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정원·검찰·경찰 개혁 전략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검찰이 스스로 과거사 진상조사를 해서 바로잡는 일을 한 것이 처음이다. 국정원이나 경찰 등은 과거에 한 적이 있었는데, 검찰은 전혀 하지 않았었다. 검찰 과거사 진상조사가 거의 마무리 단계라고 하는데, 진실이나 정의를 바로 세우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다시는 그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확실하게 제도적인 장치를 강구해 두는 것까지 가야 될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5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국가정보원·검찰·경찰 개혁 전략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검찰이 과거사를 반성한다고 해서 검찰에 힘을 몰아준 법과 제도를 고치지 않고 그대로 두면, “물 가르기”나 “당겨진 고무줄”처럼 도로 허탕으로 돌아갈 수 있다며 “두렵다”고도 했다. 문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뒤인 2011년에 쓴 책 <검찰을 생각한다>에서도 “경찰은 어느 정도 과거사 정리를 했으나 검찰은 전혀 하지 않았다”며 이를 “기득권 지키기”라고 비판한 바 있다.
검찰은 그동안 과거사 반성에서 ‘예외’였다. 참여정부가 역점을 뒀던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도 좌초했다. 문 대통령으로서는 ‘친구’의 죽음으로 이어진 참여정부의 검찰개혁 실패가 통한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지금 검찰개혁을 하지 못할까 두렵다’는 문 대통령 말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서 문 대통령 자신으로 이어지는 17년에 걸친 검찰개혁 구상을 이번에 반드시 마무리짓겠다는 강한 의지가 담겨 있는 셈이다.
문 대통령이 언급한 국가정보원과 경찰의 과거사 진상조사는 참여정부 때 있었다. 문 대통령이 청와대 민정수석에 이어 시민사회수석으로 자리를 옮겼을 때인 2004년 11월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 ‘경찰청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잇달아 만들어졌다. 두 위원회는 문 대통령이 다시 민정수석과 대통령비서실장을 맡았던 시기에 본격적인 활동을 한 뒤 참여정부 마지막 해인 2007년 말 3년에 걸친 활동을 마무리했다.
문재인 정부가 구상한 검찰개혁의 1단계 역시 과거 검찰권 남용 사례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신설이었다. 검찰이 꼼짝 못할 ‘수사의 민낯’을 공개하고, 이를 국민 여론의 지렛대로 삼아 실패와 미완의 역사로 남은 검찰개혁을 이루겠다는 밑그림이었다. 문재인 정부에서 이 역할은 2017년 12월 출범한 법무부 산하 검찰과거사위원회(위원장 김갑배)가 맡았다.
2017년 12월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대회의실에서 열린 법무부 ‘검찰 과거사위원회’ 발족식에서 김갑배(왼쪽) 위원장이 박상기 법무부 장관과 악수하고 있다. 법무부 제공
법무부는 앞서, 2017년 8월 법무·검찰개혁위원회(위원장 한인섭)를 꾸렸다. 이 위원회는 한달여 만에 공수처 신설 권고안과 검찰과거사위 설치 권고안을 일사천리로 발표했다. 특히 검찰과거사위에 대해선 “검찰권 남용 재발 방지를 위한 근본적인 대책 수립”을 최종 목표로 제시했다. 검찰과거사위 위원장은 참여정부 시절 국정원과거사위 위원,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상임위원으로 일했던 김갑배 변호사가 맡았다. 김 위원장은 “검찰이 과오를 스스로 바꾸는 능력이 있느냐를 보여주는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했다.
검찰과거사위원회가 1년3개월여 진상조사 활동을 마무리하고 다음달 31일 문을 닫는다. 운영 성과가 애초 청와대가 생각했던 검찰개혁의 지렛대로 삼겠다는 구상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 3년차로 접어든 지금이 검찰개혁의 마지막 기회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정치권은 물론 법조계와 시민사회에서는 “과거사 진상조사 결과를 통해 검찰개혁이 필요한 여러 부위에 대한 진단이 나온 만큼 국회 입법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요구가 크다.
검찰과거사위는 지난달 이명박 정부 시절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을 수사했던 당시 검찰이 청와대 등 윗선 개입 규명에 소극적이었다는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공수처 필요성을 권고했다. “정치적 중립성을 잃은 검찰을 견제하고 국가권력의 불법에 대해 엄정하게 검찰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공수처가 설치돼야 한다는 것이 명백히 확인됐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대통령 등 정치권력에 대한 소극적 수사와 진상 은폐 등 검찰의 문제점이 총체적으로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당시 검찰은 이 사건을 3차례나 수사하고도 청와대 관련성 등 ‘윗선’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이 청와대 회의에서 “원래 공수처는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최고위층 권력자들에 대한 특별사정기관”이라며 공수처 신설 법안의 연내 국회 통과를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검찰의 칼끝은 청와대로 향하지 못했지만, 반대로 청와대와 정부의 수사 외압은 검찰 수뇌부를 통해 거침없이 일선 수사팀에 전달된 사실도 검찰과거사위를 통해 여러 차례 드러났다. 지난달 진상조사 결과가 나온 이명박 정부 시절 <문화방송> ‘피디수첩’ 사건이 대표적이다. 검찰과거사위는 당시 검찰 수뇌부가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위험성을 보도한 피디수첩 제작진 수사팀에 ‘기소와 무관하게 체포하라’ ‘무죄가 나와도 좋으니 기소하라’는 지시를 내려보냈다고 밝혔다. 또 검찰 수사권이 범죄 혐의를 밝히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정부 정책 비판에 대한 이른바 ‘손봐주기’ 차원의 수사였다는 판단도 내놓았다. 이 사건은 1심·항소심·대법원 판결까지 모두 무죄가 났지만 검찰권 남용에 대한 책임은 아무도 지지 않았다.
이 외에도 검찰과거사위 조사는 검찰 수사 관행과 조직 문화의 후진성을 재확인시켰다. 수사 중 가혹 행위(강기훈 유서대필 사건)를 했고, 고문 사실을 알면서도 눈감았으며(김근태 고문 은폐 사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경찰의 위법한 수사(삼례 나라슈퍼 사건)를 통제하지 못했고, 부실한 수사지휘(약촌오거리 사건)로 진범을 알아보지 못했다. 형사처벌이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정권의 뜻에 따라 체포·수사·기소(<한국방송> 정연주 전 사장 배임 사건)를 했다. 이 사건 역시 1심·항소심·대법원에서 무죄가 났다. 검찰과거사위는 이런 검찰권 남용을 통제하기 위해 ‘법 왜곡죄’ 도입을 적극 검토하라고 권고했다. 검사 등이 특정인에게 유리하게 법을 왜곡·해석할 경우 처벌하는 것이다.
법무부는 다음달 대검찰청을 상대로 검찰과거사위 제도개선 권고 이행 상황을 점검할 예정이다. 이와 관련해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15일 청와대 회의 뒤 브리핑에서 “문 대통령은 법률 개정 전이라도 행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라는 지시도 했다. 수사권 조정 법률 개정 전이라도 검찰 스스로 수사권을 제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법률 개정과 비교하면 한계가 있다”며 “이제 남은 것은 입법”이라고 강조했다.
검찰개혁 입법을 맡은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는 여야 대치 속에 헛돌고 있다. 문 대통령과 함께 <검찰을 생각한다>를 쓴 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7일 “검찰과거사위 등의 제도개선 권고 내용을 성실히 이행한 뒤 검찰개혁을 포함한 권력기관 개혁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참여연대 공동대표로 2013년 대검찰청 검찰개혁심의위원을 맡았던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앞으로 검찰권 남용이 재발하지 않도록 개혁 방안을 마련하는 게 더욱 중요하다. 공수처 설치, 검찰에 대한 외부 견제 등 여러 방안이 국회에서 논의되고 입법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은 18~19일 공수처 설치와 국가정보원 개혁 등을 요구하는 국회 입법 촉구 시민행진을 서울 여의도 국회 주변에서 진행한다.
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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