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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홍대 누드모델 사진 유출’ 워마드는 페미니즘이 아니다”

등록 2018-05-08 16:38수정 2018-05-09 23:21

워마드, 홍대 누드크로키 모델 사진 유출 사건 파장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가해자 엄벌 청원도 올라와
워마드, 사진은 지웠지만 피해자 조롱과 혐오는 여전
전문가 “누드사진 공개 성희롱과 혐오는 페미니즘 아니다”
워마드 홈페이지 갈무리.
워마드 홈페이지 갈무리.
지난 1일 남성혐오 사이트 ‘워마드’에 ‘미술 수업 남 누드모델 조신하지가 못하네요’라는 게시물이 올라왔습니다. 이 게시물에는 홍익대 미술대학 회화과 누드 크로키 전공수업에서 촬영된 것으로 보이는 남성의 성기와 얼굴이 고스란히 드러난 누드 사진이 담겨 있었습니다. 게시물 작성자는 사진과 함께 ‘누워 있는 꼴이 말세다’ 등과 같이 남성을 성적으로 조롱하는 글을 적었고, 이 글에는 ‘남 누드모델은 정신병이 있다’ 등의 댓글이 달렸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다음날 홍익대 대나무숲을 통해 알려지면서 워마드는 3일 문제의 게시물을 삭제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게시물은 널리 퍼졌고, 파문이 확산했습니다. 그러자 홍익대는 우선 당시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에게 자백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가해자는 나타나지 않았죠. 이후 학교 안팎에서 홍익대가 사건을 덮으려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학교 쪽은 뒤늦게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습니다. 학교 차원에서 긴급대책회의를 열어 △누드 수업 중 휴대전화 회수 △누드모델에게 간이 휴게 공간 제공 △누드 수업 사전교육 강화 △가해학생 추적 및 징계 등의 대책을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서울 마포경찰서는 6일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7일에는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홍익대학교 누드모델 사진 유출한 가해자를 엄벌해 주시길 바랍니다’는 청원 글이 올라왔습니다. 청원한 이는 “해당 사건은 남녀의 성별을 떠나, 피해자가 인지하지 못하게 촬영하였고, 그것을 인터넷 공간에 게시함은 물론, 피해자에게 성희롱을 하는 글을 같이 게시하여 작성함으로써 피해자에게 씻기지 못할 치명적인 피해를 주었다”며 “피해자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도록 해당 사건 성폭력피해자 지원에 힘써 주시고, 가해자를 색출하여 엄벌에 처해 주실 것을 간곡히 청원합니다”라고 썼습니다. 8일 오후 현재 이 청원에 300여명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8일에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를 통해 피해자의 심경이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인터뷰를 한 하영은 누드모델협회 회장은 “(피해자가) 며칠 동안 밥을 못 먹고 잠도 못 자고 계속 울었다고 한다”며 “가장 걱정하는 건 자기가 모델 일하는 걸 부모나 친척이나 지인들이 다 모르는데 이런 심각한 일이 벌어져서 알게 된다면… (피해자가) 더 상처가 크지 않겠느냐”고 말했습니다. 하 회장은 피해자가 “나에게 너무 잔인하다. 무섭고 두렵고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피해자는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 주변에 알리지 않고 아르바이트로 누드모델을 했다고 합니다.

■ 남성혐오에 가난과 무능력에 대한 혐오까지

파장은 ‘워마드’라는 온라인 공간으로 옮겨갔습니다. 워마드는 성 소수자나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포함한 ‘모든 남성을 혐오한다’는 명제를 모토로 탄생한 사이트입니다. 워마드가 문제가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지난해 11월 있었던 호주 아동 성폭행 사건(▶바로 가기 :아동 성폭행 파문’ 워마드…‘미러링’ 사라지고 ‘혐오’만)의 중심에도 워마드가 있었습니다. 지난해 10월 배우 김주혁 씨의 사망 사건에서도 죽음을 조롱하는 워마드 댓글이 비판을 샀습니다. 당시 워마드에는 김 씨의 죽음을 두고 ‘개념남’이라거나 ‘축하드립니다’ 등의 글이 올라왔습니다. 그저 남성이기 때문에 세상에서 사라져야 한다는 시선이 담긴 댓글입니다.

이번 ‘홍익대 누드크로키 모델 사진 유출’ 사건과 관련해서도, 최초 게재 사진은 삭제됐지만 여전히 피해자를 조롱하는 글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8일 피해자의 심경이 담긴 라디오 인터뷰 내용이 워마드에 올라오자 댓글에는 ‘원래도 일 못 해서 돈 받고 옷이나 벗는 주제에 무슨’, ‘응 떠나라 아무도 안 말리노ㅋㅋㅋㅋㅋ’ 등의 의견들이 달렸습니다. 남성에 대한 혐오에 가난과 무능력에 대한 혐오까지 착종돼 혐오가 상승 작용을 일으키고 있는 형국입니다.

경찰 수사에 대한 조롱도 있었습니다. 워마드 게시판에는 과거 워마드 수사에 대한 기사 갈무리 화면과 함께 ‘워마드 수사 작년부터 받았는데 걸린 사람은 한 명도 없다. XXXX들아 또 워마드 수사하겠다고 설쳐대고 있노?’라는 게시글이 올라온 상태입니다.

■ ‘워마드=페미니즘’이라고?

일부에서는 메갈리아에서 떨어져 나온 워마드를 두고 페미니즘 진영 전체를 싸잡아 비난하고 있기도 합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한국 페미니즘이라고 공인받은 워마드에서 벌이는 정신 나간 짓들을 보면 한국 페미니즘의 돌아버린 민낯을 알 수 있다(urwo****)’, ‘이것이 페미니즘의 본모습임. 피해망상에 찌들어서 내로남불만 일삼는 역겨운 존재들임(phy6****)’이라는 식의 글이 확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페미니즘 전문가들은 워마드는 페미니즘이 아니라고 단언합니다. 페미니즘에 대해 오래 연구해온 손희정 문화평론가는 “워마드는 스스로가 자신들은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선언한 지 오래다. 누드모델을 몰래 촬영해 사진을 공유하고 성희롱하는 행위는 페미니즘이 아니다”라며 “페미니즘이라고 얘기하려면 윤리적인 태도가 필수다. 내가 남에게 어떤 폭력을 가했는지 스스로 돌아보지 않는 이들은 페미니스트가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워마드가 페미니즘이냐, 아니냐는 논쟁은 이미 시효가 끝났다는 것입니다.

문화비평가 이택광 경희대 교수도 “혐오라는 민감한 문제를 제기해온 사상적 흐름이 바로 페미니즘이다. 페미니즘은 혐오에 대한 반대다. 그렇기에 워마드의 혐오 표현을 페미니즘과 동일시하기엔 문제가 많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이어 “홍익대 사건의 가해자가 아직 잡히지 않았지만 남자일 수도 있다. 그 사진이 워마드에 올라왔다는 이유만으로 여성으로 생각하고 여성을 견제하는 방식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 냉소주의와 허무주의의 끝, 워마드

그렇다면 워마드는 왜 이렇게 혐오를 조장하는 행위를 반복하는 걸까요?

이택광 교수는 워마드에 두 가지 정서가 겹쳐있다고 말합니다. 바로 냉소주의와 허무주의입니다. 그는 “냉소주의는 현재의 모든 것을 거부하는 체념적 태도이고, 허무주의는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다고 여겨 변화의 가능성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여성 차별이 개선되지 않는 사회 속에서 오는 냉소적이고 허무주의적 태도들이 극단적 혐오로 표출되면서 하나의 삐뚤어진 연대가 형성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삐뚤어진 연대가 정치적·사회적으로 ‘성차별’을 개선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페미니즘 운동에 큰 상처를 안긴다는 겁니다. 이번 ‘홍익대 누드크로키 모델 사진 유출’ 사건에 우려의 시선을 보낼 수밖에 없는 까닭입니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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