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이 4월9일 경기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에 참석해 인사말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
김명수 대법원장이 이르면 이번 주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 농단’ 관련자의 처리 방침을 결정한다. 고위법관들이 ‘수사 신중론’과 ‘고발 불가론’을 펴는 상황에서, 11일 59개 법원 대표 119명이 참석하는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어떤 의견을 낼지에 법원 안팎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회의에는 ‘성역 없는 엄정한 수사 촉구’, ‘대법원과 법원행정처의 수사 협조 책무’ 등의 안건이 올라와 있다.
법원 내부에선 ‘사법부를 검찰 수사로 내몬 것은 다름 아닌 사법부’라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해 초 양승태 사법부의 법관 뒷조사 의혹이 처음 제기된 뒤 1년여에 걸쳐 세 차례 자체 진상조사를 벌이고도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른 기관이었다면 벌써 검찰로 넘어갔을 사안이었다.
3차 조사를 맡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은 재판 거래 시도와 구체적인 법관 뒷조사 문건을 확인하고도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 등이 ‘조사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직접 조사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특조단은 “고위법관이 관여한 사실이 없다”, “문건 내용은 실행되지 않았다”며 면죄부를 줬다가 여론의 호된 역풍을 맞고 있다.
이와 관련 수원지법 김도요 판사는 지난 9일 법원 내부통신망에 “사법부 내부에서 심각한 문제가 드러났을 때 외부 견제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 사법부 전체가 책임지는 방식으로 고발하는 것도 적극 고려돼야 한다”며 법관회의가 고발 주체로 나서달라는 글을 올렸다. 앞서 내부통신망에는 “특조단이 밝히지 못한 부분, 조사하지 못한 인물은 형사 조처를 해 규명”(허용구 대구지법 부장판사), “수사를 통해 명확한 결론이 내려지지 않으면 재판 신뢰 회복 불가”(송경근 전주지법 군산지원장) 등 극도로 커진 사법불신 여론을 우려하는 판사들의 목소리가 올라온 바 있다.
‘사법 농단’에 대한 확실한 책임 추궁을 위해서라도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많다. 법원이 가진 권한은 ‘현직 법관에 대한 징계’뿐이다. 양 전 대법원장 등은 이미 옷을 벗었다. 현직에 있어도 징계시효(3년)가 짧아 상당수 관련자에게 책임을 물을 방법이 없다. 소속 법원 판사회의에 참여했던 한 판사는 10일 “징계시효와 관계없이 책임을 묻고 특조단의 임의조사 한계를 넘어서려면 검찰 수사 밖에는 방법이 없다. 국민들이 고발을 이어가고 있는데 법원이 덮는다고 덮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미 법관회의에는 법관대표 20명 발의로 “사법부 자체 조사가 갖는 한계를 인정하고, 이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수사를 촉구해야 한다”는 의안이 발의된 상태다.
한편 법조계 일부에서는 양 전 대법원장과 전·현직 고위법관 조사를 국회 국정조사에 맡기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6·13 지방선거 이후 여야가 20대 국회 후반기 원구성 협상을 하며 ‘사법 농단 국정조사’ 카드가 급부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법부 견제 기능을 수행하는 입법부가 행정부(검찰)를 대신해 나설 수 있다는 논리이지만, 현재 국회 구성과 과거 전례로 비춰볼 때 ‘사법 농단’에 대한 진상규명보다 정치공방으로 흐를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김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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