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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윤한덕 센터장이 바라던 ‘환자 위한’ 응급구조사 역할 정비 이뤄질까

등록 2019-02-14 07:38수정 2019-02-14 21:36

토론자로 참석 예정돼 있던
응급의료법 개정안 공청회 열려
응급처치 맡는 응급구조사 업무
객관적 평가 없이 16년간 유지
고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 센터장의 사진. 국립중앙의료원 제공
고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 센터장의 사진. 국립중앙의료원 제공

“심근경색 치료 시간을 단축하려면 흉통을 호소하는 환자에게 119구급대원이 12유도 심전도 검사(가슴과 팔 등에 전극 10개를 붙이고 심장에서 나오는 전기신호를 감지해 기록)를 실시하고 이를 의사에게 전송해 확인 뒤, 시술(PCI·경피적 관상동맥 중재술)을 해야 할 심근경색이면 심혈관센터로 이송하면 된다. 이 절차는 아주 간단하고 북미와 유럽에서는 흔하다. 그 간단한 절차가 우리나라에선 이루어지지 못한다. 현행 응급구조사 업무 범위에서 12유도 심전도는 허용되지 않는다. 환자 몸에 전극을 3개 붙이고 감시하는 것은 허용되나, 전극을 10개 붙이고 검사하는 것은 무면허 의료행위이다. 그러니 환자는 가까운 병원에 이송돼 심전도를 비롯한 각종 검사를 받아야 하고, 그 다음에 심혈관센터로 이송된다. 의료비도 낭비고, 의료 자원도 낭비고, 무엇보다 환자에겐 ‘황금같은 시간’이 버려지는 것이다.” (2018년 11월13일 고 윤한덕 센터장 페이스북)

고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이 생전에 강조한 ‘환자 이익을 중심으로 한’ 응급구조사 역할 정비가 이뤄질 수 있을까? 13일 국회 헌정기념관 대강당에선 윤소하 의원실·대한응급구조사협회 주최로 ‘응급의료체계 고도화에 따른 응급구조사의 역할 및 업무범위 개정을 위한 공청회’가 열렸다. 지난해 11월 정의당 윤소하 의원은 보건복지부 장관이 응급구조사 교육·평가·질관리를 위한 위원회를 구성하고 5년 주기로 업무 범위 적절성 조사를 해 이를 업무 지침에 반영하는 것을 뼈대로 한 응급의료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날 공청회는 이러한 법 개정안에 대한 보건의료· 환자단체 의견을 들어보는 자리였다. 애초 윤한덕 센터장도 토론자로 참여할 예정이었다. 그는 지난해 11월 페이스북을 통해 응급구조사 업무 범위가 되레 환자들에게 피해를 준다며 “우리나라 의료 여건에 맞도록 타당한 응급의료법 업무 범위와 그 업무를 하기 위한 기준을 마련하자”고 제안한다.

■ 환자 피해보는 이송체계 이대로 괜찮나?

국가 자격시험을 거쳐 양성되는 ‘응급구조사’는 응급사고 현장이나 이송 중, 의료기관 안에서 응급환자 생명 유지 및 부상악화 방지를 위한 응급처치를 맡고 있다. 1995년 1월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응급의료법)’이 시행되면서 응급구조사란 직종도 함께 탄생했다. 2018년 현재 1·2급 응급구조사는 약 3만5천명으로, 119구급대·민간 이송업체·병원 등에서 운영하는 구급차, 의료기관 내부에서 일하고 있다. 응급구조사는 1·2급 합쳐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해진 14가지 응급처치만 할 수 있다. 이외 응급처치를 할 경우 모두 불법이다. 이러한 업무 범위는 지난 2003년 이후 16년 동안 바뀐 적이 없다.

윤한덕 센터장과 20여년간 연을 맺어온 유인술 충남대 응급의학과 교수는 윤소하 의원안에 대해 “현재 응급구조사 업무 범위는 주먹구구식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응급구조사 응급처치를 평가하고 분석해 환자에게 이익이 되면 업무 범위를 넓히고, 그렇지 않으면 배제하는 기준과 절차를 만들어 보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 센터장을 대신해 공청회에 참여한 윤순영 국립중앙의료원 재난·응급의료상황실장도 “병원간 환자 이송이 이뤄질 때 의료진이 모든 경우 구급차에 탑승할 순 없으니 응급구조사 동행이 많다. 중증환자가 이송될 때 전문의약품인 도파민이 투여되는데, 환자 상태가 나빠질 경우 용량 변경을 의사가 사전에 지시할 수 있지만 이러한 조정 자체도 불법”이라며 “응급구조사 업무 범위를 조정할 경우 안전 여부를 과학적으로 판단해야 하며, 더 중요한 것은 교육 과정을 개발하고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논의의 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13일 공개된 고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 센터장 집무실 모습.  테이블에 놓여진 국화꽃 외에는 고인 유품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국립중앙의료원 제공
13일 공개된 고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 센터장 집무실 모습. 테이블에 놓여진 국화꽃 외에는 고인 유품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국립중앙의료원 제공

■“119-병원간 분절 여전히 개선안돼”

김대희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임상조교수(응급의학)는 윤한덕 센터장이 응급구조사 업무 범위에 관심을 가진 까닭에 대해, 응급상황이 발생한 뒤 환자가 응급의료기관까지 이송되는 ‘병원 전 단계’ 개선을 위한 고민 중 하나였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응급구조사들은 병원이나 민간 이송기관 등에서 경력을 쌓아 119구급대로 가는데, 119구급대는 (복지부가 아닌 다른 부처인) 소방청 소속이라 질 관리가 어렵고, 그렇게 되면 또다른 응급체계가 방치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지니 병원 내 훈련을 강화하고 이러한 인력이 다시 119구급대로 가는 선순환을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공청회에서 발제를 맡은 박시은 동강대 응급의학과 교수도 “응급의료를 경험할 수 있는 병원 내 일자리가 줄고 (간호사·의사 부족으로) 비응급 분야 진료 보조일을 맡는 경우가 많다”며 “응급의료 미경험자가 119 구급대원으로 임용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상반기 응급실에 실려온 중증응급환자 48%는 119구급차를 통해 이송됐다. 2017년말 기준 119구급대가 보유한 구급차는 1384대로, 배치 인력은 1급 응급구조사 4072명·2급 응급구조사 3606명·의사 혹은 간호사 1425명이었다. 그러나 중증응급환자 이송 단계에서 응급처치가 적절했는지 등에 대한 분석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119구급대는 소방청 소속이며 응급의료기관은 보건복지부 관리·감독을 받는다. 이렇게 분절된 구조로 인해 두 부처간 협업이 원할하지 않고, 중증응급환자가 ‘제 때 적정한 병원’으로 옮겨지지 않는 문제 개선이 더디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말, 더불어민주당 김상희 의원실이 연 ‘중증응급환자 사망을 줄이기 위한 응급의료체계 리폼(reform) 토론회’에 참여한 윤한덕 센터장은 발제문을 통해 “119-응급실, 응급실-최종치료 사이 분절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았다”며 “보건복지부-소방청, 중앙정부-지자체 간 합리적이고 원활한 거버넌스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응급의료체계는 크게 병원 전 단계와 병원 단계로 나뉜다. 자료: 감사원
응급의료체계는 크게 병원 전 단계와 병원 단계로 나뉜다. 자료: 감사원

■ 응급구조사 업무 개편 공감있지만…

공청회에 참여한 보건의료 직역별 단체들은 응급구조사 업무 범위 조정 취지엔 공감하면서도, 법 개정안에 대해 우려를 표시했다. 대한의사협회는 현행 보건의료 체계에서 응급구조사 업무 범위가 확대되면 여러 직역간 갈등이 촉발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정은희 병원응급간호사회장은 “일부 의료기관에서 응급이 아닌 업무에 응급구조사를 배치하는 상황에서 업무 확장을 속도 있게 논의하는 건 보건의료 면허 체계에 혼돈을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심전도 검사나 채혈 등 일부 업무영역이 겹칠 가능성이 있는 대한임상병리사협회 안영회 임상생리검사학회장은 “응급시 12유도 심전도 검사를 허용할 생각이 있다. 다만, 구급차·의료기관 밖에서 하는 것으로 제한돼야 한다. 응급실에서 각종 검사가 신속히 이뤄질 수 있도록 임상병리사를 24시간 상주시키도록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대한응급의학회는 응급구조사 업무 범위 조정을 위한 구체적인 방식을 더 고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진우 대한응급의학회 이사는 “소수 임원이 모여 위원회를 구성하고, 위원회 결정을 복지부 장관이 바로 업무 범위로 반영하는 것은 폭넓은 토론을 어렵게 할 가능성이 있다. 좀 더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업무 범위 결정할 수 있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을 이미 예견했을까. 윤한덕 센터장은 지난해 11월4일 페이스북에서 여러 단체들을 향해 이러한 당부를 남겼다.

끝으로 의사 단체, 간호사 단체 그리고 의료기사 단체에 청합니다. 여러분이 소중해 하시는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위해, 응급구조사가 파트너로서 필요하다고 생각하신다면, 일을 할 수 있도록, 그리고 전문가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분초를 다투는 응급환자가 처음으로 만나는 의료종사자가 응급구조사라는 걸, 그리고 여러분이 모르는 사각에서 그 환자를 돌보는 사람이 응급구조사라는 걸 공감하신다면, 여러분이 가진 엄청난 범위의 업무 중 응급구조사가 침해하는 업무는 극히 일부일 뿐이니, 조금만 양보해 주시기 바랍니다.

환자를 돌보는 숭고한 직업을 가진 분들로서 다른 직역의 일이라고 모른 척 하지 않고, 가식 없는 논의의 장에서 적극적으로 머리를 맞대실 거라고 믿습니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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