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회원들이 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의 디지털 성범죄 솜방망이 처벌을 규탄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친밀한 사이의 가해자가 불법 촬영과 유포 등 온라인 성폭력 범죄를 저질렀을 때 별도로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성폭력을 하기 전 청소년을 유인하고 길들이는 ‘온라인 그루밍 범죄’에 대해서도 이를 제재하는 제도적 장치가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은 지난 1월 말 펴낸 <온라인 성폭력 범죄의 변화에 따른 처벌 및 규제방안>(저자 장다혜·김수아) 보고서에서 “현재 온라인 성폭력에 대한 처벌규정과 실무는 피해자가 경험하는 침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우선 불법 촬영이나 촬영물 유포, 언어적 성폭력 등 온라인상에서 일어나는 성범죄의 피해는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설문조사에 응한 피해자 342명 중 325명(95%)가 여성이었다. 피해자 212명 중 처벌이 완료됐다는 응답을 한 32명 중 15명이 “형량이 낮다”며 처벌 결과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답변을 했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로 징역형은 3명에 불과했고, 벌금형 22명, 불기소처분이 7명이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는 연인을 포함해 친밀한 관계인 경우가 전체 345명 중 154명(45%)으로 가장 많았다. 최근 대구지검 서부지청이 불기소처분해 논란이 됐던 불법 촬영 사건(
▶3월5일자 가해자의 불법 촬영물이 친밀 증거? 검찰의 성인지 감수성 논란)이나 가수 구하라씨를 상대로 동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한 이들은 모두 한때 친밀한 관계였다. 보고서는 “친밀한 사이에서 발생하는 범죄를 규제할 별도의 법제 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현재 온라인 성범죄에 대한 양형 기준이 없다. 법무법인 GL 김현아 변호사는 “친밀한 사이일수록 수위가 높은 범죄를 할 확률이 높은데 두 사람의 관계를 양형 사유에서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보고서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온라인 그루밍 범죄에 대한 단속과 처벌을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다고 짚었다.
사법기관이 피해자의 마음을 고려하지 못한 아쉬움도 있다. 경찰·검찰·법원을 거치며 자신이 피해자임이 알려질까 두려워 신고를 포기했다고 응답한 90명 중 33명(36.7%)은 신원 공개의 두려움이 있다고 답했다. 보고서는 “철저한 비밀보호 장치를 설계해 온라인 성폭력이 미신고되는 비율을 줄여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3월 한국여성변호사회는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 ‘디지털 성범죄 처벌 및 피해자 지원 방안 연구’ 결과를 제출하면서 성폭력 피해 영상물이나 사진 등 압수물을 폐기할 수 있도록 형사소송법을 개정하라고 건의했다. 또 법원이 성폭력 피해 영상이나 사진 등을 삭제 명령을 하도록 법을 바꿔 가해자의 재유포 행위를 막아야 한다고 제안한 바 있다.
보고서는 지난해 12월18일 개정·시행된 성폭력처벌법 14조가 불법 촬영의 대상을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라고 표현한 점에 대해서 “음란 개념에 기초해 범죄유형을 유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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