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후 신촌 홍익문고 앞에서 한국여성민우회 주최로 열린 '10대 페미니스트 필리버스터-우리는 매일 사건을 겪고 있다'에서 서울 ㅅ고등학교 3학년 오새희(18)양이 발언하고 있다. 최민영 기자 mymy@hani.co.kr
“선생님이 화장실 가는 친구한테 한 말, ‘빨간 거냐’”
“여자답게 좀 다녀라”
“남자애들이 아이스께기(치마 들추기) 하는건 이해해야지”
10대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가 굵은 빗줄기를 뚫고 나왔다. 25일 오후 4시 신촌역 2번 출구 앞, 10대 여학생들이 학교에서 일상적으로 겪는 여성혐오를 말하자 사람들은 옷이 비에 젖는 것도 잊고 가던 길을 멈췄다.
한국여성민우회(상임대표 김민문정·이하 민우회)가 ‘우리는 사건을 겪고 있다’를 주제로 10대 페미니스트 필리버스터를 열었다. 무대에 선 청소년 약 20명은 교실에서 성희롱적 발언을 듣거나 성차별을 당한 경험을 가감없이 털어놨다.
처음으로 마이크를 잡은 안산 양지고등학교 2학년 표지수 학생은 “선생님이 ‘어떻게 시집갈래’라고 하기에 ‘요새 누가 한남이랑 결혼하냐’고 말했다가 ‘메갈이냐? 어디 남자가 여자한테 말대꾸를 하냐’는 소리를 들었다”며 여전히 남존여비 사상에 젖어 있는 선생님을 지적했다. 표씨는 “남자한테 말대꾸하는 게 메갈이라고 한다면 앞으로도 계속 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23일 수능을 “말아먹고” 필리버스터 무대에 섰다는 오아무개(17) 학생은 여성혐오를 일상적으로 언급하던 선생님을 변화시킨 사례를 공유했다. 오씨는 “‘여자랑 개는 패야 맛있다, 다방 레지같다’라는 말을 밥먹듯이 하던 선생님이 있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학교에 문제 제기에 공론화했다. 이후 선생님은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82년생 김지영’ 등을 읽더라”며 “변화는 멀리 있지 않고 힘을 합칠 수록 빨리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씨는 “영상디자인학과에 진학해서 어린이들이 페미니즘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만화 만들고 싶다”며 “교복 벗어도 계속 연대하겠다”고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무대에 올라 “여성에게만 혼전순결을 강요하던 선생님”을 말한 한 여학생은 “학교에서 여학생들은 매일 성차별을 겪는다. ‘여자가 조신해야지’ ‘여자가 이래야지’ 등 여성을 고정적인 성역할에 묶어두는 건 옳지 않다”며 “지난해 강남역 10번출구 사건을 계기로 페미니즘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또 “춥고 비가 오지만 10대들이 학교에서 겪는 성차별을 알리는 게 중요해 발언하게 됐다”고 참여 동기를 밝혔다.
민우회가 올해 9월 발표한 ‘성차별 보고서’를 보면 10대가 성차별을 겪는 장소 3위는 ‘학교’였다. 어떤 폭력 요소로부터도 안전지대여야할 학교에서 10대 여성들은 혐오의 시선을 온몸으로 맞고 있는 것이다. 선생님으로부터 당하는 성희롱적 발언부터 성별따라 다른 교복 규정, 성차별을 버젓이 예시로 든 교과서까지 10대 여성들이 겪는 성차별은 심각했다.
민우회 쪽은 “필리버스터 ‘우리는 매일 사건을 겪고 있다’는 10대 여성의 목소리를 통해 학교 내에서 성차별이 사라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장수경 최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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