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 윤서인씨 유튜브 영상 갈무리. 한겨레 자료사진
고 백남기씨 유족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만화가 윤서인씨가 법원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2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16단독 최미복 판사는 만화가 윤서인(43)씨와 김세의(42) 전 문화방송(MBC) 기자에 각 벌금 7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언론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는 위치임에도 불구하고 가족을 잃은 슬픔에 처한 피해자의 고통을 가중시켰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윤씨가 비방 목적으로 사실을 적시했고 그 내용이 고 백남기씨의 딸 백민주화씨의 인격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딸 백씨는 공권력의 과잉진압 논쟁을 이유로 공적 논쟁의 장에 들어섰다”며 “특정 시기에 한정된 범위에서 관심을 끈 인물의 사생활을 언급해 비난하는 것은 공적 논쟁의 장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을 뿐 논쟁에 기여하는 바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공권력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아버지의 죽음을 애통해하는 피해자의 진정성을 의심하고 희화화해 인격권을 허물어뜨렸다”고 밝혔다.
다만 재판부는 허위 사실을 적시해 유족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에 대해선 무죄 판단을 내렸다. 재판부는 “풍자만화의 경우 풍자와 은유, 희화적표현기법이 흔히 사용되고 일반 독자도 그런 속성을 감안해 받아들이는 만큼 어느 정도 과장이 용인된다”며 “윤씨의 만화에 허위사실을 암시하거나 허위의 인식이 있었다고 보기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
지난 11일 검찰은 윤씨와 김씨에게 각각 징역 1년을 내려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한 바 있다. 이들은 2016년 백남기씨가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병상에 누워있을 당시 딸 민주화씨가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시댁과 가족모임을 하고 있었다는 점을 알게 되자 딸 백씨가 아버지에 대한 병세는 관심도 없이 발리에서 휴가를 즐기는 것처럼 묘사한 말과 글을 인터넷에 올린 혐의로 기소됐다. 또한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고자 백씨 가족이 의료진과 협의해 혈액투석을 중단한 사실을 두고도 마치 의도적으로 모든 치료를 거부한 것처럼 표현하기도 했다.
고 백남기씨는 2015년 11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여했다가 경찰의 물대포 직사 살수로 지난 2016년 9월 25일 숨졌다.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는 고 백남기 농민의 사망이 과잉진압 때문이라고 결론 내렸다.
윤서인씨는 그해 10월4일 가족 동의가 없어 의료진이 아무 조치도 취하지 못하는 그림과 함께, 딸 백씨가 비키니를 입고 해변가에 누워 ‘아버지를 살려내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는 것처럼 묘사해 자유경제원 홈페이지에 실었다. 김세의씨는 그달 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로 매정한 딸이 있다. 아버지가 급성신부전으로 위독한 상황에서 의료진은 투석치료를 하지 못했다. 바로 가족들이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사실상 아버지를 안락사시킨 셈”이라고 적었다. 이어 “더 놀라운 것은 위독한 아버지의 사망 시기가 정해진 상황에서 해외여행지 발리로 놀러 갔다는 사실”이라며 “영화 '인천상륙작전'의 명대사가 떠오른다. ‘이념은 피보다 진하다’”고 썼다.
김세의씨는 선고공판이 끝난 뒤 항소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김씨는 “백민주화씨에 대해 일부러 마음 아프게 상처 드리려 한 것은 아니다. 앞으로 발언할 때 상대방 마음을 고려해야 하지 않나 싶다”면서도 “남들이 모르는 사실을 새롭게 밝힌 것은 아니었다. 그 부분을 2심 재판부에서 판단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김씨는 사문서위조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강용석 변호사를 언급했다. 강 변호사는 이번 재판에서 김씨와 윤씨의 변호를 맡았다. 김씨는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강용석 변호사가 구속돼 충격을 받았다. 변호인을 바꿀 생각은 없다”며 ‘2심에서 강 변호사가 옥중변론 할 계획인가’라는 취재진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고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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