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의 희생자 고 우홍선씨의 부인 강순희씨(오른쪽)와 고 여정남씨의 조카 여상화씨가 27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인혁당 사건에 대한 재심 결정이 내려진 뒤 열린 기자회견 도중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인혁당‘ 사건 재심결정 의미
‘의문사위 조사결과’ 명백한 증거로 인정
“피고인 없어 애통” 전향적 판결 가능성
‘의문사위 조사결과’ 명백한 증거로 인정
“피고인 없어 애통” 전향적 판결 가능성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대한 법원의 27일 재심 결정은 법원이 그동안 매우 엄격하게 적용했던 재심 요건을 크게 넓혔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과거사 반성에 대한 법원의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힘겹게 열린 재심의 문=형사소송법은 재심 개시 사유를 ‘증거가 위조됐거나 수사에 관여한 검사·경찰의 직무범죄가 확정판결로 증명된 때’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물론 ‘무죄를 인정할 만한 명백한 증거가 있는 때’도 재심 개시의 요건으로 열거돼있지만, 법원은 그동안 ‘명백한 증거’를 엄격하게 해석해왔다.
재일조선인총연합회(총련) 간부인 형의 지령을 받아 간첩 활동을 했다는 혐의로 구속기소돼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은 신귀영(68)씨의 재심 청구 사건은 법원의 ‘닫힌 모습’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신씨는 1995년 “사건이 조작됐다”는 신씨 형의 진술서와 수사관들의 고문사실 등을 근거로 재심을 청구해 1·2심에서 재심 개시 결정을 받았다. 하지만 대법원은 “무죄를 인정할 명백한 증거라고 볼 수 없다”며 이를 뒤집었다. 이런 논리라면 몇십년 이상 지난 조작 사건 피해자들은 사실상 재심을 받아볼 기회를 가질 수 없다.
그러나 이번 사건 재판부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 결과를 ‘명백한 증거’로 받아들이는 법률 해석을 통해 재심 사유를 넓혔다. 재판부는 “직무의 독립성 및 신분을 보장받고 국회의 동의를 받아 대통령이 임명한 위원들로 구성되고 현직 검사가 파견돼 조사를 행한 의문사위가 조사한 점 등에 비춰보면, 수사 과정에서 고문이 이뤄졌다는 진술의 신빙성이 매우 높다”고 밝혔다.
이 논리가 법원에서 유지되면, 이미 오래 전에 공소시효가 끝나버려 재판을 통해 수사과정의 가혹행위를 입증할 수 없는 다른 조작 사건들도 과거사위원회 등 국가기구들의 조사를 거쳐 새로운 사실이 밝혀질 경우 재심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재심절차 어떻게=검찰은 이번 법원의 결정에 대해 통지를 받은 날로부터 3일 안에 즉시항고를 할 수 있다. “검토 중”이라는 의견을 밝혔지만 의문사위와 국가정보원 과거사위가 ‘조작사건’이라고 결론 내린 이 사건의 재심 개시 결정에 대해 검찰은 항고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재심 개시 결정이 확정돼 본격적인 재심이 시작되면 다시 사건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부에 배당돼 일반 형사사건과 똑같이 심리가 이뤄진다. 재심 개시 여부든 재심 본안 판단이든 이 사건이 대법원에서 어떻게 판결이 나올지도 관심거리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이미 재심 확대를 과거사 청산 방법의 하나로 제시한 바 있어, 대법원이 이 사건에 대한 판결을 계기로 과거사에 대한 전향적인 판례를 내놓을 가능성도 있다. 한편, 이번 사건 재판장인 이기택 부장판사는 이날 결정문을 읽기 전 “이 재판의 가장 중요한 당사자인 피고인들이 없다는 게 가장 가슴 아프다”며 “이러한 사정들은 이 재판의 역사적 위치와 함께, 재심을 통한 피고인들의 권리 구제의 한계를 말해주는 것이어서 더욱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다.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재심 청구’ 다른 공안사건 사례 조총련 간첩 몰아 이근안씨가 고문
한국 탈출하려다 붙잡혀 사형당해 법원이 ‘인혁당 재건위’사건의 재심을 결정함에 따라 박정희·전두환 군사정부 시절 국가보안법·반공법 위반자들이 낸 재심청구 사건에도 눈길이 쏠린다. 고문과 가혹행위로 사건이 조작돼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은 당사자나 유족들은 이번 결정이 법원이 높은 ‘재심 문턱’을 낮추는 계기가 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현재 법원에 재심이 청구된 사건은 간첩 혐의로 복역한 이장형(74)·강희철(47)씨와 귀순 뒤 제3국으로 탈출하다 붙잡혀 사형당한 북 고위간부 이수근씨의 조카 배경옥(67)씨 사건 등 3건이다. 이장형씨는 6.25 때 해병대 장교로 참전해 금성무공훈장을 받고 예비군 중대장까지 지냈으나 1984년 조총련 관련 간첩사건으로 구속기소됐다. 이씨는 “제주에서 체포돼 서울 보안수사대로 옮겨진 뒤, 57일 동안 영장 없이 불법구금 된 채 이근안 등으로부터 잠 안재우기 등 고문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강희철씨는 일본 오사카로 밀항했다 귀국한 뒤 군복무를 마쳤으나 결혼 1년만인 1986년 4월 제주도경에 느닷없이 연행됐다. 강씨는 “5일 동안 불법구금돼 고문을 받았으며, 체포되고 구속영장이 발부되기까지 132일이나 걸렸다”고 주장한다. 귀순한 북한 고위 언론인 이수근씨는 1969년 조카인 배경옥씨와 함께 한국을 탈출하다 베트남에서 중앙정보부 요원들에게 검거돼 사형선고를 받았다. 배경옥씨는 “이씨는 남북 양 체제에 염증을 느껴 제3국에서 살고 싶어했고, 중앙정보부는 이씨가 국외에서 박정희 정권을 비판할 것이 두려워 간첩으로 조작했다”고 주장한다. 이장형씨와 강씨는 각각 올 8·9월 서울중앙지법과 제주지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배경옥씨는 올 7월 서울중앙지법에 재심을 청구했고, 관할법원이 바뀌어 서울고법으로 이송돼 계류 중이다. 이장형씨의 재심청구 사건을 심리 중인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 이혜광 부장판사는 “‘이근안씨에게 고문당했다’는 주장이 어느 정도까지 소명되느냐가 관건”이라며 “다음해 초께 첫 재판을 열 것”이라고 밝혔다. 강희철씨의 소송대리를 맡은 김재영 변호사는 “오늘 결정은 축하할 일이지만, 법적으로는 별개의 사건”이라며 “이미 2차례 재판이 열렸고 새해 1월 심리때 ‘실제로 불법감금이 있었는지’등 쟁점에 대해 사실조사를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재심절차 어떻게=검찰은 이번 법원의 결정에 대해 통지를 받은 날로부터 3일 안에 즉시항고를 할 수 있다. “검토 중”이라는 의견을 밝혔지만 의문사위와 국가정보원 과거사위가 ‘조작사건’이라고 결론 내린 이 사건의 재심 개시 결정에 대해 검찰은 항고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재심 개시 결정이 확정돼 본격적인 재심이 시작되면 다시 사건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부에 배당돼 일반 형사사건과 똑같이 심리가 이뤄진다. 재심 개시 여부든 재심 본안 판단이든 이 사건이 대법원에서 어떻게 판결이 나올지도 관심거리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이미 재심 확대를 과거사 청산 방법의 하나로 제시한 바 있어, 대법원이 이 사건에 대한 판결을 계기로 과거사에 대한 전향적인 판례를 내놓을 가능성도 있다. 한편, 이번 사건 재판장인 이기택 부장판사는 이날 결정문을 읽기 전 “이 재판의 가장 중요한 당사자인 피고인들이 없다는 게 가장 가슴 아프다”며 “이러한 사정들은 이 재판의 역사적 위치와 함께, 재심을 통한 피고인들의 권리 구제의 한계를 말해주는 것이어서 더욱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다.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재심 청구’ 다른 공안사건 사례 조총련 간첩 몰아 이근안씨가 고문
한국 탈출하려다 붙잡혀 사형당해 법원이 ‘인혁당 재건위’사건의 재심을 결정함에 따라 박정희·전두환 군사정부 시절 국가보안법·반공법 위반자들이 낸 재심청구 사건에도 눈길이 쏠린다. 고문과 가혹행위로 사건이 조작돼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은 당사자나 유족들은 이번 결정이 법원이 높은 ‘재심 문턱’을 낮추는 계기가 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현재 법원에 재심이 청구된 사건은 간첩 혐의로 복역한 이장형(74)·강희철(47)씨와 귀순 뒤 제3국으로 탈출하다 붙잡혀 사형당한 북 고위간부 이수근씨의 조카 배경옥(67)씨 사건 등 3건이다. 이장형씨는 6.25 때 해병대 장교로 참전해 금성무공훈장을 받고 예비군 중대장까지 지냈으나 1984년 조총련 관련 간첩사건으로 구속기소됐다. 이씨는 “제주에서 체포돼 서울 보안수사대로 옮겨진 뒤, 57일 동안 영장 없이 불법구금 된 채 이근안 등으로부터 잠 안재우기 등 고문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강희철씨는 일본 오사카로 밀항했다 귀국한 뒤 군복무를 마쳤으나 결혼 1년만인 1986년 4월 제주도경에 느닷없이 연행됐다. 강씨는 “5일 동안 불법구금돼 고문을 받았으며, 체포되고 구속영장이 발부되기까지 132일이나 걸렸다”고 주장한다. 귀순한 북한 고위 언론인 이수근씨는 1969년 조카인 배경옥씨와 함께 한국을 탈출하다 베트남에서 중앙정보부 요원들에게 검거돼 사형선고를 받았다. 배경옥씨는 “이씨는 남북 양 체제에 염증을 느껴 제3국에서 살고 싶어했고, 중앙정보부는 이씨가 국외에서 박정희 정권을 비판할 것이 두려워 간첩으로 조작했다”고 주장한다. 이장형씨와 강씨는 각각 올 8·9월 서울중앙지법과 제주지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배경옥씨는 올 7월 서울중앙지법에 재심을 청구했고, 관할법원이 바뀌어 서울고법으로 이송돼 계류 중이다. 이장형씨의 재심청구 사건을 심리 중인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 이혜광 부장판사는 “‘이근안씨에게 고문당했다’는 주장이 어느 정도까지 소명되느냐가 관건”이라며 “다음해 초께 첫 재판을 열 것”이라고 밝혔다. 강희철씨의 소송대리를 맡은 김재영 변호사는 “오늘 결정은 축하할 일이지만, 법적으로는 별개의 사건”이라며 “이미 2차례 재판이 열렸고 새해 1월 심리때 ‘실제로 불법감금이 있었는지’등 쟁점에 대해 사실조사를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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