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법과 양심’보다 ‘스탠스’ 앞세우다 전략 꼬인 양승태 행정처

등록 2018-07-11 20:59수정 2018-07-11 21:50

통진당 소송에 ‘스탠스’ 따지다 혼선
사법농단 문건 용어들 살펴보면
‘우군화’·‘원교근공’·‘빅딜’
법과 양심에 따른 판단은 뒷전
사법부 득실 따져 행보 바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6월1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시흥동 집 인근 공원에서 재임 시절 일어난 법원행정처의 재판거래 파문과 관련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6월1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시흥동 집 인근 공원에서 재임 시절 일어난 법원행정처의 재판거래 파문과 관련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BH(청와대)측의 입장 최대한 경청하는 스탠스로 우호적 관계 유지”(2015년 4월12일 ‘성완종 리스트 영향 분석 및 대응 방향 검토’ 문건), “BH와 비공식 접촉…추가적인 전략적 스탠스도 가능”(2015년 7월28일 ‘상고법원 입법 추진을 위한 BH 설득방안’ 문건)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문건에는 ‘스탠스’(stance)라는 말이 유독 자주 등장한다. 상고법원 관련 청와대(BH)와 정치권 설득방안 등을 짤 때는 매번 언급된다. 대외적으로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는 헌법 제103조를 금과옥조로 삼아야 할 법원이, 사법부에 돌아올 득실을 따져 주요 사건을 대하는 ‘스탠스(입장)’를 저울질해왔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양승태 대법원의 ‘스탠스’는 말 그대로 상황 변화에 따라 이리저리 바뀌거나 혼선을 빚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통합진보당 사건이다. 2014~15년 집중 생산된 문건에는 통진당 소송을 헌법재판소와의 최고법원 ‘위상 경쟁’에 활용하는 부분이 두루 등장한다. 2015년 1월17일 사법정책실에서 작성한 문건에서 행정처는 “헌재의 위상에 관한 일반적인 인식을 흔들 수 있는 기회”, “(헌재의) 재판취소 방지를 위한 압박카드 활용 가능” 등을 이유로 헌재 결정을 반박하는 판결을 내놓는 방안을 검토한다.

2015년 6월15일 양승태 행정처에서 작성된 ‘통진당 지역구 지방의원 행정소송 [BH관련]’ 문건
2015년 6월15일 양승태 행정처에서 작성된 ‘통진당 지역구 지방의원 행정소송 [BH관련]’ 문건
애초 양승태 행정처는 통진당 의원들의 지방의원직까지 박탈하는 전략을 모색했다. 2015년 6월 작성된 ‘통진당 지역구 지방의원 행정소송(BH관련)’ 문건을 보면, 법원행정처는 “통진당의 재창당을 사전억제”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장으로 하여금 소송을 제기하도록 ‘사주’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대법원 자체조사단은 이 문건에 대해 “대법원과 헌재 사이에 위상 관련 갈등 등이 있는 상황에서 사법부 위상 제고를 도모하면서도 청와대가 관심을 가지는 통진당의 재창당 움직임을 견제할 수 있는 방안을 청와대 측에 제시함으로써 청와대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준비를 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불과 5개월 뒤 전주지법에서 통진당 지방의원의 직위를 유지하는 판결이 나오자 법원행정처는 전주지법 공보판사에게 “(해당 판결은) 헌재의 월권을 지적했다는 점에서 적절하다”는 취지의 ‘공보지침’을 보냈다. 최고법원 위상 경쟁 탓에 대법원의 ‘스탠스’가 다시 바뀐 것이다. 이 문건은 당시 언론에 일부 유출돼 논란이 일었고, 이번 대법원 자체조사 과정에서도 중요도가 ‘상(A)’으로 분류됐지만 끝내 공개되지 않았다.

법리보다 정무적 판단을 앞세워 재판 결과의 유·불리를 따지는 행보는 대법원 재판까지도 이어졌다. 2016년 6월8일 통진당 국회의원들이 의원직을 인정해달라며 낸 소송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할지 검토하는데, 이때도 “국회의원 직위 상실 여부에 관한 판단 권한이 사법부에 있음을 보다 명징하게 외부에 알릴 수 있”다는 것이 전합 회부의 ‘긍정적 요소’로 언급됐다.

사법 농단 관련 문건에는 또 ‘우군화 전략’, ‘시그널링’, ‘빅딜’, ‘압박 카드’, ‘핵심·주변세력’ 등 군이나 첩보기관에서 쓸법한 용어도 자주 나온다. 실제로 대법원장에게 비판적인 판사 및 변호사 동향 파악과 사찰, 재판 거래 등 은밀한 내용을 담은 문건에 주로 쓰였다. ‘상고법원은 위헌적 발상’이라며 반대했던 대한변호사협회를 겨냥해서는 ‘원교근공’이라는 말을 써가며 압박 방안을 검토했다. ‘먼 나라와 친교를 맺고 이웃은 공략한다’는 전국시대 고사성어로, 각 지방변호사회에는 힘을 실어주고 중앙조직인 대한변협은 고립시키자는 ‘계책’이었다.

현소은 기자 soni@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