기가 안 되지?’라고 말하더라”라며 “맞받아쳤다가 어떤 일이 있을지 몰라 빨리 내보냈다”고 말했다. 왁싱·마사지·문신 등 특히 고객과 일대일로 신체 접촉이 이뤄지는 직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은 늘 이씨와 같은 두려움에 긴장감을 놓지 못하고 있다. 이씨는 “개인적인 안전 대책은 가게에 있는 호출 벨과 시시티브이(CCTV)밖에 없다”고 말했다.
홀로 일하는 여성들은 위험한 상황을 겪어도 해코지 당할까 봐 참아야만 했다고 토로했다. 경기도 고양시 카페에서 주로 혼자 일하는 직원 김아무개(22)씨는 “지난 1월 한 중년 남성이 스마트폰 하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요구하며 손목을 끌어당긴 적이 있었다”며 “알고 보니 반대 손으로 자위하고 있었다. 수치스러웠는데 소리 지르면 폭력적으로 굴까 봐 그럴 수도 없었다”고 말했다. 평소 밤 11시 넘어 카페 마감을 홀로 하는 김씨는 ‘왁싱숍 사건’을 접한 뒤 “혼자 있다는 점을 노리고 나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고 말했다.
20년간 포장마차 일을 했다는 오종숙(62)씨는 “남자와 같이 일할 때와 여자 혼자 있을 때 완전히 다르다”고 말했다. 오씨는 “혼자 일할 땐 어깨를 만지거나, 술 따르라고 요구하는 일이 잦았다”며 “5년 전부터 남편과 같이 일했다. 그 뒤부터는 그런 일이 싹 없어졌다. 혼자 일하는 여자들은 더 나쁜 일을 당할까 봐 남자들처럼 같이 싸울 수도 없다”고 말했다. 이나영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강남역 사건이 일상적 공간에서 여성들이 누구나 피해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각성시켰다면, 왁싱숍 사건은 ‘여성의 일’, ‘여성 노동자’를 둘러싼 환경이 어떤지 들여다보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박수지 기자, 최소연 교육연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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