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기준으로 국민연금 기금 규모는 약 621조원이며, 이 가운데 국내 주식에 투자한 금액은 약 131조원으로 우리나라 주식 시가총액 7%에 달한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곽태선 전 베어링자산운용 대표가 서류·면접 최고점을 받고도 탈락한 것으로 보아, 과거 정권이 공개 모집 절차를 무력화시키고 역량도 안 되는 인물을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CIO·기금이사)에 앉힌 상황과는 달라 보인다. 그러나 청와대가 특정인에게 기금운용본부장 지원을 권유하는 등 ‘사실상 내정’으로 읽히는 행보를 한 건 공모 취지에 어긋난다.”
300여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공적연금강화 국민행동 구창우 사무국장은 6일 1년째 비어 있는 기금운용본부장 인선 과정에 청와대 인사가 개입했다는 논란에 대해 이렇게 진단했다. 이 단체는 국민의 노후자금인 국민연금기금을 정권과 재벌 외압으로부터 지킬 수 있는 인물을 기금운용본부장으로 뽑아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공모를 하는 기금운용본부장 자리에 특정인에게 지원을 권유한 것은 다른 해석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면서도 “세계 3위 규모의 거대한 자산을 운용하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에 적합한 인물을 기용하려는 노력의 하나였다”고 해명했다.
앞서 기금운용본부장 공모 과정에서 탈락한 곽태선 전 베어링자산운용 대표는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공모 전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에게서 지원 권유 전화를 받았다”며 “청와대 인사수석실에서도 ‘지원서 작성에 어려운 점이 있으면 얘기하라’고 연락해 왔다”고 밝힌 바 있다. ‘청와대 인사 개입’ 논란이 불거진 배경이다.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이날 언론 인터뷰에서 “장하성 실장과 인사 관련해 통화한 적이 없다”며 “(곽 전 대표는) 청와대의 7대 비리 고위공직 후보자 인사검증 기준과 관련한 중대한 흠결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국민연금기금 규모는 약 621조원이며, 이 가운데 국내 주식에 투자한 금액은 약 131조원으로 우리나라 주식 시가총액 7%에 달한다. 자본 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탓에 기금운용본부장을 새로 뽑을 때마다 정권 개입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찬성을 의결하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홍완선 전 본부장도 임용 과정에서 부적절성 논란이 있었다. 홍 전 본부장은 공모 당시 서류심사의 경력 평가에서 8위였고 후임인 강면욱 전 본부장도 서류심사의 경력 점수가 18명 중 9위였지만, 둘 다 면접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홍 전 본부장은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의 대구고 동문이었고, 강 전 본부장은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과 고교·대학 선후배 사이였다.
이번 논란을 계기로 국민연금 기금운용의 취약한 독립성을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기금운용본부장은 외압에서 자유롭지 못하면서도 막중한 책임까지 져야 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이를 맡으려는 능력있는 인물이 드물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은 이날부터 19일까지 기금운용본부장 후보자 지원서를 받는 등 재공모 절차에 들어갔다.
박현정 성연철 정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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