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0억대 투자금 손실을 부른 ‘중국고섬 분식회계 사건’의 상장 주관사였던 한화투자증권에 부과된 20억의 과징금이 적법하다고 대법원이 판결했다. 상장주관사인 증권사의 투자자 보호책임을 강조한 판결이다. 당시 피해를 본 투자자들이 증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법원 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27일 한화투자증권이 금융위원회를 상대로 낸 시정명령 및 과징금 부과 처분 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자본시장 법령 규제 내용에 상관없이 원고가 실제로 주관회사로서의 업무를 수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과징금 부과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원심 판단은 잘못됐다”고 파기환송 이유를 밝혔다. 2015년 12월 원심판결이 나온 지 5년 만이다. 이 사건은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이 모두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에서 심리한 뒤 소부에서 선고했다.
중국 섬유업체 중국고섬(중국고섬공고유한공사)은 2011년 1월 유가증권시장(코스피)에 상장됐지만 2개월 만에 1천억원대 분식회계 사실이 들통나 거래가 정지됐다. 중국고섬은 2013년 10월 상장폐지됐고, 투자자들이 잃은 돈은 21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다. 금융위는 대표주관사인 미래에셋대우(옛 대우증권)과 공동증권사인 한화투자증권에 대해 “부실 실사로 증권신고서 상 중요사항의 거짓 기재를 방지하지 못한 중대한 과실이 있다”며 최대 과징금인 20억원을 부과했다. 한화투자증권과 미래에셋대우는 이에 불복해 각각 소송을 제기했다.
1·2심은 한화투자증권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한화투자증권을 과징금 부과처분 대상자인 '증권의 인수를 의뢰받아 인수조건 등을 정하는 인수인'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증권의 상장을 위한 인수가격의 결정 등은 대표주관회사인 미래에셋대우가 수행했고 한화투자증권은 이에 참여하지 않고 증권을 배정받은 인수인에만 해당한다는 취지였다. 또 기업이 작정하고 중요사항을 거짓으로 쓴 행위를 주관사가 방지하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는 과징금을 부과하기에 부족하다는 판단도 포함됐다.
그러나 대법원이 이를 뒤집었다. 대법원은 한화투자증권도 투자자 손실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봤다. 대법원은 “증권의 모집·매출은 발행회사가 직접 공모하기보다는 인수인을 통해 간접 공모하는 것이 통상”이라며 “투자자들은 시장의 ‘문지기’ 기능을 하는 인수인의 평판을 신뢰하여 그로부터 투자판단에 필요한 정보의 취득·확인·인증 등을 용이하게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자본시장법은 인수인이 증권신고서나 투자설명서 중 중요사항에 관하여 거짓 기재 또는 기재누락을 방지하는 데 필요한 적절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의무를 부과하고 거짓 기재 또는 기재누락으로 증권의 취득자가 손해를 입은 때에는 그 손해배상책임을 지우는 한편 그 위반행위에 대해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있는 때에는 과징금을 부과하도록 하고 있다”고 짚었다.
대법원은 또 “‘증권의 발행인으로부터 직접 증권의 인수를 의뢰받아 인수조건 등을 결정하는 인수인’이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말미암아 발행인이 작성 제출한 증권신고서나 투자설명서 중 중요사항에 관하여 거짓의 기재 또는 표시를 하거나 중요사항을 기재 또는 표시하지 아니한 행위를 방지하지 못한 때에는 과징금 부과 대상이 된다고 보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로 증권사가 ‘발행시장의 문지기’로서 부담하는 투자자 보호 의무가 있고 책임이 있다는 법리를 제시했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은 증권신고서의 거짓 기재 등에 관하여 주관회사에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는지에 대한 최초의 판시”라며 “대표주관회사인 미래에셋대우에 대한 과징금부과처분 취소소송 사건에서 증권신고서 거짓 기재 등에 관한 주관회사의 고위·중과실 여부 등에 관하여 추후 다루어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같은 소송 중인 미래에셋대우는 1·2심에서 승소한 뒤 대법원 선고를 남겨두고 있다.
증권업계는 이번 판결이 인보사 성분 변경 의혹을 받는 코오롱티슈진의 상장 주관사인 한국투자증권과 엔에이치(NH)투자증권의 법적 처벌, 손해배상책임이나 과징금 부과 등을 묻는 기준이 될 수 있다고도 보고 있다.
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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