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천성 심장병을 앓고 있는 이보배(2)양의 어머니가 최근 고어사의 인공혈관 공급 중단과 관련해 공급 재개를 호소하는 글을 아이와 함께 찍어 보내왔다. 고어사의 한국시장 철수로 심장병 아이들의 심장 수술 중단 위기가 왔음에도, 정부는 ‘소아용 심장 수술용 인공혈관’의 재고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머니 천새롬씨 제공
정부가 최근 수술 중단 위기까지 치달았던 ‘소아 심장 수술용 인공혈관’의 재고를 고어사 철수 뒤 1년6개월 동안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의료단체들은 정부의 안일한 대응이 일을 키웠다고 지적했다.
24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은 지난해 4월 고어사 제품을 사용하는 병원과 요양기관 200여곳에 ‘고어사 보험 등재 품목 보유량 확인 협조요청’ 공문을 보냈다. 고어사가 한국에서 철수하고 6개월이 지난 때다. 고어사가 제공해온 50개 품목 가운데 계속 공급 의사를 밝힌 2개를 제외한 48개 품목에 대한 보유량 조사로, 이번 수술 중단 위기를 불러온 ‘소아 심장 수술용 인공혈관’도 포함됐다.
그나마 두달 동안의 조사로도 ‘고어사 공급 중단 품목 보유량’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심평원 관계자는 “고어사 철수 뒤 병원이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 재고 조사를 했는데, 재고 조사 결과가 정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심평원 관계자는 “(재고 조사) 당시 예상보다 (빠르게) 당장 수술을 할 수 없는 상황이 터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살펴보니 병원이 계속 공급될 줄 알고 (소아 심장용 인공혈관을) 어른 수술에도 쓰는 상황이었다”며 “지금 와서 보니 (병원 등이) 자료를 대충 해서 보낸 게 많았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보건복지부도 당시 조사의 문제점을 인지하고, 이달 초부터 다시 고어사 제품 재고 조사를 하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심평원의 자료는 정확하지 않았다. 수술 중단 위기로 급했을 때도 그 자료는 믿을 수가 없어서 참고조차 하지 않았다”며 “최근 복지부가 재조사를 하고 있지만, 대형마트처럼 의료기기가 들어오고 나가는 것이 체크되는 상황이 아니라 병원들도 파악하기 어려워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이 관계자는 “의료기기 재고를 정부가 일괄적으로 파악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공급만 원활하면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병원이 의료기기를 보고해야 할 의무가 없어 정부가 실태 파악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보건·의료단체들은 1년에 50여건밖에 되지 않는 소아 심장 수술용 재료의 재고를 파악하지 못한 것은 정부가 이 일에 무관심했다는 방증이라고 비판했다.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사무처장은 “이 수술은 소아 흉부외과 쪽에서만 하고, 해본 사람이 아니면 못 하는 수술이다. 정부가 의지만 있었으면 재고 조사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었다”며 “정부가 심장병 아이들의 수술에 인공혈관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파악을 못해 벌어진 일”이라고 꼬집었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고어사와 협상을 해야 할 정부가 재고 파악도 제대로 못 했다는 건 상당히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정환봉 김민제 기자
bon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