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인 딸의 친구를 살해하고 야산에 유기한 혐의를 받는 이아무개씨가 8일 오후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중랑경찰서를 나서 북부지법으로 향하고 있다. 희소병을 앓아 어금니만 남아 있는 이씨는 일명 ‘어금니 아빠’로 불리며 자신과 같은 병을 물려받은 딸을 극진히 돌본 사연으로 10여년 전 수차례 언론보도가 되는 등 화제가 된 인물이다. 연합뉴스
‘거대 백악종’은 치아와 뼈를 연결하는 부위에 종양이 계속 자라나는 병으로 전 세계에서 수십 명만 앓는 것으로 알려진 희귀 난치병이다. 2006년 12월 한 방송사의 다큐멘터리에는 자신과 똑같이 거대 백악종을 갖고 태어난 딸을 살리려 애쓰는 이아무개씨의 사연이 소개됐다. 이씨는 계속된 치료로 치아가 어금니 1개밖에 남지 않아 ‘어금니 아빠’로 불리기도 했는데 투병 와중에도 딸의 수술비를 모금하려 자전거 전국 일주, 길거리 모금 등을 해 화제를 모았다. 그랬던 이씨가 11년 뒤 중학생인 딸의 친구를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지난 5일 경찰에 붙잡혔다. 한달 전에는 부인 최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씨의 정확한 범행 동기가 알려지지 않으면서 미담 가족의 몰락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피해자 김양, 거절 못 하고 착해 이양 챙겨줘” 서울중랑경찰서는 7일 딸의 초등학교 동창인 중학생 김아무개(14)양의 사체를 유기한 혐의로 이씨의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지난달 30일 김양의 실종신고를 접수해 수사하다가 지난 5일 이씨를 서울 도봉구의 한 다세대 주택에서 검거했다. 검거 당시 이씨와 딸은 수면제를 과다복용해 쓰러진 상태였다고 경찰은 전했다. 경찰은 이씨한테 유기 장소를 확인해 이튿날 오전 강원도 영월 야산에서 김양의 주검을 발견했다. 경찰은 이씨가 김양을 살해했다고 의심하고 있지만, 살인 동기와 방법 등에 대한 명확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일단 사체유기 혐의로만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8일 오전 9시 20분께 이씨를 병원에서 데려와 조사를 시작했다. 경찰은 체포 직후 그를 경찰서로 데려와 잠시 조사했으나 수면제에 취한 상태여서 조사를 중단하고 병원에 입원시켰다. 경찰은 이씨의 도피를 도운 혐의로 이씨의 지인 박아무개씨 구속영장도 함께 신청했다.
김양은 이씨의 딸과 초등학교 동창 사이였다. 이씨의 딸은 중학교 진학 이후 교류가 거의 없던 김양에게 최근 3일 연속 만나자고 연락했다고 한다. 익명을 요구한 김양 친구의 아버지는 “김양은 거절을 못하는 아주 착한 성격이었다. 이양에게 장애가 있는 걸 알기 때문에 김양 포함 주변 친구들이 많이 챙겼는데 초등학교 졸업 이후 교류없다가 최근 3일 연속으로 만나자는 연락이 왔고 거절하지 못해 만나러 나갔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 미담 가족의 몰락 아홉 살 때 희귀병 진단을 받은 이씨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아르바이트 등으로 생계를 꾸렸다. 일식집에서 일하던 2003년 최아무개(32)씨를 만나 인연을 맺었고, 그해 딸을 낳았다. 딸은 생후 6개월 됐을 무렵 아빠와 같은 병을 앓기 시작했다. 이씨는 딸의 치료비 모금 활동을 했다. 딸의 이름을 딴 개인 홈페이지도 운영하면서 투병일지를 올렸다. 2009년엔 미국을 찾아 자신의 사연을 알리기도 했다. 딸의 병을 치료해온 서울대학교 치과병원 구강악 안면외과 이종호 교수는 8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가장 최근에 이양을 치료한 게 한 달 전께였는데, 주로 세 사람이 함께 왔다”며 “최근까지도 세 사람이 힘들지만 잘 견디는 것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부인 최씨는 지난달 5일 서울 중랑구 망우동 5층 자택에서 투신해 목숨을 끊고 말았다. 최씨는 지난달 1일 “2009년부터 8년간 의붓시아버지로부터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당했다”며 남편과 강원 영월경찰서에 고소장을 냈다. 2009년은 이씨가 딸의 병원비 마련을 위해 미국으로 갔던 해다. 최씨는 남편이 미국에 가 있는 동안 강원도 영월의 시댁에 머물렀는데, 이때부터 최씨 시어머니와 사실혼 관계에 있던 의붓시아버지의 성폭행이 시작됐다고 주장했다. 최씨는 고소장을 낸 지 나흘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영월경찰서 관계자는 “지난달 1일 남편과 함께 고소장 접수한 건 맞다. 현재 수사 중인 상황이라 사건내용에 대해선 확인해 줄 수 없다. 고소인이 사망했지만 계속 수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신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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