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20.01.05 15:51
수정 : 2020.01.05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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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방자치단체가 만든 외국인계절근로자 프로그램 홍보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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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와 국외 지자체 사이 업무협약 맺을 때 국내외 중개업자 개입
비행기삯과 중개 수수료 등 이주노동자들에게 전가해 착취
법무부 “알선 및 수수료 징수사례 확인되면 해당 지자체에 불이익 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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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방자치단체가 만든 외국인계절근로자 프로그램 홍보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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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산타로사시 출신 노동자 ㄱ(32)씨와 ㄴ(35)씨는 지난해 9월 법무부의 ‘외국인계절근로자 프로그램’을 통해 입국했다. 농번기 농어촌에서 일할 이주노동자들에게 3개월 단기 취업비자를 발급하는 제도다. 두 사람은 전남 해남군에서 쌀과 배추 수확 일을 해서 받은 월급 175만원 가운데 숙박비 25만원을 고용주에게 지불했다. 그런데 통장에서는 남은 급여 150만원의 절반인 75만원도 어디론가 빠져나가고 있었다. 이유를 알아보니, 75만원은 한국인 중개업자 계좌로 이체되는 것이었다. 해남군청에 문의했더니, 출국 전 산타로사시와 불법체류를 막기 위해 계약서에서 합의한 사항이고 귀국 뒤에 정산해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ㄱ씨와 ㄴ씨가 필리핀 중개업자와 서명한 계약서에는 그런 내용이 없었다. 결국 ㄱ씨는 석달 임금의 절반인 225만원, ㄴ씨는 두달 임금의 절반인 150만원을 받지 못한 채 귀국했다.
법무부가 2015년 외국인계절근로자 프로그램을 도입하면서 국내외 중개업자들의 개입을 금지하고 있지만, 현장에선 이들이 개입해 이주노동자들의 임금을 중간에서 착취하는 일이 여전히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
외국인계절근로자 프로그램은 2015년 10월 시범사업을 시작으로 2017년부터 본격화했다. 지난해에만 11월까지 3211명의 이주노동자가 이 제도를 통해 입국했다. 국내와 국외 지방자치단체가 업무협약을 맺어 인력을 교류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법무부의 ‘2019년도 외국인 계절근로자 프로그램 기본계획’을 보면, 지자체의 신청 요건에는 △업무협약 때 국내외 중개업자의 개입이나 중개를 거치지 않아야 한다 △중개업자들이 알선비용을 받지 않아야 한다 등이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중개업자들의 개입은 여전하다. 경기 포천시에선 지난해 6~7월에 입국한 네팔 판초부리시에서 일하던 외국인계절근로자 41명 중 18명이 귀국하지 않고 이탈했다. 포천시와 판초부리시가 업무협약을 맺을 때 이주노동자들이 민간 중개업자에게 비행기삯과 중개료를 지불했으나 3개월밖에 일하지 못한 것이 이탈의 원인으로 알려졌다. 이혜경 배재대 교수(공공인재학부)가 2018년 12월 발표한 ‘외국인 단기 계절근로자제도 실태분석 및 종합개선 방안 연구’에서도 조사대상 지자체 29곳 가운데 5곳이 중개업체를 통해 이주노동자들을 소개받고 있었다. 한 한국인 중개업자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지자체끼리 업무협약을 맺을 때 중개업자가 끼지 않는 곳은 하나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선 산타로사시 사례에서도 필리핀과 한국인 중개업자가 지자체 협약 과정부터 개입했다. 하지만 해남군청은 “산타로사시에서 선정한 업체여서 구체적인 계약 내용까지는 파악할 수 없다”고 해명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알선 및 수수료 징수사례가 확인되면 해당 지자체에 다음연도 외국인계절근로자 배정을 제외하는 등 사후 제재를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재구 기자
j9@hani.co.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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