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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북한이탈주민 모자 사망 한달도 안 됐는데…장애 여성도 ‘복지 사각’에서 숨졌다

등록 2019-08-28 16:42수정 2019-08-28 19:56

“정부, 인력이나 예산 확대 없이 ‘찾아가는 복지’만 내세웠다”
관악구청 “지난달 5일 복지플래너 방문 등 서비스 지속했다”
한쪽 다리를 절단한 장애를 안고 고립된 상태로 살아가다 숨진 지 2주 만에 발견된 정아무개씨의 서울 관악구 집에 휠체어가 놓여 있다. 김윤주 기자
한쪽 다리를 절단한 장애를 안고 고립된 상태로 살아가다 숨진 지 2주 만에 발견된 정아무개씨의 서울 관악구 집에 휠체어가 놓여 있다. 김윤주 기자
정부가 ‘찾아가는 복지’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거동이 불편한 50대 장애인이 또다시 복지 사각지대에서 소리 없이 세상을 등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북한이탈주민 모자가 사망 두달 만에 발견된 지 한달 만에 비슷한 사건이 발생한 셈이다.

28일 서울 관악경찰서의 설명을 종합하면, 홀로 살던 장애인 여성 정아무개(52)씨가 서울 관악구 자신의 집에서 숨진 지 2주만인 지난 20일 이웃의 신고로 발견됐다. 2016년 당뇨 합병증으로 한쪽 다리를 절단한 정씨는 병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 관계자는 “부검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당뇨 등 합병증이 사망의 원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웃이 정씨를 마지막으로 목격한 것은 지난 7월 말에서 8월 초라고 한다. 2주 이상 정씨의 죽음을 아무도 몰랐다. 정씨는 지난 1년동안 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지 않았지만 정부와 지자체는 이 역시 알아차리지 못했다. 보건복지부는 이날 지자체와 함께 3개월 이상 활동지원서비스 미이용자를 전수조사하겠다고 밝혔다.

<한겨레>가 경찰과 소방 당국 등을 취재한 결과, 정씨는 10여년 전 이혼한 뒤 홀로 살아왔다. 부모는 모두 여의었고 형제·자매도, 자식도 없었다. 다만 2016년 8월부터 활동지원서비스를 신청해 활동지원사와 함께 지내왔다. 정부는 지난 7월 장애등급별로 획일적인 서비스를 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 필요에 따른 지원을 하겠다며 장애등급제를 폐지했는데, 폐지 전 기준으로 봤을 때 정씨는 3급 장애인이었다. 활동지원등급에 따라 한달에 47~441시간 사이로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서울 관악구청 관계자는 “정씨는 활동지원 시간을 대부분 썼다. 다 안 쓸 때도 80~90% 정도는 사용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활동지원서비스를 활발하게 이용했던 정씨는 지난해 6월 중순 자신이 이용하던 ㅎ장애인자립생활센터와의 계약을 해지했다. 정씨가 센터와의 계약을 해지한 이유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활동지원서비스를 더이상 받지 않을 생각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7월17일 주민센터를 방문해 활동지원서비스 수급 갱신을 했기 때문이다. 수급 갱신은 활동지원서비스 수급 유효기간이 끝나기 전 계속해서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 밟아야 하는 절차다. 활동지원서비스 수급 대상자로 결정되면 이용자는 바우처를 활용해 민간 장애인자립센터와 계약해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정씨는 새로운 센터와 계약하지 않았고 그 뒤 꼬박 1년이 지난 뒤 숨졌다.

한쪽 다리를 절단한 장애를 안고 고립된 상태로 살아가다 숨진 지 2주 만에 발견된 정아무개씨의 서울 관악구 집에서 발견된 메모. 김윤주 기자
한쪽 다리를 절단한 장애를 안고 고립된 상태로 살아가다 숨진 지 2주 만에 발견된 정아무개씨의 서울 관악구 집에서 발견된 메모. 김윤주 기자
문제는 정씨가 활동지원서비스를 사용하지 않고 있는 것을 알아차린 이가 없었다는 점이다. 서울 관악구청 관계자는 “구청에서 개별 이용자의 활동지원서비스 이용 여부를 확인할 수는 있지만 별도로 서비스 미이용자를 검색해 추리거나 서비스 이용을 독려하지는 않는다”며 “몸이 많이 불편한 경우가 아니면 자신의 집에 활동보조인이 오는 것을 싫어하는 경우도 있다. 이 밖에 여러 다양한 이유로 미이용자에게 직접 이용을 독려하는 것이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관악구청은 정씨에게 다양한 복지서비스를 제공했다는 입장이다. 관악구청 관계자는 “지난달 5일 복지플래너가 정씨의 집을 찾아 형광등을 갈아주는 등 지속적으로 복지서비스를 제공했다. 정씨도 이동에 큰 제약이 있지 않아 지난달 23일에도 임대주택 신청 등을 위해 주민센터를 찾았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관악구청이 설명한 두 사례 모두 정씨가 먼저 주민센터를 직접 찾았던 경우다. 정씨가 필요할 때 직접 집을 찾아 여러 활동을 돕는 활동지원서비스가 유지됐다면 정씨는 죽음을 피할 수 있었거나, 적어도 더 빨리 발견됐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한쪽 다리를 절단한 장애를 안고 고립된 상태로 살아가다 숨진 지 2주 만에 발견된 정아무개씨의 서울 관악구 집에서 발견된 우편물. 김윤주 기자
한쪽 다리를 절단한 장애를 안고 고립된 상태로 살아가다 숨진 지 2주 만에 발견된 정아무개씨의 서울 관악구 집에서 발견된 우편물. 김윤주 기자
전문가들은 정씨의 죽음을 복지 사각지대에서 발생한 또 하나의 비극이라고 설명했다. 조현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조직실장은 “정부가 7월 장애등급제를 폐지하면서 내세운 것 중 하나가 찾아가는 상담과 발굴을 통한 복지서비스 강화였다. 하지만 그에 필요한 인력이나 예산 확대 없이 기존의 사회복지 공무원들이 그대로 업무를 수행하다 보니 큰 변화가 없었다”며 “만약 복지서비스의 공적인 전달체계가 더 강화되었다면 정씨와 같은 비극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부의 그런 정책적 노력이 부재하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구청에서는 사회서비스 바우처 결제 이력을 확인해서 이용자가 서비스를 지속해서 받는지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결제 이력 확인은 복지 사각지대를 찾는 것이 아닌 부정수급을 밝히는 데에만 사용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운영위원장 역시 “정부와 지자체가 사각지대를 찾는 노력을 하지만 여러 사건에서 확인되듯 유기적으로 연계되지 않는 것 같다. 공급자가 아닌 수혜자 입장에서 사각지대를 염두에 두고 복지 행정을 유기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윤주 박현정 기자 k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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