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북구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네 모녀가 올해 7월부터 3개월 동안 건강보험료 약 86만원을 밀린 것으로 <한겨레> 취재 결과 확인됐다. 9월 초엔 집을 찾은 도시가스 검침원에게 요금 감면도 문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기초생활수급 대상이 될 만큼 빈곤층은 아니었으나, 급작스러운 경제적 위기 상황에 빠진 것으로 추정된다.
4일 국민건강보험공단·서울시 관계자 말을 종합해보면, 지역가입자인 70대 어머니와 둘째 딸은 올해 7~9월 3개월 치 건보료 약 3만1천원을 내지 못했다. 월 건보료가 최저 수준(1만3100원)보다 낮았던 것으로 보아 두 모녀의 소득·재산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셋째 딸은 쇼핑몰을 운영했으며, 첫째 딸은 동생이 운영하는 쇼핑몰에서 함께 일하고 있었다. 사업장 대표인 셋째 딸이 본인과 직원 건보료를 부담해야 하는데,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올해 7월부터 건보료를 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쇼핑몰 명의로 밀린 3개월 치 건보료는 약 82만8천원이며, 국민연금 보험료도 일부 못 낸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네 모녀가 어렵게 생활했다는 사실은 이들의 집을 방문한 도시가스 검침원의 증언으로도 확인된다. 뒤늦게 죽음이 확인된 당일 경찰에 “냄새가 난다”고 신고했다는 도시가스 검침원 ㄱ씨는 4일 <한겨레>와 만나 “9월1일 마지막 가스 검침을 위해 네 모녀 집에 갔을 때, 딸 한명이 ‘도시가스 요금 감면이 되느냐’고 물었고 ‘소득이 있으면 안 된다. 경감 세대 여부는 주민센터에서 통보받아야 한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ㄱ씨는 “당시 가스레인지에 음식을 해 먹은 흔적이 거의 없었고, 보일러 온수도 꺼져 있어 이유를 물었더니 ‘요금이 많이 나올까 봐 그랬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네 모녀는 이후 두달 동안 도시가스 요금을 내지 못했다.
네 모녀가 건보료를 몇달씩 내지 못했다는 정보는 위기 가구 발굴 등을 위한 ‘사회보장정보시스템’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사회보장정보시스템은 건보료 6개월 이상 체납 정보만 수집하기 때문이다. 앞서, 10월31일 사회보장정보시스템에 넘어가는 건보료 체납 기간을 6개월에서 3개월로 단축하는 내용 등이 담긴 사회보장급여법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그러나 사업장 대표의 건보료 체납 정보는 그 기간과 상관없이 사회보장정보시스템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새로운 법이 시행됐다 하더라도 네 모녀가 위기 가구로 분류됐을 가능성은 매우 작다는 뜻이다.
네 모녀는 지난 7월 성북동 주민센터를 방문한 적이 있으나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했다. 성북구청 관계자는 “어머니와 딸이 한 차례 주민센터를 방문해 기초연금 지급 계좌를 압류가 들어오지 않는 계좌로 변경하고 싶다고 했다”며 “담당자가 ‘무슨 일 있으시냐’며 상담을 시도했으나 별다른 사정을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빚을 갚지 못해도 채무자가 복지 급여에 대해선 원칙적으로 압류를 할 수 없게 돼 있으나 일반 통장을 사용할 경우 압류 가능성이 크므로 이를 방지하기 위해 압류방지 전용통장(행복지킴이 통장)을 개설한 것으로 보인다.
김상철 서울시민재정네트워크 기획위원은 “복지정책은 가계 자산을 기반으로 짜이기 때문에 네 모녀의 경제 상황이 최근 급격히 추락한 것이라면 복지 대상이 되지 못한다”며 “네 모녀의 비극은 기존 복지 시스템이 포괄할 수 없는 대상이 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박현정 김완 이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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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전 경찰이 네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된 서울 성북구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현장 감식을 하고 있다. 김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