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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요즘은 월세방에도 ‘권리금’ 있다는 거, 아시나요?

등록 2019-09-25 15:59수정 2019-09-25 20:04

월세방 인테리어 한 뒤 다음 세입자에게 권리금 받고 넘겨
“주거난 속 합리적 선택” vs “약자끼리의 제로섬 게임”
상가 권리금과 달리 법으로 보호받지 못해 주의 필요
장씨가 집 셀프 인테리어를 하기 전 모습(왼쪽)과 한 뒤 모습(오른쪽). 장씨 제공.
장씨가 집 셀프 인테리어를 하기 전 모습(왼쪽)과 한 뒤 모습(오른쪽). 장씨 제공.
마케터로 일하는 장신재(29)씨는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35만원을 내고 2년 가까이 살던 서울 동작구 상도동 투룸을 권리금 40만원을 받고 다음 세입자에게 넘겼다. 장씨는 대전에 살다 서울로 취업해 이사하면서 자취방을 구하려 했지만, 적당한 곳을 찾기가 어려웠다. 오래된 원룸은 싸지만 환경이 좋지 않았고, 신축 오피스텔은 비쌌다. 결국 장씨는 적당한 가격대와 크기의 방을 계약한 뒤 셀프 인테리어를 하기로 맘먹었다. 처음 발 디딘 집은 저렴한 월세가 납득될 만큼 낡고 초라했다. 나무문은 반쯤 썩어들어 가고, 무늬가 제각각인 누런 장판을 들어 올리면 시멘트 바닥이 훤히 보였다. 장씨는 임대인의 동의를 구하고 우선 낡은 갈색 몰딩과 문, 누런 부엌 타일을 모두 흰 페인트로 칠했다. 누런 장판은 흰색 데코타일로 대체했다. 싱크대 문에 붙어있던 알록달록한 시트지도 흰색으로 바꿨다. 나무로 수납함을 짜 맞춰 빈 곳을 채웠다. 고향 집에서 안 쓰는 가스레인지를 가져오고, 전자레인지와 에어컨, 냉장고 등을 중고로 샀다. 신발장과 서랍장, 옷장 등도 집과 잘 어울리는 모양으로 구매했다. 이렇게 집을 꾸미는데 120만원과 약 한달의 시간이 소요됐다. 장씨는 “남의 집을 빌려 산다는 이유로 대충 살고 싶지는 않았다”며 “인테리어를 마치니 전체적인 집의 이미지가 환하고 깔끔하게 바뀌었고 이전보다 훨씬 공간을 넓게 사용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계약 만료 기간이 다가왔고, 장씨는 부동산 직거래 카페 ‘피터팬의 좋은방 구하기’에 다음 세입자를 구하는 양도 글을 올렸다. 셀프 인테리어 전후를 비교한 사진을 올리고 가전과 가구를 포함해 권리금 40만원을 받고 싶다고 적었다. 장씨는 “집을 환골탈태시킨 노력과 수고는 값을 매기기 어려웠지만, 내가 인테리어 전문가가 아니기도 하고 그 집에서 2년 가까이 행복하게 살았기에 비합리적인 금액을 책정하고 싶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장씨가 계약할 때보다 월세가 5만원 올랐고 권리금까지 있음에도 글을 올리자마자 한두 시간 만에 10건이 넘는 연락이 왔다. 장씨는 “당일 바로 네다섯 명이 집을 보고 갔고, 모두 흡족해하며 권리금을 포함해 계약하고 싶다고 했다”며 “덕분에 집과 잘 어울리는 사람을 선택해 원활히 계약했다”고 말했다.

최근 청년들 사이에서 비용을 들여 자신이 사는 월세방을 꾸며놓고 다음 세입자에게 권리금을 받고 월세를 넘기는 ‘월세 권리금’ 문화가 나타나고 있다. 권리금은 보통 임차인끼리 상가를 넘길 때 임대차 계약과 별도로 설비 비용과 점포 위치에 따른 상권 이익 등에 대해 주고받는 돈이다. 이 권리금이 이제 월세 시장에도 등장한 것이다.

지난 7월 한 트위터 이용자는 “보증금 200만원에 월세 15만원으로 1년 버틴 천호동 반지하 첫 자취방. 잘 꾸며놓고 권리금 40만원 받고 세입자 구해서 방 뺐다. 두번째로 구한 보증금 2500만원짜리 전셋집도 권리금 70만원 받았다. (그 이후에) 3천만원으로 구한 1억짜리 전셋집은 권리금 200만원 받았다. 권리금은 시설비, 가전 비용 명목으로 뒤탈 없이 받아냈었다. 그래도 200만원은 아직도 안 믿긴다”(@****4fem)는 글을 썼다.

이 경험담이 공유되면서 우선 ‘월세 권리금’은 청년들이 집값을 감당하기 힘든 사회에서 월세 주거환경이라도 개선하기 위한 선택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집 구하러 다녀보면 웃돈을 좀 주더라도 수리 싹 하고 인테리어 해서 내 마음에 드는 예쁜 집을 계약하는 게 장기적으로 훨씬 이득이 된다는 걸 계산기 두드려보면 금방 안다. 물론 싫으면 계약 안 하면 그만”(@****1133),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쾌적한 삶을 추구하는 데서 생긴 변칙적 상황일 뿐이다. (월세 권리금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매끈한 신축 복층 오피스텔 바깥에 더 많은 세상의 1~2인용 주거 시장을 전혀 모르고 하는 말”(@****.lee)과 같은 반응이 이어졌다. 장씨도 “집주인은 집이 좋아져 월세를 올려 받을 수 있게 되었고, 새로운 세입자는 깨끗하고 예쁜 집에서 합리적인 월세로 살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월세 권리금’의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는 지적이다. 강아무개(34)씨는 두 번이나 무리한 월세 보증금을 요구받았다. 강씨는 “지난 6월 망원동에서 집을 구하는데, 세입자가 7년 된 벽걸이 에어컨, 붙박이장, 옷걸이를 70만원에 양도받을 사람에게만 집을 내준다고 했다. 어차피 벽걸이 에어컨은 들고 가는 게 더 짐이고 붙박이장도 들고 가는 게 불가능한데 (그걸로) 장사를 했다”고 말했다. 강씨는 이어 “또 다른 집은 식탁, 수납장, 의자 등을 100만원에 양도받을 사람에게만 집을 준다고 했다. 그 가구들 전부 신제품 가격으로 해도 100만원이 안될 것 같았다. 이런 집들이 부동산 직거래 카페에서 댓글이 줄줄이 달리는데, 자기(세입자)가 건물주인 것처럼 갑질하고 있더라”라고 했다. 강씨는 이런 문화에 대해 “월세살이가 월세살이에게 피 뽑는 셈”이라고 일축했다.

‘월세 권리금’이 “약자끼리의 제로섬 게임”이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월세 권리금 문화가 자리 잡으면 결과적으론 주택 노후에 대한 리스크를 (집주인이 아니라) 세입자들이 끌어안는 셈이다. 이 과정에서 역시나 가장 큰 피해를 볼 사람들은 주거 취약계층”(@****jaem), “경제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비슷한 월세방을 찾는 사람들은 월세 몇달치에 해당하는 권리금을 내야 하는 셈”(@****1106) 등의 의견이 나왔다. 박효주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간사는 “근본적으로 임대인이 거주 공간에 대한 의무를 다하지 못해서 발생하는 일”이라며 “월세는 임대인이 임차하는 주택에 대해 도배 등의 비용을 부담하게끔 되어 있다. 임대료도 비싼데 임대인이 해야 할 몫까지 세입자가 부담하게 된다면, 결국 피해는 계속 다음 세입자에게 전가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월세 권리금은 법으로 보호받을 수 없어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엄정숙 변호사는 “상가 건물의 경우 과거에 관행적으로 주고받던 권리금이 2015년부터 법으로 보호받기 시작했으나, 주거용 건물에 대한 권리금은 법으로 보호하고 있지 않다”며 “권리금을 주고 넘겨받은 가전·가구의 경우, 나중에 임대인이 두고 가라고 하면 분쟁이 될 수도 있다. 권리금을 지불할 때는 어떤 물건에 대한 소유권이 정확히 누구에게 있는지에 대해 전 세입자가 아니라 임대인과 합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주빈 서혜미 기자 y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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