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전국우편지부 회원들이 23일 오전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대법원 판결을 환영하며 집배원 모자를 하늘로 던지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우정사업본부와 도급계약을 맺고 아파트 단지 등 한정된 지역의 우편물을 배달하는 재택위탁 집배원(전 재택위탁배달원)이 우정사업본부 노동자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유아무개씨 등 5명의 재택위탁 집배원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낸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3일 밝혔다.
위탁배달원 제도는 국제통화기금 위기 이후 정부가 공무원 숫자를 줄이기 위해 공무원인 정규 집배원이 하던 업무의 일부를 민간에 위탁하면서 도입됐다. 제도는 상시위탁·특수지위탁·재택위탁으로 구분해 시행했다. 우정사업본부는 이중 지정된 시간에 우체국 등으로 출근하는 상시위탁집배원과 특수지위탁집배원과는 근로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우체국으로 출근하지 않고 비교적 단시간에 아파트와 같이 한정된 구역의 우편배달업무를 담당하는 재택위탁배달원은 초기에는 근무시간에 따라, 2014년부터는 배달량에 따라 임금이 아닌 수수료를 지급하는 도급계약을 맺었다. 2001년~2012년부터 위탁집배원으로 일했던 노동자들은 “노동자로 인정하라”며 지난 2014년 소송을 냈다.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전국우편지부 회원들이 23일 오전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대법원 판결을 환영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대법원은 이들이 종속적인 관계에서 우정사업본부의 지휘·감독 아래에 있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우편배달 업무 관련 정보를 알리는 정도를 넘어 구체적인 업무처리 방식 등을 지시한 점 △획일적 업무 수행을 위해 정해진 복장을 하고 정해진 절차에 따라 정해진 장소에서 배달하도록 한 점 △정기적·비정기적 교육과 현지점검, 근무상황부와 인계인수부 등을 통해 업무처리 과정이나 결과, 근태를 관리·감독한 점 △우정사업본부 다른 근로자들인 상시위탁집배원 등과 본질적으로 같은 업무를 동일한 방식으로 처리해 온 점 등을 판단 근거로 들었다.
대법원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는지 아닌지는 계약의 형식보다 근로자가 사업 또는 사업장에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였는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판결의 의의를 설명했다.
신선아 전국공공운수노조 법률원 변호사는 “특정 사무실로 출근하지 않고 외근을 하는 형태라는 이유로 근로자에서 배제된 특수고용노동자들이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성 인정받는데 매우 의미있는 판결”이라고 강조했다.
신인수 민주노총 법률원장은 “대법원이 학습지 교사, 방송연기자에 이어 재택위탁집배원까지 근로자의 범위를 시대 추세에 맞게 넓히는 판결을 했다”며 “특수고용노동자 250만명이 모두 소송을 할 수 없는 만큼 법을 개정해 근로자의 범위를 넓히는 것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전국우편지부는 판결 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너무나 상식적이고 당연한 판결이다. 오늘 대법원 판결은 우정사업본부의 노동자 착취 고용형태에 쐐기를 박는 것이며 재택위탁집배원을 즉각 직접고용하라는 명령”이라고 밝혔다.
우정사업본부는 대법원 판결에 따라 ‘노·사·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재택위탁배달원 근로자 전환 테스크포스팀(TFT)을 구성하기로 했다. 강성주 우정사업본부장은 “대법원 판결에 따라 조속한 시일 내에 근로자 전환을 추진할 계획이며, 관계부처와 지속적으로 협의해 집배원들의 처우개선과 보편적 우정서비스 향상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4월 기준 전국의 재택위탁집배원은 242명이다.
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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