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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냉전 겪은 독일 원로 교수들 ‘북한 교류’ 열렬히 지원해줘요”

등록 2020-02-23 18:27수정 2020-02-24 02:36

[짬] 베를린 자유대 한국학과장 이은정 교수

이은정 베를린자유대학 한국학과장. 사진 한주연 통신원
이은정 베를린자유대학 한국학과장. 사진 한주연 통신원

“남한 학생들은 북한 사람이 정말 머리에 뿔 난 사람인 줄 알아요. 남한 학생들이 신문을 통해 북한 학생이 왔다는 사실을 알고 저한테 살짝 와서 쟤들한테 말 걸어도 되냐고 물어봤어요. 그리고 입학식이 끝나고 어떤 남한 학생은 북한 선생님에게 가서 손 좀 만져 봐도 되냐고 묻더라고요. 반공교육 흔적이 그렇게 강해요. 북한 학생들은 나한테 이야기를 안 해줘서 어떻게 반응했을지 모르겠지만 우리 학생의 반응을 보고 너무 속상하고 슬펐어요.”

지난 1월 김일성대학 학생 12명이 3주간 베를린자유대 계절학기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그들은 14개 국가에서 온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들었다. 그중에는 한국 학생 80여명도 있었다. 이 프로그램은 독일 신문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이 “놀랍다”며 대서특필하기도 했다.

지난 7일 이 프로그램을 이끈 베를린자유대 한국학과장 이은정 교수(55)를 만났다. 격무에 시달린 듯 목소리가 잠겨있었지만 표정은 밝았다.

“2011년 김일성대학으로부터 자유대와 교류협정(MOU)을 체결하자는 제안이 들어왔어요. 그래서 제가 2015년 두 대학의 협력을 타진하기 위해 평양에 갔어요.” 2015년까지 독일연방 의회, 대통령, 외무부 모두 두 대학의 협력을 지지했지만 이듬해 북한의 2차 핵 실험으로 사정이 달라졌단다. 대북 제재가 강화되면서 두 학교 간 교류협정 체결도 미뤄진 것이다.

그리고 2년 뒤 기회가 왔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두 대학 간 교류가 재개된 것이다. 이 교수는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이 평창올림픽 개막식 참석을 위해 방한했을 때 특별수행원으로 동행했다. 당시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이 교수에게 “냉전 시대에도 학술교류나 대학 간 협력은 진행되었다. 어떤 상황이건 정치적 조건과 관계없이 해야 하는 일”이라고 말했단다. “그 뒤로 우리 학교 총장단에서도 ‘교류협력을 추진하자’는 결정이 났어요. 그래서 그해 9월 제가 평양으로 교류협정서를 들고 갔죠.” 당시 한국학과에서는 북한에 있는 서원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북한에는 율곡의 서원인 소현서원이 있다. “자유대에서 진행하는 연구 프로젝트 ‘에피스테메, 지식의 변동’ 중에 한국학연구소가 이끄는 프로젝트 ‘서원 연구’가 있어요. 북한에서 서원 답사도 했죠.” 원래 서원이 양반 문화라서 북한에서 별로 연구되지 않았지만 이제는 북한에도 서원에 관심 있는 학자들이 꽤 있단다.

2년 전 방북해 김일성대와 교류협정
지난달 북 학생 12명 3주 연수 결실
남쪽 학생들 함께 자유대 계절학기
“북한 학생 초청 연수 정례화 예정
대학은 정치 관계없이 북 교류해야”

2008년 임용 뒤 한국학과 성장 이끌어

재작년 방북 때 마침 김일성대 독문학과 교수들이 ‘학생들이 독일 현지 어학연수를 하면 좋겠다’고 제안했단다. “김일성대 독문학과에 독일인 교수가 없더군요. 2016년 북한 핵 실험 이후 독일이 강력한 대북 제재를 펴 독일문화원도 문을 닫았고요. 4년 전부터 일과 북한의 교류가 모두 중단된 상태였죠. 독일어 교습 자료도 없고 새로 나온 독일 문학 작품도 못 읽었다고 해요.” 말을 이었다. “김일성대 독문학과라면 외교관이나 전문통역을 할 사람들입니다. 좋은 재원들이잖아요. 독일어 학습이 어려운 상황은 결국 독일 쪽에서 보면 손해이죠.”

그는 이번 프로그램에 대해 독일 정부 쪽 반응도 괜찮다면서 김일성대 학생 초청 프로그램을 정례화할 생각이라고 했다. 남북관계 정세와 관련 없이 지속가능한 프로그램으로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정치적 변화와 상관없이 교류의 창을 열어 놓을 수 있는 곳은 대학밖에 없어요. 자유대 원로교수들이 그래요. 자유대가 이 역할을 안 하면 누가 하겠냐고요. 독일에서 저를 지도한 교수들은 냉전을 겪은 분들이에요. 이분들이 마음으로 열렬히 지원해 주세요. ‘누가 뭐라고 해도 흔들리지 마라, 할 일을 하는 거다’라고 말씀해주세요.”

베를린자유대 한국학과는 성장 추세다. 한국학과가 2018년에 새로 자리 잡은 건물은 자유대의 모든 학과가 노리던 건물이었단다. 한국학과가 이 건물을 차지할 수 있었다는 것은 한국학과의 위상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2008년 베를린 한국학과 교수로 임용된 이 교수는 12년 만에 한국학연구소와 한국학과를 이만큼 키워놓았다.

계획을 들었다. “한국학과는 앞으로 유럽 국제기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한국 전문가를 키우는 역할을 맡게 될 겁니다. 지금까지는 학부 졸업생을 배출했는데 앞으로는 이들 가운데 선발된 학생들을 더 훈련해서 씽크탱크나 국제기구로 보내는 역할을 하려고 해요.” 말을 이었다. “자유대에서 제가 맡고 있는 한국학연구소의 역할을 계속 고민해왔는데 베를린이라는 지역이 한반도와 관련해서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어요. 그래서 김일성대와의 교류협정 체결에 적극 힘썼죠. 할 일이 아직 많아요. 돌을 하나씩 쌓아가는 과정입니다. 아직 가시적인 결실이 뚜렷이 보이지 않지만 이게 우리가 할 일이구나, 라는 생각은 들어요.”

한주연 베를린 통신원 juyeon@gmx.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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