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용 피해자 변호인단이 지난달 4일 도쿄 신일철주금 본사 앞에서 원고들 중 유일한 생존자인 이춘식 할아버지의 메시지를 기자들에게 들려주고 있다. 변호인단은 신일철주금과 면담이 이뤄질 경우를 대비해 이 영상을 녹화했다고 말했다.
일제 강제노역 피해자들이 일본 전범 기업 신일철주금이 가진 한국 내 자산을 압류하는 강제 절차에 들어갔다. 지난해 10월 한국 대법원의 손해배상 판결을 일본 정부와 해당 기업이 거부한 데 따른 후속 조처다. 실제 압류가 이뤄질 경우 ‘한국 해군 레이더 조준’ 논란에 더해 일본 쪽의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일본 정부는 그간 ‘일본 내 한국 정부 재산 압류’로 맞불을 놓겠다고 공언해 왔다.
신일철주금 강제동원 피해자 소송대리인단은 2일 오후 대법원 판결을 이행하지 않는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한 강제집행절차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강제동원 피해 생존자인 이춘식(95)씨 등 2명은 2018년 마지막 날인 지난달 3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결(피해자 4명에게 각각 1억원씩 배상)에 따른 손해배상액을 보전받기 위한 압류신청서를 관할 법원인 대구지법 포항지원에 제출했다.
압류 신청 대상 자산은 신일철주금이 한국 기업인 포스코와 합작해 만든 제철 부산물 재활용 전문업체 피엔아르(PNR)의 주식 234만여주다. 대리인단은 신일철주금이 가진 피엔아르 지분(전체 주식의 30%) 평가액이 최소 1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손해배상 채권을 보호받기 위한 압류 신청을 하면 법원 판단을 거쳐 압류 명령이 떨어진다. 피엔아르는 법원 압류 명령을 송달받는 시점부터 해당 자산을 처분할 수 없게 된다. 신일철주금이나 피엔아르 쪽 채권자 등이 주식 압류에 이의를 제기할 가능성도 있어 실제 압류 실행은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주식 등에 대한 압류신청서를 법원에 제출할 때는 주식을 현금화하기 위한 주식 매각 명령까지 함께 신청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리인단은 “주식 매각 명령을 신청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여전히 협상의 여지를 남겨놓기 위해서다. 대리인단은 “신일철주금과의 협의를 통해 판결 이행을 비롯한 강제동원 문제의 원만한 해결을 원한다. 피해자들의 권리 구제를 위해 하루빨리 협의에 나설 것을 다시 한 번 촉구한다”고 밝혔다.
앞서 대리인단은 지난해 12월4일 일본 도쿄 신일철주금 본사를 직접 방문해 면담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이에 “12월24일 오후 5시까지 확정 판결에 따른 손해배상 관련 협의에 나서지 않으면 강제집행 절차에 돌입하겠다”는 뜻을 전한 바 있다. 하지만 신일철주금은 대리인단이 정한 시한까지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았다.
이날 대리인단은 “이번 압류 신청은 국내법에 따른 판결의 정당한 이행을 위한 조치이며, 아울러 국제인권법에 따른 피해배상과 공식사죄, 재발방지 등을 요구할 피해자 권리를 실현하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해를 넘기면서까지 판결 이행에 대한 어떤 성의도 보이지 않는 반인권적 태도에 강력한 유감의 뜻을 밝힌다. 한국 사법부 판결을 공개적으로 무시하고 일본 기업에 판결을 따르지 말도록 압력을 가하는 일본 정부에게도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고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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