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가 지난 13일 학부모들에게 보낸 편지.
청소노동자 문제로 홍역을 앓고 있는 동국대가 오늘(20일) 열리는 졸업식을 앞두고 학부모들에게 “청소노동자들이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낸 사실이 알려졌다. ‘모범 사용자’로서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본을 보여야 할 대학이 장기화된 학내 갈등의 원인을 일방에 떠미는 모양새여서 논란이 예상된다.
동국대는 졸업식 일주일 전인 지난 13일 교무부총장 명의로 ‘학부형님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편지를 보냈다. 김성훈 교무부총장(교육학과 교수)은 이 편지에서 “졸업식으로 학교를 찾은 부모님들이 청소노동자들의 본관 점거 농성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실까봐 미리 서면을 통해 전후사정을 설명한다”고 썼다. 김 부총장은 “청소노동자 근로장학생 전환은 좋은 아르바이트 자리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고, 민주노총 소속 미화원들이 일자리를 뺏겼다며 억지를 부리고 있다”고 ‘전후사정’을 설명했다.
그는 이어 “국내 대학들은 수년간 등록금 동결, 단계적 입학금 폐지, 입시 전형료 삭감 등 3중고에 시달리고 있다”며 “심화되는 재정난을 타개하기 위해 전 분야에 걸쳐 긴축재정을 시행하고 있는데, 설상가상으로 해마다 10% 이상 인상되던 최저시급이 올해도 16.4% 인상돼 큰 부담이 됐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의 핵심 공약 가운데 하나인 최저임금 인상을 청소노동자 일자리 퇴출의 이유로 든 것이다. 이어 김 부총장은 “미화원들을 고용한 것은 청소용역회사인데 직접 고용하지 않은 학교를 상대로 직접적인 투쟁을 하고 있다”며 청소노동자에 대한 학교의 사용자성도 부정하고 나섰다.
지난해 12월31일자로 8명의 청소노동자가 정년퇴직을 한 동국대는 새해 들어 줄어든 정원 만큼의 청소노동자를 새로 뽑지 않기로 결정했다. 대신 학교 쪽은 “정년 퇴직자 인원만큼 구조조정을 하고 그 자리를 시급 1만5000원짜리 초단시간 학생 아르바이트생으로 채우겠다”고 통보했다. 이에 청소노동자들은 지난달 29일부터 본관을 점거하고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올해 들어 이같은 갈등은 동국대 뿐만 아니라 고려대·연세대·홍익대·이화여대 등 여러 대학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편지를 본 동국대 청소노동자들은 한 마디로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이들은 “정말 학생들을 생각한다면 장학금을 늘려야지 새벽 7시부터 일을 시키는게 좋은 아르바이트 자리냐”, “교육학과 교수가 이런 글을 쓰는게 말이 되냐”는 반응을 보였다.
최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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