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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청년 담론 규정하는 ‘삼포세대’ 오히려 청년 가능성 막아요”

등록 2019-04-23 19:27수정 2019-04-23 19:45

[짬] 청년문제 연구자 김선기 연구원

김선기 연구원은 두 달 뒤 자신의 첫 책이 나온다. 책 제목은 <청년팔이 사회>란다. “청년과 세대 문제를 주제로 그동안 쓴 글을 묶었어요.”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김선기 연구원은 두 달 뒤 자신의 첫 책이 나온다. 책 제목은 <청년팔이 사회>란다. “청년과 세대 문제를 주제로 그동안 쓴 글을 묶었어요.”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88만원, 삼포, 헬조선, 흙수저… 2007년 이후 청년 세대를 부르는 수식어들이다. 대학을 나와도 정규직 되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청년들의 경제적 현실을 반영한 조어일 것이다. 지난 5일 동료 연구자들과 함께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을 만든 김선기 연구원은 이런 세대 규정이 불편하다.

“지자체가 여는 청년정책 토론회를 가면 정치인이나 공무원들이 청년들을 두고 ‘너희는 우리 때보다 더 희망이 없는 것 같다, 우리 아이는 취직을 잘했는데 너희들은 왜 이런지 모르겠다’고 해요. 그런 말을 하면 토론이 나아가지 않아요.” 지난 22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김 연구원 말이다.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인 그는 청년 연구자로도 불린다. 올해 만 서른인 그가 청년 문제를 붙들고 탐구한 지도 10년 가까이 됐다. 그는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2학년이던 2009년 인터넷 독립언론 <고함20>을 만들었다. 1년 뒤 이 매체에 연재물 ‘청년연구소’를 신설해 청년 문제 분석과 해법 제시에 초점을 맞췄다. “서른이 되면서 <고함20> 편집에는 관여하지 않고 있어요. 필진으로만 있죠.”

현재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청년 티에프 연구원이기도 하다. 서울시가 청년 목소리를 시정에 반영하기 위해 500억원의 예산편성권까지 부여해 지난달 출범시킨 서울청년자치정부 공동추진위원장도 지냈다. 서울시와 경기 시흥시 의뢰로 청년 주제 연구 보고서를 만들기도 했다.

삼포(연애, 결혼, 출산 포기) 세대란 호명이 왜 불편한지 먼저 물었다. “삼포는 달관이나 밀레니얼처럼 청년 세대를 보여주는 여러 담론 중 하나인데 지금은 청년 담론을 장악하고 있어요. 그게 문제입니다. 청년마다 처한 상황이 다양한데 과도하게 일반화를 하고 있어요. ‘결혼을 희망하지 않는다’고 설문조사에 답하면 바로 ‘돈이 없어 결혼을 포기했다’고 단정해요. 희망하지 않은 것과 포기는 다른 문제이죠. 희망하지 않은 데에는 다양한 차원의 이유가 있어요. 하나로 몰면 문제가 생깁니다.” 그 문제란? “청년은 경제적, 정신적으로 부족한 집단이란 인상을 주죠. 정부는 그들에게 퍼주기만 한다는 인상을 줘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으로 대접을 못 받게 합니다.” 그 결과는 이렇단다. “한국 사회 전체적으로 젊은 사람에 대한 믿음이 많지 않아요. 능력을 신뢰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청년’ 연령대를 ‘삼포’로 일반화하는 담론이 청년 가능성을 제약하는 족쇄가 된다는 논리다.

그는 정책 결정 등에서 청년의 영향력을 키울 수 있는 통로를 만드는 게 청년정책의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청년정책 중 ‘서울청년정책 네트워크’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이다. “네트워크를 통해 청년들이 정책 관련 목소리를 직접 낼 수 있고, 참여하지 않는 청년들도 대의하려고 노력하죠. 문제가 있는 정책은 고칠 수 있는 피드백 구조도 있고요. 특히 이번에 구성한 청년자치정부는 청년 의제에 국한하지 않고 미세먼지와 같이 청년의 행복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시정 전반을 다루도록 해 청년 활동가들의 지지를 얻고 있어요.” 하지만 서울시 청년 예산 가운데 가장 큰 몫을 쓰는 ‘뉴딜 일자리 사업’은 낮은 점수를 줬다. “사업장별 관리가 잘 안 되어 사실상 임시직 양산에 그치고 있어요.”

대학2년 때 인터넷 매체 ‘고함20’ 창간
10년 지나 서른살…대학원 박사과정중
동료들과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꾸려
“현장·일상에 근거한 담론 생산 목표”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 청년 티에프
서울청년자치정부 공동추진위원장도

그는 “기업보다 정당이나 시민사회가 특히 젊은 사람을 믿지 못하는 경향이 강한 것 같다”면서 집권당의 청년 기준을 예로 들었다. “민주당이 2012년 청년비례로 김광진 의원을 내세울 때 청년 기준이 39살이었어요. 그런데 4년 뒤 45살로 높였죠. 40대도 기회를 얻기 힘들다는 이유로요.” 덧붙였다. “청년 인물이 없다는 주장도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의 한국 사회는 청년이 리더십을 쌓을 수 있는 구조가 아닙니다. ‘인물 키우기’도 목표로 하는 서울시의 청년 거버넌스 정책이 정당 등으로도 확산하면 좋겠어요.”

현 정부의 청년정책을 두고는 지난 정부와 차별성이 없다며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 “지자체 등이 청년 정책을 펼 때 법적 근거가 되는 청년기본법은 지난해 여야합의안이 나왔지만 통과되지 못하고 있어요. 현 정부 들어 청년 구직활동지원금 예산이 늘었지만 그 정도는 자유한국당 정권이라도 했을 겁니다. (청년정책이) 지난 정부와 달라진 게 없어요. 초점이 없어 중구난방이죠.”

2012년 대선 이후로 “청년을 알고 싶어하는 기획은 늘었지만 연구 효용성에 대한 회의 때문에 연구자들의 피로감만 쌓이고 있다”는 지적도 했다. “7년 전 대선 때 ‘청년 이준석’이 호명되면서 청년 담론이 쏟아졌어요. 지금도 청년정책 연구 수요는 늘고 있어요. 지난해 20대 남성의 민주당 지지율이 떨어지면서 청년 담론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진 것 같아요. 공무원들도 청년정책을 검토할 때 (청년 문제를) 공부한 사람이 필요하잖아요. 하지만 연구가 실제 문제 해결로 이어지지 않으니 특히 국책연구소 연구원들이 피로감을 많이 느껴요. 여론조사 회사만 돈을 벌고 있어요.”

그는 오는 8월께 입대할 예정이다. 제대 뒤에도 문화연구자의 길을 걸을 생각이다. 문화연구를 하는 동료 대학원생 8명과 함께 만든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은 현장과 일상에 기반을 둔 유의미한 담론 생산을 목표로 한단다.

“기업보다 정당이나 시민사회
젊은 사람 믿지 못하는 경향
‘인정’으로 청년 문제 재정의하고파”

연구 계획은? “요즘 청년들을 보면 한국인이라는 핏줄에 대한 느낌과는 별개로 한국 사회 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생각을 덜 하는 것 같아요. 투표율이 낮은 것도 정치 참여 자체가 자신과는 상관없다는 생각에서겠죠. 사회적 인정을 받고 싶은 욕구는 있지만 충족을 받지 못해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인정 중심으로 청년 문제를 재정의하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덧붙였다. “삼포 담론처럼 경제의 문제라면 어떤 일자리든 소득만 보장하면 됩니다. 하지만 인정 문제라면 소득만으로는 안 됩니다. 예컨대 기자라고 해도 사람들이 알고 있는 언론사에 다녀야 인정을 받잖아요. 알려지지 않은 언론사라면 소득이 있더라도 불만족스럽겠죠.”

지난해부터 미투가 확산하고 페미니즘 영향력이 커지면서 청년 세대 안의 젠더 갈등 문제가 논란이다. 이를 두고 한쪽에선 ‘젠더 전쟁’이란 표현까지 나온다. “젠더 전쟁이란 표현을 쓰면 안 된다는 생각입니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사이 연령대가 페미니즘이란 가치를 두고 일상적인 부딪침이 가장 심한 것 같아요. 그러나 페미니즘을 두고도 남녀 사이가 말끔하게 갈리지 않아요. 법적 성별이 남자이면서도 페미니즘을 열심히 실천하는 분들이 많아요. 남녀 간 전쟁이 아니라 성 평등이나 페미니즘 같은 가치에 대한 생각에 따라 갈등을 겪는 거죠.”

김선기 연구원.               박종식 기자
김선기 연구원. 박종식 기자

세대 사이나 세대 안에서 연령이나 성별에 따른 차이를 과도하게 강조할수록 해법 도출은 더 힘들어지고 그 결과 보수 정치세력에 유리한 결과로 이어진다고도 했다. “지금의 갈등은 평균적으로 젊은 세대에 익숙한 가치관과 행동양식, 문화와 평균적으로 나이 든 세대에 익숙한 가치관과 행동양식과 문화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어요. 다른 문화와 문화, 다른 가치와 가치 사이의 갈등인데 그게 세대 간 갈등으로 보이죠. 이렇게 되면 누가 이익을 볼까요. 보수 정치세력이죠.”

청년 세대를 하나의 조어로 일반화하는 데는 반대하지만 ‘성별화’가 청년 세대의 특징 중 하나라는 데는 동의한단다. “청년들이 일상적으로 기사를 얻고 교류하는 온라인 정치 공동체 공간이 성별화되어 있어요. 남성은 게임 스포츠, 여성은 화장품 의류 사이트에 주로 머뭅니다. 남자 초과, 여자 초과 사이트이죠. 이렇게 정치적 생각을 형성하는 경로가 달라졌어요. 이런 구조를 통해 성별화가 더 굳어지죠.”

그는 남·여가 따로 노는 성별화 현상은 문제라고 보지만 그게 20대만의 문제는 아니란 생각이다. “생각해보면 인류 역사상 성별화가 없었던 적이 없었죠. 지금도 언론을 보면 남·여 구분을 해 표시를 하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성별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거죠. 성별에 따라 구별하고 대우하는 그런 사회를 살고 있어요. 가족 내 일 분담도 그렇고요. 20대들이 성별화를 한다면 그건 부모들이 원하는 것을 실천한다고 볼 수도 있어요. (부모들은 자녀들에 대해) 남자들은 남자끼리만 다니고 여자들은 여자끼리만 다니길 원하잖아요. 문제가 생길까 봐요. (성별화는) 유치원을 다닐 때부터 강력히 떠미는 힘이 작용한 거죠.”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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