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운전사 ㄱ(62)씨는 지난해 3월 어느 금요일밤 11시께 서울 금천구 한 아파트 단지 앞에서 ㄴ(56)씨를 차에 태웠다. ㄴ씨 요청대로 관악구 쪽으로 향하던 중, ㄴ씨에게서 술 냄새가 풍긴다고 느낀 ㄱ씨는 뒷좌석 창문을 열었다. ㄴ씨가 추운 날씨 때문에 창문을 닫아달라고 요구하면서 실랑이가 오갔다. ㄴ씨는 “중도하차로 신고하겠다”, “택시요금을 내지 않겠다”고 항의하며 내려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ㄱ씨는 하차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채 11분 뒤 애초 목적지 근처에서 ㄴ씨를 내려줬다. 검찰은 ㄱ씨를 감금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법원은 달리 판단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8단독 이강호 판사는 “ㄱ씨가 고의로 ㄴ씨의 신체활동의 자유를 제한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ㄱ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1일 밝혔다. 검찰이 항소하지 않아 이 판결은 확정됐다.
이 판사는 먼저 ㄱ씨에게 감금의 고의가 없었다고 판단했다. 중도하차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ㄴ씨를 목적지까지 태워줬다는 등 이유에서다. 하차 요구를 무시한 채 목적지와 다른 곳으로 향하고, 결국 차에서 탈출하려던 승객을 숨지게 한 경우 감금죄에 해당한다는 게 대법원 판례다. 이번 사건의 경우, ㄴ씨가 중도하차를 요구하면서도 정차 땐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는 게 법원 판단이다.
이 판사는 “ㄴ씨는 말다툼 과정에서 중도하차로 신고하겠다거나 택시요금을 내지 않겠다며 일방적으로 하차를 요구했다. ㄴ씨의 하차 요구가 생명이나 신체에 대한 위협 때문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또 ㄱ씨가 횡단보도나 교차로에서 신호대기로 멈췄는데도 ㄴ씨가 하차하지 않았고, 가족과 통화하면서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고도 했다. 이 판사는 “목적지 근처에서 ㄱ씨가 정확한 하차지점을 묻자 ㄴ씨는 ‘앞으로 좀더 가달라’고 요구한 뒤 택시요금을 내기도 했다”고 했다.
이번 재판에서 ㄱ씨 변론을 맡은 변호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선변호인인 조현권 변호사다. 환경부 법무담당관, 국가인권위원회 법무관을 거친 끝에 2003년 재개업한 조 변호사는 2006년부터 서울중앙지법 국선전담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현소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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