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이후 재판 보이콧을 선언한 박근혜 전 대통령은 마지막 결심공판에서 나타나지 않았다. 다음달 6일 선고공판이 열린다. 공동취재사진
국가정보원장들로부터 특수활동비를 뇌물로 받은 혐의를 받는 박근혜(66) 전 대통령이 “재임 당시 국정원 경비 지원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국선변호인을 통해 밝혔다. 다만 특활비를 지원을 직접 요구하진 않았고, 구체적 용처와 액수에 대해서도 보고받은 바 없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2부(재판장 성창호) 심리로 28일 열린 ‘국정원 특활비 상납’ 재판 준비절차에서 박 전 대통령은 국선변호인을 통해 자신에게 적용된 혐의를 부인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은 남재준·이병기·이병호 전 원장에게서 36억5000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의 뇌물·국고손실)가 있다.
지난해 10월 ‘국정농단’ 사건 추가 구속영장 발부 뒤 재판에 줄곧 불출석하며 국선변호인들과 접견을 거부하고 있는 박 전 대통령이 공소사실에 대한 입장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활비 상납’ 사건 국선변호인인 김수연 변호사는 우편으로 서면질의서를 보낸 뒤 구치소를 통해 박 전 대통령의 자필 답변서를 받는 방식으로 의사를 확인했다고 했다.
김 변호사의 말을 종합하면, 박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13년 5월 이재만·정호성·안봉근 비서관에게서 ‘청와대가 국정원에서 지원받을 수 있는 예산이 있고, 이전 정부에서도 관행적으로 받아 사용했다’는 취지의 보고를 받고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면 국정원에서 예산을 지원받아 필요한 업무에 사용하라’고 말한 적은 있다”고 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국정원장들에게 특활비를 달라고 요구하거나 (정해진 용도와) 무관하게 사용한 적이 없다”며 자신에게 적용된 혐의(국고손실·특정범죄가중처벌법의 뇌물 등)를 모두 부인했다. 국정원의 지원 사실은 인지했지만, 액수나 용처에 대해 몰랐다는 것이 김 변호사가 정한 박 전 대통령 입장이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원장으로부터 돈을 받거나 요구한 사실을 일부 인정하면서도, 뇌물 등은 아니라는 주장을 폈다. 2016년 9월 정 전 비서관을 통해 이병호 전 원장으로부터 2억원을 받아 청와대 직원들의 ‘추석격려금’으로 사용했다고 인정하면서도, 이 전 원장에게 돈을 요구한 적은 없다고 했다. 이어 이 전 원장에게 “이원종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경제적 문제로 어려움이 있으니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면서도 “구체적인 액수를 언급하지 않았고, 실제 이 전 실장이 지원받았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은 김 변호사를 통해 앞으로도 재판에 나오지 않을 계획이라고 전했다. 김 변호사는 다만 “불출석은 어디까지나 건강상의 이유일 뿐, 사법부를 무시하고 재판 거부를 천명했다는 점을 전제로 한 불출석은 아니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이날 같은 재판부 심리로 열린 ‘새누리당 공천개입’ 사건에서도 혐의를 모두 부인했다. 2016년 4월 20대 총선을 앞두고 친박계 인사들을 새누리당 후보로 공천시키려는 계획을 짜고, ‘진박 감정용’ 불법 여론조사를 하는 데 개입(공직선거법 위반)한 적이 없다는 취지다.
이날 재판부는 준비절차를 모두 마치고, 다음 달 중순께 본격적인 심리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만 김 변호사와 함께 ‘국정원 특활비’ 사건 변론을 맡은 정원일 변호사가 사임 의사를 밝힌 점 등을 고려해 ‘새누리당 공천개입’ 사건을 먼저 진행하겠다고 했다. 재판부는 “정 변호사가 일신상의 사정으로 사임을 희망한다는 의견서를 제출했다”며 “변호인 선정 취소 및 추가 선정의 필요성 여부 등을 검토해 결정하겠다”고 했다.
현소은 기자
so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