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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임세원법 나왔지만 ‘함께 살아보자는 뜻’ 실현 아직 먼 길

등록 2019-01-31 07:52

【‘임세원법’ 애도를 넘어 대안으로 ①】

여당서 내놓은 정신건강복지법안 보니
강제입원 결정 사실상 가족에 전가한
보호의무자 폐지·사법입원 도입 추진

정신장애인 입원치료 체계 개편만 초점
환자·가족 부담 덜고 낙인 해소하기 위한
치료·재활·복지망 구축 대책은 부실
31일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지 한달을 맞은 가운데, 국회에선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과 의료법 개정안이 잇따라 발의됐다.
31일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지 한달을 맞은 가운데, 국회에선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과 의료법 개정안이 잇따라 발의됐다.
31일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지 한달을 맞은 가운데, 국회에선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과 의료인에 대한 폭력 처벌을 강화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잇따라 발의됐다. 이 가운데 ‘임세원법’이란 이름이 붙은 건 더불어민주당 ‘안전한 진료환경 구축을 위한 티에프’ 팀장인 윤일규 의원이 대표 발의한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이다. 정신질환 입원 체계를 전면 개편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정신건강복지법에는 환자가 스스로 입원하는 ‘자의입원’, 보호의무자(민법상 부양의무자나 후견인) 동의가 입·퇴원 조건인 ‘동의입원’, 보호의무자 2명이 신청해 의사가 자·타해 위험이 있다고 진단한 경우인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 지자체장이 자·타해 위험이 있다는 의사 진단을 통해 입원시키는 ‘행정입원’ 등이 명시돼 있다.

개정안에서 가장 눈에 띠는 건 환자가 원하지 않는 비자의입원 결정을 사실상 가족에게 전가해온 ‘보호의무자 제도’를 폐지하고, 가정법원에 입원 심사를 맡기는 ‘사법입원제’ 도입이다. 이에 따라 대표적인 비자의입원 유형인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을 ‘보호입원’으로 바꾸고, 환자와 가까운 가족이나 민법에 따른 후견인이 입원 신청을 하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2명 진단으로 최장 2주까지 입원시킬 수 있다. 2주 이상 강제입원이 필요한 경우 가정법원 심사를 청구하고, 가정법원이 환자와 이해관계인을 심문해 강제입원 유지 여부 및 기간을 정하도록 했다. 앞서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강제입원 과정에서 몸과 마음의 고통을 겪은 환자들이 가족과 의사에게 적대감을 느끼는 문제가 심각하다며, 안전한 진료 환경을 위해선 ‘사법입원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해왔다.

서울 은평구 응암동 서울특별시 은평병원 ‘24시간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실’에서 지난 24일 오후 한 입원환자가 의사와 면담을 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서울 은평구 응암동 서울특별시 은평병원 ‘24시간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실’에서 지난 24일 오후 한 입원환자가 의사와 면담을 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2017년 5월 정신건강복지법이 시행되기 전까지, 우리나라에선 보호의무자 2명 동의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1명 소견만 있으면 환자를 강제입원시킬 수 있었다. 2016년 해당 조항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했고, 법이 개정되면서 모든 강제입원에 대해선 한달 내 국립정신병원 산하 입원적합성심사위 심사를, 3개월 뒤 입원 연장시 시·군·구 산하 정신건강심사위 심사를 거치도록 했다. 그러나 두 기관의 입원 승인율이 97~98%에 이르는 등 환자들의 ‘말할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 서구에선 가족이 입원신청이나 동의를 할 순 있지만, 강제입원 결정은 중립·독립성을 확보한 기관이나 법원이 맡아 왔다. 가족내 갈등을 예방하고, 권한 남용을 막기 위해서다.

보호의무자 제도 폐지와 사법입원제 도입은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강화한다는 면에선 긍정적이다. 그러나 사법적 판단 개입으로 더 큰 사회적 낙인이 찍히질 모른다거나 현재의 장기입원 구조가 고착화 될 것을 우려하는 환자들이 있다. 의사가 진단하는 보호입원 요건을 자·타해 위험이 있는 경우 뿐 아니라 환자가 판단 능력이 없을 때 질환 악화가 예상되는 경우로 확대한 대목 역시 사회적 논란이 예상된다. 개정안에는 강제입원 전환을 금지하고 개방병동 입원만 허용하는 ‘비공식 입원’이 새로 들어가 있다. 그러나 현행법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진단에 따라 입원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데, 해당 입원은 이러한 조건이 붙지 않는다.

고 임세원 교수 유가족은 우리 사회에 ‘정신적 고통을 겪을 때 낙인 없이 적절한 치료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는 뜻을 전했다. 여러 전문의들도 이번 비극을 계기로 ‘정신질환자가 위험하다’는 편견이 더 강화되어선 안된다고 주문했다.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에는 강제입원 결정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 강조돼 있지만, 환자와 가족 부담을 실질적으로 나누고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대안은 충분히 제시되지 못했다. 민주당 티에프는 정신질환 증상 관리를 위해 광역·기초자치단체가 설치한 정신건강복지센터에 대한 실태조사를 진행하고, 센터 신규 설치·종사자 처우 개선을 정부에 촉구했다고 밝혔다.

지난 2017년 서울 광진구 중곡동 국립정신건강센터 5층 회의실에서 기자들과 만난 정서경(가명·아래 가운데)씨와 조 현병을 앓은 셋째 딸(오른쪽). 국립정신건강센터 제공
지난 2017년 서울 광진구 중곡동 국립정신건강센터 5층 회의실에서 기자들과 만난 정서경(가명·아래 가운데)씨와 조 현병을 앓은 셋째 딸(오른쪽). 국립정신건강센터 제공

그러나 적은 비용으로 오랫동안 병원·시설에 고립돼 온 정신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낙인·편견’을 해소하려면 관리를 통해 치안을 강화하겠다는 관점에서, 누구나 맞닥뜨릴 수 있는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을 강화하는 쪽으로 정책 변화가 필요하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염형국 변호사는 이번 개정안을 반쪽짜리라고 평가했다. “2016년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엔 정신질환 예방·치료·재활·복지 및 권리보장 등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다고 돼 있으나 이를 구체화한 내용은 거의 없다. 정부 역시 사회적 편견에 편승해 정책 마련에 소극적이다.”

지역사회에서 정신장애인들이 찾을 수 있는 곳은 광역·기초자치단체가 설치한 정신건강복지센터나 공동생활과 주거 공간, 직업 훈련 제공하는 정신재활시설 등이다. 정신건강복지센터·정신재활시설에 대한 사회적 투자와 체계적 역할 정립, 유관기관과 연결망 구축 등이 두루 부실하다. 인력과 예산, 권한은 부족함에도 정신건강복지센터에 주어진 업무는 정신질환 사례관리를 비롯해 정신건강 증진을 위한 인식개선, 자살예방 사업 등에 이르기까지 너무나 광범위하다. 전문가들은 사회적 도움이 절실한 중증 정신장애인 지원과 증상 악화로 인한 응급상황 개입 등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영문 서울시 공공보건의료재단 대표이사는 “중증 정신질환(SMI·Severe Mental Illness)은 특정 병명으로 구분짓기 보단 ‘일상이 어려운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로 보아야 하는데, 조현병·조울증 환자 일부, 치매 환자나 지적장애인 일부, 알코올 중독자 일부 등이 이에 속한다”며 “정신질환이 있는 경우 자살률은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최소 3배 이상 높다. 또, 만성화된 병 탓에 의지할 가족이 사라지면 급속도로 가난해지는 경향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에겐 치료도 복지 지원도 두루 필요하다. 그러나 같은 지역사회에 위치하더라도 의료기관엔 건강보험(의료급여) 재정이 들어가고 정신보건 관련 시설이나 복지 지원엔 국비·지방비가 투입된다. 이렇게 분리된 재정 체계를 하나로 합쳐 장기입원에 들어가는 비용을 지역사회로 돌리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분석도 거듭 나온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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