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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지금 함께 사는 사람과 법적 가족이 될 순 없는 걸까요?

등록 2018-11-21 17:17수정 2018-11-22 11:21

여성가족부 동거가족 간담회
“수년간 함께 산 친밀한 동반자
수술 결정 권한도 주어지지 않아”
지난 2016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정문 앞에 세워진 ‘파트너등록법’(가칭)  입법 촉구 서명 팻말. 트위터 갈무리
지난 2016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정문 앞에 세워진 ‘파트너등록법’(가칭) 입법 촉구 서명 팻말. 트위터 갈무리
“심적으로 의지할 동반자가 있지만, 자녀들 반대로 결혼(혼인신고) 못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법적 보호자로 인정되지 않으니, 배우자가 응급실에 실려갔을 때 (수술 동의서 등에) 사인을 하거나 중요한 사항을 결정할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자녀들이 등장하는 순간, 가장 친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은 (병실에) 들어가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는 거다. 함께 사는 두 사람이 부부와 유사한 관계를 유지하면 동반자로 인정해 권리를 보장하고 책임을 다할 수 있게 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21일 방송인 허수경씨가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에게 당부한 이야기다. 이날 진 장관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결혼을 하지 않은 채 다른 사람과 수년간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과 간담회를 열었다. 지난 7년 동안 남편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허수경씨 역시 간담회 참석자 가운데 한 명이다. 법적으로 ‘한부모 가정’ 구성원인 그는 “한부모 가정·동거 사실 등이 아이들 또래 집단에 알려지게 되면 놀림감이 돼 상처를 받는다. 부모의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자녀에 대한 보호가 필요하다. 현재 존재하거나, 앞으로 비중이 늘어날 가정 형태 속 아이들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양쪽 엄마·아빠가 있음에도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거나 (사실혼을) 증명해내기 위해 여러 관문을 거치지 않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21일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이 결혼을 하지 않은 동거 가족들이 겪은 어려움 등을 듣는 간담회가 열렸다. 이날 참석자 중 한명인 방송인 허수경씨가 의견을 말하고 있다. 사진 여성가족부 제공
21일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이 결혼을 하지 않은 동거 가족들이 겪은 어려움 등을 듣는 간담회가 열렸다. 이날 참석자 중 한명인 방송인 허수경씨가 의견을 말하고 있다. 사진 여성가족부 제공

정확한 통계는 없으나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채 공동생활을 하는 이들은 늘고 있으며 앞으로 결혼을 기반으로 하지 않은 다양한 가족 형태가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11월 통계청이 만 13살 이상 약 3만9천명을 조사해 발표한 ‘2018년 사회조사’ 결과를 보면 ‘결혼을 하지 않더라도 같이 살 수 있다’고 응답한 이들은 56.4%로, ‘결혼을 해야한다’(48.1%)고 생각한 이들보다 많았다.

이러한 변화에도, 결혼을 선택하지 않는 사람들은 여전히 사회적 편견이나 제도적 차별을 겪고 있다. 지난 2016년말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내놓은 ‘다양한 가족의 출산 및 양육실태의 정책과제-비혼 동거가족을 중심으로’ 보고서를 보면, 2000년 이후 동거한 적이 있거나 동거 중인 253명(만 18~49살)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조사에서 응답자 절반 이상(51%)이 부정적 편견이나 곱지 않은 시선 등으로 차별을 당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또 45.1%는 정부 혜택 및 서비스에서 차별을 겪었다. ‘받을 수 있는 혜택에서 혼인신고한 부부가 아니라서 제외됐다’거나(34.2%) ‘사회서비스 이용에 한계가 있었다’(31.6%)고 한 응답이 많았다

자료: 통계청
자료: 통계청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동거 생활을 하는 이들을 성적으로 문란하고 비도덕적인 사람으로 보는 등 부정적 시선으로 인해 가까운 가족에게도 동거 사실을 말하지 못하는 여성들도 많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박나은(가명)씨 역시 그런 상황이다. 각각 1인 가구로 살던 그와 동거인은 7년 전, 함께 지내는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살림을 합치게 됐다. 법적 부부가 아니다보니 정부 지원에서 종종 배제된다.

“현재 나는 건강보험 지역가입자인데 동거인을 배우자로 인정받으면 피부양자가 돼 부담이 줄어든다. 사소하게는 자동차 보험료, 주택청약 신청 등에서 1인 가구로 존재할 때 받는 혜택이 적다.” 그럼에도 그는 결혼을 선택하지 않았다. 결혼과 동시에 주변 가족관계가 한꺼번에 두 사람의 삶으로 들어오는 것이 부담됐다. 그러한 관계 속에서 두 사람이 갈등없이 살 수 있을지도 우려스러웠다. 박나은씨는 “개인 가치관이나 성정체성에 따라 누군가와 함께 살고 또 분리되는 관계들이 좀더 많아졌을 때 우리 사회에서 경직된 가족 문화가 없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은지(가명)씨는 지난 15년의 동거 생활에 대해 ‘도망자같이 숨어지낸 세월’이라고 표현했다. 배우자와 자신, 양쪽 가족 문화가 너무 다르고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결혼을 하는 게 어려웠다. 그는 결혼하지 않은 상황에서 아이를 양육하는 건 어렵다고 판단해 출산을 포기했다. “아이 대신 고양이 세 마리를 함께 보살피고 있다. 내 삶이 딱히 부족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행복하려는 데 제약을 받았구나 싶다.”

지난 2015년 정부는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비혼 동거가족에 대한 사회·제도적 차별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으나 실질적인 법·제도 개선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유럽을 비롯한 국외에선 결혼 밖 동거 등 생활공동체를 법적으로 보호하는 제도가 존재한다. 프랑스가 1999년부터 시행한 공동생활약정(팍스·PACS)법이 대표적이다. 이성이든 동성이든 함께 생활하는 이들의 관계를 결혼과는 별개로 가족으로 인정해 동일한 세제 및 사회보장 혜택을 주는 것이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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