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재준 전 국정원장(왼쪽부터), 이병기 전 국정원장, 이병호 전 국정원장이 지난해 11월1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박근혜(66) 전 대통령 시절 국가정보원장을 지낸 3명이 특수활동비(특활비)를 빼돌려 청와대 쪽에 뇌물로 건넨 혐의로 나란히 법정에 섰다. 이들은 “정당한 국정운영에 사용될 것으로 생각해 특활비를 건넨 것”이라며 혐의를 부인했다.
15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417호 형사대법정에서는 남재준(74·구속)·이병기(71·구속)·이병호(78) 전 원장에 대한 ‘특활비 상납’ 첫 정식재판이 형사32부(재판장 성창호) 심리로 열렸다. 세 전 원장이 나란히 법정에 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남 전 원장은 구속상태지만, 하늘색 수의를 입은 이병기 전 원장과 달리 검은 정장 차림으로 나섰다. 이 법정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국정농단’ 및 ‘특활비 상납’ 재판이 열리는 법정이기도 하다. 세 전 원장은 국정원장 특별사업비(남재준 6억원, 이병기 8억원, 이병호 21억원)를 빼돌려 박 전 대통령에게 건넨 혐의(특가법의 국고손실, 뇌물공여)를 받는다.
이들은 “국민께 죄송하다”며 운을 뗐다. 남 전 원장 변호인은 “국민께 많은 심려와 실망을 끼친 점에 대해 죄송하다. 평생 군인으로 살아왔던 피고인은 원장에 임명되고 국가에 헌신한다는 신념으로 업무에 매진했으나, 영어의(수감된) 몸이 됐다”고 했다. 이병기 전 원장도 직접 발언권을 얻고 “모든 것이 국가 예산을 사용하는 데 대한 제 지식이 모자라서 나온 문제이기 때문에 책임이 있다면 기꺼이 지겠다”고 했다. 이 전 원장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배신감’을 표하기도 했다. 그는 “제대로 된 국가 운영을 위해 (특활비가) 쓰였으면 하는 기대와 반대로 쓰여 안타깝고, 배신감까지 느낄 정도였다”고 했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혐의는 조목조목 부인했다. 전 원장 3명은 박 전 대통령 요구로 특활비를 건넨 사실 자체는 인정했지만, 정당한 국정운영 자금 지원 명목으로 건넨 것이라고 입 모았다. 국정원 자금을 불법적으로 빼돌리거나 뇌물을 줄 의도가 없었다는 취지다. 남 전 원장 변호인은 “직속 상위기관이자 국정운영의 최고 중심기관인 청와대에 국정운영에 필요한 예산으로 사용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전달한 것이지, 상관없는 비용으로 사용될 것이라곤 상상조차 못했다”고 했다.
이병기 전 원장 쪽은 특활비가 사용돼 온 전례에 비춰 유죄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했다. 이 전 원장 변호인은 “특수활동비는 그동안 고도의 정치적 활동 위한 비용으로 사용되기도 했고, 사용 용처와 관련 엄격한 규제 규범이 없었다”고 했다. 이어 “대통령과 국정원장의 관계에 비춰보면, 대통령이 국익을 위해 사용하도록 지원하는 것은 격려금과 다를 바 없다”고도 덧붙였다. 이병호 전 원장도 발언권을 얻어 “저는 부임 한 달 만에 범죄를 저지르는 입장이 됐는데 이는 제가 부패해서가 아니라 생각한다. 다른 사람이 원장이 됐다면 그분이 법정에 섰을 것”이라며 “개인 비리 문제가 아니라 오랜 제도적 문제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했다.
이헌수 전 국정원 기조실장과 이원종 전 대통령 비서실장도 이날 함께 법정에 섰다. 특활비 ‘전달책’ 역할을 한 것으로 조사된 이헌수 전 실장은 “제가 잘못한 부분 때문에 다른 원장님께서 고초를 겪게 되신 것을 대단히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특활비 1억5000만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 이원종 전 실장 쪽은 “업무상 횡령된 돈에 대해서는 별도로 뇌물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세웠다. 현소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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