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사무실 앞에 세워진 표지판. 최근 카라 사무실 앞에서 동물 유기 사건이 잇따르자 카라 쪽이 ‘경고 차원’에서 세워둔 것이다. 카라 제공.
“동물을 유기하지 마세요. 건물 내외부 폐회로텔레비전(CCTV) 상시 녹화 중입니다.”
서울 마포구에 있는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앞 표지판에 적힌 문구다. 이 표지판은 카라 사무실 앞에 동물을 유기하고 도망가는 일이 반복되자 카라 쪽이 ‘경고 차원’에서 지난 9월부터 세워둔 것이다. 지난 8월 한달 동안만 사무실 앞에 동물을 유기한 경우가 4차례에 이른다는 게 카라 쪽의 설명이다. 이 가운데는 거리에서 구조된 것으로 보이는 동물도 있었지만 사람의 손을 탄 것이 명백해 보이는 반려동물도 많다고 한다.
키우던 반려동물을 동물보호시민단체나 동물보호동아리가 활동하는 대학교까지 찾아가 버리고 오는 ‘원정 유기’ 행태가 잇따르고 있다. 반려동물을 길거리가 아닌 동물보호단체 앞에 버림으로써 유기에 따른 죄책감을 덜려는 행태로 추측된다.
동물보호단체들은 단체 사무실 앞 유기 사건은 흔한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임영기 동물권단체 케어 사무국장은 “키우던 개를 케어 사무실 앞 계단 기둥에 묶어놓고 간 경우도 있었다. 11~12월에는 발정기가 찾아와 고양이가 새끼를 많이 낳게 되면 새끼를 상자에 담아 가져다 놓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한혁 카라 활동가는 “카라 사무실에만 40여마리의 동물이 살고 있다. 이미 포화상태인데 사무실 앞에 유기된 동물까지 돌볼 수는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학생들이 동아리를 꾸려 ‘캠퍼스 길냥이’를 돌보는 대학교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외국인 유학생, 자취생들이 반려동물을 키우다 방학·졸업 시즌에 학생들이 설치해둔 고양이 쉼터 옆에 반려동물을 유기하는 식이다. 고려대 길고양이 돌봄동아리 ‘고려대고양이쉼터(고고쉼)’는 올해만 두 차례 캠퍼스에서 유기묘를 발견했다. 정희영 고고쉼 전 임원은 “품종묘에 접종까지 돼 있어서 사람 손을 탄 것이 분명해 보였다. 학생 후원금으로 빠듯하게 운영되기 때문에 버려지는 반려동물까지 맡아 돌보게 되면 동아리 운영에 큰 부담이 된다”고 설명했다.
서울 마포구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사무실 앞에 붙은 경고문구. 최근 카라 사무실 앞에서 동물 유기 사건이 잇따르자 카라쪽이 ‘경고 차원’에서 부착한 것이다. 카라 제공.
상황이 이렇다 보니 카라와 수도권 지역 9개 대학은 지난 8월 “지역 주민들이 학교에 와서 버리고 가거나 졸업생들이 반려동물을 학교에 두고 가는 것으로 의심되는 일이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며 ‘반려동물 유기방지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건국대, 강원대, 삼육대 등에 ‘반려동물은 쓰다 버리는 물건이 아닙니다’라는 현수막이 교내에 내걸리기도 했다.
동물보호단체 등에 동물을 버리는 것 또한 동물보호법(제8조)의 처벌 대상이다. 강동구청 최재민 동물복지팀장은 “우리나라 시스템상 반려동물을 사거나 입양하기가 매우 쉽다. 충동적으로 집에 들였다가 키울 준비가 안 돼 있다 보니 손쉽게 동물을 내다 버리게 된다. 반려동물을 버리는 과정에서 죄책감을 덜려고 동물보호단체 등을 찾아가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 또한 유기 행위임은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