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붓딸을 살해하고 시신을 저수지에 유기한 혐의로 긴급체포된 김아무개(31)씨가 지난 1일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 출석을 위해 광주지법에 도착하고 있다. 연합뉴스
30대 계부가 중학생 의붓딸을 목 졸라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광주 의붓딸 살해 사건’을 계기로 아동학대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아동학대로 인한 사망 아동 숫자가 정부의 공식 발표보다 최대 4.1배까지 더 많을 수 있다는 국책 연구기관 연구 결과가 나왔다.
7일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지난달 발간한 학술지 <형사정책연구> 2019년 봄호에 실린 논문 ‘법의부검자료를 기반으로 한 아동학대 사망의 현황과 유형’을 보면, 2016년 우리나라 만 0~18살 아동변사 사례 341명(병사·사고사 제외)의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부검결과를 전수 조사한 결과 아동학대로 인한 사망이 최소 84명에서 최대 148명까지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형별로 보면, 학대로 인한 사망이 확실한 아동은 84명, 사망 원인을 학대로 보아도 무방할 정도의 증거가 발견된 아동은 13명, 자료 부족으로 판단이 어려우나 여러 위험요인에 따른 사망이 의심되는 아동은 51명이었다. 반면, 같은 기간 국내 아동학대 사망자에 대한 공식 통계인 보건복지부 산하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중앙아보전)의 ‘아동학대현황보고서’에 실린 사망자는 36명에 그쳤다. 아동학대로 인한 사망이 정부 공식 통계에 견줘 최소 2.3배에서 최대 4.1배 더 많을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앞서 <한겨레>는 2015년
탐사기획 ‘부끄러운 기록, 아동학대’에서 2008년부터 2014년까지 7년 동안 정부·국회·중앙아보전·법원·법무부 등으로부터 입수한 판결문, 공소장, 사건기록, 언론 보도 등을 분석한 결과, 실제 아동학대 사망자 수는 263명으로 정부가 공식 발표한 아동학대 사망자 수(84명)의 3.1배에 이른다는 사실을 지적한 바 있다. 하지만 이 격차가 4년이 지난 현재까지 고쳐지지 않고, 국책 연구기관에서 논문으로 문제점을 지적하기에 이른 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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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은 이런 통계 공백에 대해 “정부에 공식 보고된 아동학대 사망자 수는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신고된 사건이나 인지된 건에 한정돼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신생아나 방임에 의한 사망 등이 누락된 만큼 정확한 사망자 수 집계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또 “우리나라에는 병원, 수사기관, 아동보호전문기관 등에서 생산된 아동의 과거 학대의 기록, 가족 관련 정보, 수사기록, 병원 진료와 교육기관 관련 기록 등을 취합하여 공유하는 시스템이 없고, 기관 전문가들과 실무자들 간에 공유하고 있는 뚜렷한 자료 입력 기준도 없다”고 덧붙였다.
실제 정부 공식 통계인 ‘아동학대현황보고서’를 내는 중앙아보전은 보건복지부의 위탁을 받은 민간 기관이어서 실태 파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간 기관이다 보니 아동학대와 관련한 병원 진료 기록이나 교육기관 등의 정보를 공유할 수 없고, 경찰이나 아동보호기관에 아동학대로 신고된 이력이 없다면 학대받은 아동이 사망해도 이를 통계에 산입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 중앙아보전 장화정 관장은 “아동학대 사망자 통계의 정확성을 높이려면, 중앙아보전을 공공기관으로 전환해서 정보 접근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모가 자녀를 살해한 뒤 자살하는 사건에 대해 ‘동반자살’이라고 칭하면서 아동학대로 보지 않는 사회적 시선도 문제로 제기된다. 경찰이나 검찰 등 수사기관도 이런 사건의 경우 부모가 사망하면 ‘공소권 없음’ 처분을, 부모가 살아있으면 살인 혐의를 적용한다. 이 때문에 정작 피해 아동이 아동학대에 따른 사망자로 집계되지 않는 통계 공백이 생긴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김희송 국과수 법심리과장은 “부모가 자녀를 살해한 뒤 자살하는 ‘동반자살’은 학계에서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아동학대로 간주하지만, 사회적 인식은 이러한 사건을 ‘일가족 집단자살’로 치부하며 아동학대에 따른 사망으로 보지 않는 경향이 크다”며 “고의적인 살인, 치명적인 신체적 폭행 외에도 의료행위 거부나 영양실조 등 극단적인 방임에 따른 사망도 아동학대에 따른 사망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이에 대해 “아동학대 의심 정황이 있으면 경찰이 바로 중앙아보전에 통보하도록 하는 법률상 의무가 있다. 수사 초기 단계부터 함께 대처하기 때문에 누락되는 통계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며 “기관 사이에 통계를 맞출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는 얘기가 있지만, 각 기관이 추진하는 정책에 따라 통계를 별도로 내는 이유가 있어서 쉽지 않은 문제”라고 말했다.
한편, 논문에서 아동학대 사망자 최대 추정치인 148명을 대상으로 사망 아동과 가해자(182명)의 관계를 살펴보면, 가해자가 친모인 경우가 104명으로 가장 많았고, 다음은 친부 53명, 계부모(동거인 포함) 11명, 친인척 6명, 기타 지인 등은 4명 순으로 조사됐다. 직업을 확인할 수 있었던 학대 가해자 154명의 사회경제적 특성은 무직이 80명으로 가장 많았고, 비숙련직 34명, 준숙련직이 17명, 숙련직 20명, 전문직 3명 등으로 파악됐다. 논문은 “가해자의 사회경제적 상황이 아동학대에 주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기존 연구 결과를 뒷받침해주는 통계”라고 지적했다.
선담은 정환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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