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실행된 사례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지만, 문서들이 주는 충격이 크다. 심의관들이 양승태 대법원장이 대법관으로 제청할 가능성이 무척 높은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이 선호하는 문서 스타일에 맞추려고 노력한 것과 무관치 않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이 지난 25일 공개한 조사보고서에 등장하는 표현이다. 행정처 판사들이 차기 대법관이 유력한 고위법관에게 잘 보이려고 ‘실행되지도 않을’ 문건을 수년간 만들었다는 논리다. 사법부 독립을 뿌리째 흔들 만한 문건이 무더기로 쏟아진 것에 비하면, 특조단의 인식이 안이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특조단이 문건과 관련해 ‘내용만 요란했을 뿐 거의 실행되지 않았으며 양 전 대법원장에게 보고된 사실도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힌 것도 일선 판사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법원행정처의 기능과 조직을 잘 아는 법관들은 해당 문건의 ‘실행’이나 ‘대법원장 보고’가 없었다는 점을 납득하지 못했다. 임 전 차장은 양 전 대법원장 재임 기간 행정처 기획조정실장과 차장을 연달아 4년7개월간 맡으며 사법행정 기획과 집행을 모두 맡은 ‘양승태 사법부의 황태자’였기 때문이다. 그가 지시한 문건이 단순히 ‘생산’만 됐을 리 없다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러나 특조단은 28일 기자간담회에서 “충성심이 강한 임 전 차장이 상고법원 컨트롤타워를 맡으면서 지나치게 정무적 발상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상고법원 방해 공작이 너무 집요해 임 전 차장이 울컥한 심정에서 직접 작성하면서 표현이 과격해진 경우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판단은 결과적으로 이번 사태의 책임을 임 전 차장 한 사람에게 돌리는 결과를 낳았다. 양 전 대법원장의 지시와 묵인 가능성을 배제한 채 사법관료화에 따른 판사들의 ‘자발적 복종’이라는 논리를 내세워 일종의 ‘꼬리 자르기’를 한 셈이다. 임지봉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은 “법관 정보 수집을 지시하고 이를 취합해 문건화한 것은 대법원장의 보고와 지시 없이 이뤄지기 어렵다. 수사로 규명돼야 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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