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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뉴스AS] 발레오 노조파괴 9년…회사·정부·법원 모두가 ‘공범’이었다

등록 2019-07-28 18:08수정 2019-07-28 19:00

강기봉 대표 노조파괴 혐의로 실형 8개월 확정
정연재 전 지회장 “환영하지만 너무 지연된 정의“
해고자 29명 모두 부당징계 등 법원 판결 받았지만
15명은 소송 중 정년 지나 공장 문턱도 못넘어봐
발레오 직원들이 2011년 6월3일 오후 경북 경주의 한 잔디구장에서 ‘화랑대 교육’을 받고 있다. <한겨레> 자료
발레오 직원들이 2011년 6월3일 오후 경북 경주의 한 잔디구장에서 ‘화랑대 교육’을 받고 있다. <한겨레> 자료

“제가 패도 돼요? 개값 물어주실래요?” (발레오 인사팀 직원)

“아이 개값이야 언제든지 물어주지. 패지 말고 씹으라고.” (강기봉 대표)

지난 2013년 7월 경북 경주 발레오전장시스템스코리아(발레오·옛 발레오만도) 노동조합에서 입수한 회사 쪽 캠코더 동영상에 담긴 대화 내용입니다. 노동조합 사무실에 들어가려는 민주노총 금속노조 발레오만도지회 조합원과 회사 쪽 용역이 공장 앞에서 대치하는 모습을 찍은 이 동영상에는 한 직원이 ‘노조 쪽이 코앞에서 사진을 찍는다’라는 취지의 말을 한 뒤 “패도 되냐”고 묻자 강기봉 발레오 대표가 “개값 물어 준다”라고 답변하는 내용이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강 대표와 발레오가 노동자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잘 드러내 주는 상징적인 장면입니다.

그후 6년이 지난 25일 대법원 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2010년 일부 업무 외주화에 반대해 쟁의행위를 하던 노조를 와해한 강 대표에게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죄가 있다고 인정해 징역 8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습니다. ‘노조파괴’를 이유로 대표이사가 구속된 것은 유성기업, 갑을오토텍에 이어 세 번째로 이례적인 일입니다. 발레오에 그만큼 문제가 많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겨레>는 강 대표의 판결문과 고용노동부가 적폐 청산을 위해 설립한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가 지난해 펴낸 ‘활동결과보고서’ 등을 종합해 완성차 부품업체로 해마다 수천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발레오에서 지난 9년 동안 벌어진 일들을 되짚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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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업’에 회사는 ‘직장폐쇄’…그리고 노조 파괴 컨설팅

사건은 2010년 2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발레오는 회사 경비업무를 외주화하였습니다. 하지만 발레오만도지회는 일방적인 업무 외주화는 단협에 위배된다며 2010년 2월5일 조합원투표에서 92%의 찬성으로 연장 및 야간근로를 하지 않는 쟁의행위에 들어갑니다. 파업도 아닌 이른바 ‘태업’ 투쟁에 회사는 강경하게 대응합니다. 같은달 16일 직장폐쇄를 해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발레오는 2010년 3월 이른바 ‘노조파괴 자문’으로 유명한 심종두 대표의 창조컨설팅과 계약을 맺고 8차례에 걸쳐 금속노조 산하의 발레오만도지회를 기업별 노조로 전환하는 등 쟁의행위 대응 전략을 조언 받았습니다. 자문료는 월 2500만~5000만원 수준. 성공보수도 따로 약정되어 있었습니다.

창조컨설팅은 2010년 3월30일에 작성한 ‘쟁의행위 대응 전략행위’에서 직장폐쇄가 이어지는 당시 상황을 “노노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므로, 회사의 주도하에 ‘협력적 노사관계' 구축을 위한 절호의 기회”라고 규정했습니다. ‘협력적 노사관계’란 “힘의 균형상 회사가 우위에 있고, 조합의 통제가 가능한 시스템”이라는 설명도 친절히 덧붙였습니다. 이를 위해 창조컨설팅은 “조합의 권력은 조합원과 조합비에서 시작되는바, 조합원의 가입범위를 합리화시키고 채찍(징계)과 당근(보상)을 중심으로 조합원 수를 줄이는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회사에 자문했습니다. 또 “관리자와 함께 조합원 사이에 여론을 주도하고 회사의 입장을 전파할 수 있는 Key man(키맨)을 선정하여 적극적인 조합탈퇴 여론을 조성”하고 “협력적 노사관계 구축을 위해 현재의 산별노조의 조직형태를 기업별 노조의 조직형태로 변경하여 조합을 합리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전국금속노동조합 발레오만도지회 조합원과 금속노조 관계자들이 2013년 7월15일 오전 서울 을지로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회사 쪽의 노조파괴 인권유린 폭력사태에 대한 인권위 긴급 구제신청 및 진정을 접수한다고 밝히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전국금속노동조합 발레오만도지회 조합원과 금속노조 관계자들이 2013년 7월15일 오전 서울 을지로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회사 쪽의 노조파괴 인권유린 폭력사태에 대한 인권위 긴급 구제신청 및 진정을 접수한다고 밝히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이같은 자문은 그대로 이행됐습니다. 회사는 쟁의행위 중인 조합원들을 개별적으로 접촉해 2010년 3월에 100여명, 4월에 300여명을 업무에 복귀시켰습니다. 그 뒤 복귀자들을 상대로 ‘민주노총 바로 알기’ 등의 강의를 하며 금속노조 탈퇴를 유도했습니다. 또 회사는 복귀자들이 만든 ‘조합원을 위한 조합원들의 모임’(이하 조조모)을 지원해 2010년 6월 노조 임시총회에서 금속노조를 탈퇴하고 기업별 노조로 전환하는 안건이 통과되도록 유도했습니다. 전략은 대성공했습니다. 직장폐쇄 이전까지 발레오 직원 800여명 중 621명이 금속노조 산하 발레오만도지회에 가입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기업별 노조로 전환된 뒤 발레오에서 금속노조에 남은 조합원 숫자는 36명(해고·정직 등 징계자 29명 포함)까지 줄어들었습니다.

회사의 ‘뒤끝’은 해고와 노조 와해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회사는 직장폐쇄 이후인 2011년부터 2박3일 동안 회사에서 먹고 자는 ‘화랑대 교육’이라는 프로그램을 도입했습니다. 회사는 소통 교육, 원가절감, 야외 미션 수행 게임을 하며 ‘혁신’을 배우는 교육과정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실제 화랑대 교육을 경험한 노동자들은 낮에는 오리걸음과 같은 벌칙을 주어 회사에 ‘복종’하도록 하고 밤에는 ‘금속노조’의 문제점을 토의하며 노조에 대한 반감을 키우는 프로그램이었다고 말합니다. 이밖에도 회사는 ‘지피지기’ 개선 티에프(TF)팀을 운영하며 수십여명씩을 풀 뽑기, 화장실 청소, 작업장 페인트칠 등에 동원했습니다. 발레오만도지회 쪽은 지피지기 티에프에는 회사에 늦게 복귀하거나 지회 쪽과 친한 노동자들이 주로 배치됐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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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노조파괴 지원한 정황…‘재판거래’ 의혹도

발레오만도지회 와해에 개입된 것은 회사뿐이 아닙니다. 지난해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가 펴낸 활동결과보고서(개혁위 백서)에는 정부 차원에서 이런 노조파괴를 지원한 정황이 드러납니다. 개혁위 백서에는 고용노동부 직원이 회사와 노조 쪽에 당시 금속노조 탈퇴 등을 권유한 정황이 나옵니다. 고용노동부 포항지청이 작성한 발레오 쪽의 직장폐쇄와 관련한 법률 검토 문건이 회사 쪽에 흘러들어 간 사실과 검찰, 노동부, 국가정보원 등이 2009년부터 경주 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큰 노조 중 하나인 발레오만도지회를 파괴하려고 논의한 정황도 있습니다.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는 개혁위 백서에서 이런 정황들을 밝힌 뒤 “발레오전장 노조파괴가 단순히 단사차원에서 결정되고 집행된 것이 아니라, 청와대가 관여하고 노동부 실무자가 적극 개입하였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으나, 이에 대한 공식적인 조사가 진행된 바 없다”면서 “본 조사에서도 자료제출 거부 및 조사권의 한계로 인하여 의혹의 실체를 규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라고 적었습니다.

법원행정처가 2015년 7월31일 작성한  ‘정부 운영에 대한 사법부의 협력 사례’ 문건에 발레오 사례가 포함되어 있다.
법원행정처가 2015년 7월31일 작성한 ‘정부 운영에 대한 사법부의 협력 사례’ 문건에 발레오 사례가 포함되어 있다.
법원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법원행정처가 2015년 7월31일 작성한 ‘정부 운영에 대한 사법부의 협력 사례’(협력 사례)에는 발레오 사건이 ‘대통령의 국정운영 뒷받침’ 사례로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당시 대법원에는 조조모 구성원이 중심이 되어 2010년 6월 연 임시총회에서 노조의 조직형태를 산별에서 기업별로 변경한 것에 대해 당시 임시총회에 참가하지 않은 조합원들이 낸 ‘조직형태 변경결의 무효확인 소송’이 계류되어 있었습니다. 항소심에서는 이같은 조직형태 변경은 무효라는 결론을 내린 상태였습니다. 법원행정처는 ‘협력 사례’ 문건에서 “유효 여부에 따라 향후 노동조합의 운영방식 전반에 큰 파급력 예상”된다고 적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2016년 2월19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항소심 판결을 뒤집고 당시 조직형태 변경이 유효하다는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하였습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과 양승태 대법원장의 ‘재판거래’가 의심되는 판결이었던 것입니다.

물론 지금은 많은 일이 바로잡혔습니다. 1심과 2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고도 계속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아왔던 강 대표는 대법원 확정판결로 구속을 피하기 어려워졌습니다. 법원은 2010년 직장폐쇄 이후 해고되거나 정직을 당한 발레오 노동자 29명에게 회사가 내린 징계는 부당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모두 너무 늦은 ‘정의’였습니다. 발레오만도지회 쪽의 설명을 들어보면 해고자 29명의 사연은 이렇습니다. 15명은 2010년 해고됐습니다. 1명은 직장폐쇄 1년 뒤에까지 금속노조를 탈퇴하지 않다가 해고됐습니다. 13명은 최대 정직 3개월(최대 정직 기간)을 4차례 받은 뒤 해고됐습니다. 이들은 모두 부당해고(징계)무효 소송이나 민사소송에서 이겼습니다. 하지만 절반이 넘는 15명이 기나 긴 소송을 하던 중 정년이 지나 공장에 다시 발을 디뎌보지도 못한 채 회사를 등져야 했습니다.

“진실이 밝혀져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한편으론 너무 지연된 정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정연재 전 발레오만도 지회장이 강 대표의 징역형이 확정된 뒤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한 말입니다. 그의 말에는 허탈함이 짙게 배여 있었습니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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