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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가혹행위 못이겨 탈영했다 ‘간첩 누명’… 50년 만에 열리는 재심

등록 2019-10-01 15:12수정 2019-10-01 19:38

지난 6월17일 재심 기각 결정에 대한 즉시항고가 열리는 서울고법 법정 앞에 박상은씨(오른쪽)와 변호인이 앉아있다. 사진 지금여기에 제공.
지난 6월17일 재심 기각 결정에 대한 즉시항고가 열리는 서울고법 법정 앞에 박상은씨(오른쪽)와 변호인이 앉아있다. 사진 지금여기에 제공.
1969년 5월1일 강원도 화천에서 군 복무 중이던 박상은(당시 23살)씨는 선임한테 곡괭이 자루로 수차례 구타를 당했다. 세탁물을 탄약고 위에 잠시 널어 뒀다는 게 이유였다. 끊이지 않는 가혹행위에 억울함을 느낀 박씨는 다음날 새벽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 탈영을 시도했다. 하지만 박씨는 고향에 계신 아버지가 떠올랐고 다시 부대 복귀를 결심했다. 부대로 돌아오는 길, 산속에서 길을 잃은 박씨는 인근 15사단 수색중대 소속으로 보초를 서던 일병에게 발견돼 군부대로 인계됐다. 그러나 당시 제102보안부대는 그에게 “적진으로 도주하려 했으나 미수에 그쳤다”는 누명을 뒤집어 씌웠다.

보안부대는 구속영장에 기재되지 않은 장소에서 박씨를 불법 구금했고, 갖은 고문과 폭행으로 자백을 강요했다. 어느새 박씨는 납북된 친척에게 ‘북괴 지역이 살기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북한으로 넘어가 간첩으로 남파되기를 꿈꾼 사람이 돼 있었다. 1969년 6월 박씨는 결국 군형법상 적진에의 도주 미수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이듬해 확정됐다. 박씨는 1989년 가석방으로 출소했다. 20년의 감옥 생활은 23살의 청년을 43살의 중년으로 만들었다.

박씨는 지난해 4월 법원에 재심 청구서를 접수했다. 군대 안에서 벌어진 사건인 만큼, 관련 기록은 당시 판결문과 교도소 수감 생활을 기록한 수용자신분장뿐이었다. 박씨는 당시 사건 관련 인물도 어렵게 수소문해 찾았다. 박씨를 최초 발견했던 보초병 최아무개씨, 구금돼있던 박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을지 감시하던 군대 훈련소 동기 문아무개씨 찾아 증언을 청취했다. 그러나 재심 청구를 접수한 재판부(서울서부지법 형사11부·재판장 조병구)는 박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훈련소 동기 문씨와 보초병 최씨를 증인으로 세워 추가 신문을 해달라고 호소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제출된 증거들이) 재판 결과를 뒤집을 만한 새로운 증거라 보기 어렵다”고 판결문에 적었다. 박씨는 재판부 결정에 불복해 즉시 항고했다. 재판부와 달리 박씨의 무죄를 증명해줄 최씨와 문씨의 증인신문도 진행됐다.

지난 26일 서울고법 형사20부(재판장 배기열)는 법원 판결을 뒤집고 박씨의 재심 청구를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당시 박씨가 내무반장 지시로 구속영장에 기재된 장소(제21헌병중대 영창)가 아닌 다른 곳(102보안부대 내무반)에 구금돼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또한 수갑이 채워진 상태에서 잠을 자고 화장실도 다녀와야 했던 점을 들어 박씨가 당시 불법 감금돼 가혹행위를 당한 것이 분명하다고 봤다. 사법경찰의 지위에 있는 내무반장이 직무상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형사소송법상(제420조제 7호)의 재심 사유가 있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재판부 판단으로 박씨는 50년 만에 재심 법정에 서게 됐다. 박씨를 돕고 있는 국가폭력 피해자 지원단체 ‘지금여기에’의 변상철 사무국장은 “억울함을 호소하는 피해자가 있으면, 국가나 법원이 관련 기록을 찾거나 증인을 세울 때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줘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니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싸우는 느낌이 들었다. 재심에서는 적극적으로 꼼꼼히 다퉈 무죄 증명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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