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의 한 아파트에 사는 허아무개씨는 지난해 7월 ‘물벼락’을 맞았다. 윗집 배관이 터지는 바람에 한 달 넘게 호텔에 ‘피신’해야 했다. 윗집 신아무개씨가 배상 의사를 밝혔지만, 문제는 판이한 피해계산서였다.
허씨는 소파와 식탁 교체비용 등 2453만원을 달라고 했지만, 신씨는 직접 물벼락을 맞은 소파만 배상하겠다고 맞섰다.
특히 문제가 된 것은 1000만원이 넘는 호텔비였다. 허씨 가족은 하루 최대 36만원에 달하는 호텔에 46일간 묵었다.
허씨는 “가격 신경 쓰지 말고 좋은 곳에 묵으라”는 신씨 말을 따랐을 뿐이라고 했지만, 신씨로서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셈이었다. 사건 당일 허씨 가족이 물건을 치우기보다는 동영상을 찍으며 ‘증거 채집’만 했던 것도 신씨는 불만스러웠다.
반년간 다투다 분쟁이 심한 사건을 다루는 집중심리부로 옮겨온 양쪽은 판사의 중재로 합의점을 찾았다.
지난달 15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물이 계속 쏟아져 오염됐을 가능성이 크네요. 소파는 중고로도 200만원 넘을 텐데요.”(판사)
“중고가격으로 그렇습니다.”(신씨 대리인)
소파에 대해선 신씨 쪽이 수긍했다. 다음은 식탁이었다. 허씨 쪽이 물이 튄 식탁까지 바꾸겠다며 설치비용 80만원을 청구한 것이다.
“오수도 아닌데 식탁 정도는 깨끗하게 닦아서 쓸 수 있지 않나요?”(판사)
식탁은 허씨 쪽이 한발 물러섰다. 마지막으로 호텔비와 위자료가 남았다.
“호텔비는 가장 싼걸로 산정할까 하는데요. 하루 12만원 정도네요. 피고, 어떤가요?”(판사)
신씨 쪽은 이를 받아들이며 ‘원고 쪽이 사진을 찍느라 물건을 안 치워 손해가 커졌다’며 위자료 조정도 요구했다.
“자녀도 돌보면서 물을 치우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겁니다.”(허씨 대리인)
“양쪽 입장 적절히 반영해서 화해권고 결정하겠습니다.” (판사)
결국 신씨가 소파 등 재산적 손해와 위자료(장난감 손상비) 등 1477만원을 배상하는 화해권고가 이뤄졌다. 호텔비 등 과도한 청구는 기각하고 위자료는 인정하는 선에서 합의점을 찾은 것이다.
현소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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