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용산참사 당시 망루에 올랐다가 결국 수감 생활을 한 생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용산참사 10년 만에 트라우마를 호소하던 생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진상규명위)는 24일 용산4구역 철거민이었던 김아무개(49)씨가 전날 오전 9시30분 야산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고 밝혔다. 김씨는 22일 오후 6시께 누나와 통화하며 “내가 잘못되어도 자책하지 말라”고 말한 뒤 다음 날 아침까지 어머니와 단둘이 살던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가족의 신고로 경찰이 위치추적에 나섰지만 끝내 숨진 채 발견됐다. 유서는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는 1996년부터 서울 용산구 남일당 건물에서 중국음식점 ‘공화춘’을 13년 동안 운영했다. 매출의 80%를 배달손님이 아닌 방문손님이 차지할 정도로 장사가 잘됐다. 김씨가 남일당 옥상 망루에 올라간 것은 멀쩡한 생계 터전을 허무는 일에 대한 항의였다. 게다가 김씨는 용산으로 오기 전 종로에서 중국집을 3년간 운영하다 느닷없이 건물주에게 쫓겨난 경험이 있었다. 2009년 1월20일 새벽 철거민들과 진압 경찰의 충돌로 큰불이 났고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숨졌다. 김씨는 망루에 진입한 경찰에 붙잡혔고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법원은 그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김씨는 3년9개월 만인 2012년 10월 가석방됐다.
출소 이후의 삶은 추락에 가까웠다. 김씨는 다시 장사하겠다는 바람을 이루지 못했다. 주방장 월급을 주고도 월 500만원은 벌었다던 중국집 사장은 누나가 운영하는 치킨집에서 서빙과 배달을 했고, 지난해 말부터는 마트 배달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진상규명위의 설명을 종합하면, 감옥에 가기 전 가족들에게 듬직한 모습을 보이던 김씨는 출소 이후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고 잠도 잘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김씨는 가족들에게 몇 차례 우울 증세를 호소했고 높은 건물로 배달을 갈 때면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등 트라우마에도 시달렸다. 김씨는 최근 이러한 증세가 심해져 2~3달 전부터 병원에 다니며 우울증 약을 복용했다. 이원호 진상규명위 사무국장은 “생존자 대부분이 참사가 일어난 겨울이 되면 잠을 잘 못 자는 등 트라우마가 있다. 일부는 집 밖에 나오지 못하고 머리에 벌레가 기어 다닌다고 말할 정도로 증상이 심한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진상규명위는 이날 추모성명을 내고 “10년이 지나도록 과잉 진압도, 잘못된 개발도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고 오직 철거민들에게만 ‘참사’라 불리는 죽음의 책임을 온전히 뒤집어쓴 채 살아가도록 떠민 경찰과 검찰, 건설자본(삼성)과 국가가 그를 죽였다”고 규탄했다. 진상규명위는 “경찰청장과 검찰총장은 피해자들에게 제대로 사과하고 재발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 또 정부는 권한 있는 조사기구를 통해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의 국가폭력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를 시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씨의 빈소는 도봉구 정병원 장례식장 별실2호에 마련됐다. 발인은 25일 새벽 5시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 자살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 전화하면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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