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길원옥 할머니가 30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성산동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에서 열린 여든여덟번째 생일 잔치에서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상임대표와 함께 웃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공동대표가 일본 간사이공항에서 입국 도중 이례적인 조사를 받은 뒤 풀려나 논란이 일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에 앞장서온 윤 대표와 정대협의 활동을 견제하려는 일본 정부의 의도가 드러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일본 정부는 지난해부터 자국에 껄끄러운 한국 시민단체 관계자들에 대한 입국심사를 한층 까다롭게 강화한 것으로 확인됐다.
13일 윤 대표가 <한겨레>에 설명한 내용을 종합하면, 윤 대표는 지난 11일 오후 2시 혼자 제주항공 편으로 김포공항을 떠나 오사카 간사이공항으로 향했다. 12~13일 오사카와 도쿄에서 열리는 제5회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한-일 간 비자면제 요건에 해당되는 ‘90일 이내 단기체류’라 따로 비자를 발급받지는 않았다. 간사이공항에 도착한 윤 대표가 오후 4시께 입국심사대를 통과하고 짐을 찾으러 가던 중 간사이공항 관계자가 “윤미향씨”라고 불러세운 뒤 조사실로 데려갔다.
윤 대표가 조사관에게 “왜 조사실로 데리고 왔느냐”고 묻자, 조사관은 “관광을 온 것인지 확인해야 한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어 조사관은 ‘일본에 온 목적이 무엇인지’, ‘공항에 누가 와 있는지’, ‘(마중 나온 사람이) 일본 국민인지 특별영주권자(조선적 재일동포)인지’와 윤 대표의 체류 일정과 지역 등을 물었다. 윤 대표는 30분가량 조사를 받은 뒤 입국 허가를 받았다.
윤 대표는 “26년여간 일본에 왔다갔다 했지만 이런 조사를 받은 적은 없었다. 모욕감을 느꼈고 일본에 다시 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 정부가 노리는 게 이건가”라고 말했다. 김동희 정대협 사무처장은 “2015년 12월 한-일 정부의 위안부 피해자 합의로 언젠가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일본이 한-일 시민사회의 연대활동을 위축시키려고 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윤 대표뿐 아니라 일본 정부가 껄끄러워할 만한 한국 시민단체 대표 등이 일본에 입국할 때 비슷한 조사를 당했다는 증언도 잇따르고 있다. 1991년부터 일본을 143차례 이상 방문한 이희자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대표는 “지난해 10월부터 일본 입국 때 별도 조사를 받고 있다”며 “올해 6월 오키나와의 일본 시민단체 행사 참가차 방문했을 때는 소지품도 전부 꺼내서 검사하며 1시간30분 동안 조사받았다”고 말했다. 와세다대학에서 박사학위 과정을 밟고 있고 10여년 전부터 위안부 피해자 지원 활동을 해온 홍아무개씨도 개인 페이스북을 통해 최근 일본 입국 때 지금까지와는 다른 세세한 입국심사를 밟았다고 밝혔다. 지난해 8월 일본 내 ‘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을 위해 간사이공항에 입국한 최종진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은 일본 당국이 아예 입국을 불허해 국내로 돌아왔다.
윤 대표는 공항에서 풀려난 뒤 일본 체류 이틀 동안 활동에 큰 제약은 받지 않았다. 윤 대표는 12일과 13일 오사카와 도쿄에서 일본군위안부문제전국행동(전국행동) 등이 주최한 기림일 행사를 마치고 함께 거리행진도 했다.
오사카 한국총영사관은 “일본 출입국관리소에 윤미향 대표 등에 대해 불필요한 조사가 있었는지 확인한 뒤 항의하겠다”고 13일 밝혔다.
박수지 노지원 기자, 도쿄/조기원 특파원 su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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