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캐피탈 업체 대출 팀장입니다. 1000만원 전환대출이 가능한데 신용점수가 부족하니 대출을 발생해 갚는 방식으로 신용점수를 올리면 됩니다.”
지난 2월 자영업을 하는 김만수(가명·56)씨는 마침 돈이 필요하던 찰나에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캐피털 팀장의 말대로 스마트폰에 대출 전용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한 뒤 500만원의 카드론을 받았다. 김씨는 신용점수를 올리기 위해 바로 이 돈을 갚으려고 카드사 대표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매번 쉽지 않았던 상담원 연결이 그날따라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고객님 카드론 상환을 위해 ○○○씨 명의의 □□은행 계좌 ◇◇◇-◇◇◇로 돈을 입금해 주세요.”
김씨는 상담원이 말한 계좌로 바로 돈을 보냈다. 카드론으로 신용점수가 올라갔다고 생각한 김씨는 다음 과정으로 캐피털 업체에서 대출금 1000만원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연락이 없었다. 이상하게 생각하던 중 신용카드사 청구서가 날아왔다. 청구서에는 카드론을 한푼도 갚은 흔적이 없었다. 김씨는 그 이유를 알기 위해 이곳저곳 문의를 하다 자신이 보이스피싱에 당한 사실을 알아차렸다. 김씨가 대출을 위해 설치한 애플리케이션이 악성 애플리케이션이었던 것이다. 이 애플리케이션이 설치되면 휴대전화로 카드사에 전화를 걸건 경찰이나 금융감독원에 걸건 모두 사기범에게 연결된다.
지난 3월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강민수(가명·48)씨는 자신의 신용카드가 국외에서 결제됐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깜짝 놀라 메시지가 온 곳으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상담원은 강씨에게 “명의가 도용된 것 같으니 대신 경찰에 신고해주겠다. 조금 있다가 경찰에서 전화할 것”이라고 친절히 설명해줬다. 실제 잠시 뒤 금융감독원 직원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는 “경찰에서 연락받았는데 당신 명의로 발급된 계좌가 범죄자금세탁에 이용됐다고 한다. 모든 계좌를 직접 확인해야 한다. 휴대전화에 지금 보내는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해달라”고 말했다. ‘범죄’나 ‘자금세탁’ 같은 말에 당황한 강씨는 금감원 직원이 깔라는 애플리케이션을 휴대전화에 설치했다. 금감원 직원은 신용카드사의 현금서비스, 카드론 대출을 실행한 뒤 “정상적으로 이체되는지 시험해보겠다”며 강씨에게 비밀번호를 입력하게 했다. 그렇게 금감원 직원은 4900만원을 이체해갔다. 그리고 그 돈은 돌아오지 않았다. 역시 보이스 피싱 사기였다.
최근 김씨와 강씨처럼 전화금융사기 피해를 보는 사람이 크게 늘어 정부 부처가 합동으로 예방 활동에 나섰다. 경찰청과 방송통신위원회 등 유관 부처들은 이동통신 3사와 협력해 16일부터 전 국민을 상대로 전화금융사기 피해예방 문자 메시지를 보내기로 했다. 24일까지 전체 이동통신 가입자에게 전달되는 문자에는 ‘[보이스피싱 경보] 매일 130명, 10억원 피해 발생! 의심하고! 전화 끊고! 확인하고!’라는 내용이 담긴다. 알뜰통신사업자 37개사는 5월 요금고지서에 피해예방 정보를 담아 가입자들에게 전달할 계획이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KOBACO)는 보이스피싱 피해 방지를 위한 공익광고를 제작해 16일부터 한달 동안 방송할 계획이다. 텔레비전, 라디오, 유튜브 등을 통해 보이스피싱 예방요령을 담은 광고가 이날부터 방송된다. 또 경찰청,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은 금융권과 협조해 은행 등 금융기관 창구와 텔레비전, 누리집, 옥외전광판, 사회관계망서비스 등에 이 영상을 게재하도록 할 계획이다. 정부 관계자는 “전화금융사기 피해는 성별·연령·지역을 구별하지 않고 전 국민을 대상으로 발생하고 있어 누구라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며 “최근 각종 악성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도록 유도해 피해자가 국가기관 또는 금융회사에 거는 전화마저 가로채는 수법이 많이 사용되기 때문에 출처가 불분명한 앱은 절대 설치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또 “112(경찰), 02-1332(금감원) 등의 번호로 발신되는 전화라 하더라도 이는 발신번호를 조작한 사기 전화일 수 있다”며 “검찰·경찰·금융감독원·금융사 등은 어떤 경우에도 전화로 계좌번호를 알려주며 돈을 이체하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없다는 점을 명심해달라”고 덧붙였다.
돈을 송금한 직후 보이스피싱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경우에는 바로 112나 해당 금융회사에 전화를 걸어 지급정지 신청을 하면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