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10일 국회에서 열린 제16회 세계 사형폐지의 날 기념식 및 토론회에서 인혁당재건위 조작사건 사형수 유족인 이영교씨가 발언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무기징역을 선고한 2심 형량이 너무 낮다’며 사형을 요구하는 검찰의 상고가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가 사실상 사형제 폐지국이고 양형 부당으로 상고할 수 없다는 게 대법원의 일관된 판례여서 검찰의 이런 기계적인 상고 관행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법원은 지난달 29일 ‘어금니아빠’ 이영학씨 사건 상고심에서 “검사가 ‘원심의 형이 너무 가볍다’는 것을 상고 이유로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이 대법원의 확립된 판례로, 해당 판례를 변경할 필요가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며 상고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이른바 ‘수락산 살인사건’에서도 같은 이유로 검찰의 상고를 기각한 바 있다. 김아무개씨는 2016년 5월 서울 노원구 상계동 수락산 등산로에서 60대 여성 등산객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줄곧 사형을 구형했던 검찰은 2심까지 무기징역 판단이 나오자 대법원에 상고했지만 기각됐다.
대법원이 매번 이런 판단을 내놓는데도 검찰의 태도는 그대로다. 더구나 언론 보도 등으로 국민적 공분을 일으킨 사건이라면 더 그렇다. 검찰은 지난달 21일 경기 양평 전원주택 살인사건에서도 ‘피고인 허아무개씨에게 내려진 무기징역이 너무 가볍다’는 이유로 상고장을 냈다. 당시 2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1부(재판장 김인겸)는 1심과 같이 무기징역을 선고하면서 “(검찰의 상급 기관인) 법무부가 1997년을 마지막으로 20여년째 사형을 집행하지 않는 상황에서 사형에 처해달라며 항소하는 게 과연 올바른 검찰권 행사인지 의문”이라고 꼬집은 바 있다.
대법원의 확립된 판례는 ‘형사소송법 해석상 검사는 원심의 형이 너무 가볍다는 이유로 상고를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김대근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주로 1심에서 사형이 선고되고 2심은 무기징역 등으로 감형됐을 때 검찰이 양형 부당 취지로 상고하는데 대법원은 판례 등을 참고해 이를 일관되게 기각하고 있다. (대법원이) 상고 이유와 관련된 형사소송법 조항(제383조 4항)을 ‘피고인의 권리 구제를 위한 조항’으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한 판사는 “흉악범죄로 국민 분노가 들끓게 되면 검찰이 여론을 살펴 사형을 구형한다. 기각될 것을 알면서도 일단 상고하고 보는 것”이라며 “한국이 실질적인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된 상황이기 때문에 대법원 판례가 바뀔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짚었다.
반면 검찰은 형사소송법 제383조 4항에 ‘피고인을 위한 조항’이라는 문구가 직접 명시되지 않은 이상 판례 변경을 위해 상고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검찰 관계자는 “주요 사건은 형사상고심의위원회에서 외부 의견을 듣고 상고 여부를 결정한다. 사형제 존폐 논란이 있지만, 흉악범에게 사형을 구형하는 것이 범죄를 예방하는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고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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