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인근 문중원 기수 시민분향소 앞에서 열린 ‘문중원 기수 죽음의 재발방지 합의에 대한 입장 및 장례 일정 발표 기자회견’에서 고 문중원 기수의 부인 오은주씨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남편의 장례를 치르기까지 100일이 걸렸다. 지난해 11월28일 남편인 문중원(40) 기수가 집을 나서며 돌아오지 못할 작별인사를 한 뒤, 두 아이와 남겨진 오은주(37)씨는 99일간 가장 모진 겨울을 버텼다. 혹독한 계절이 지났다. 경마기수 문중원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던 한국마사회가 지난 6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과 합의해 ‘부산경마공원 사망사고 재발 방지안’을 내놓으면서 오은주의 싸움은 일단락됐다.
겨울이 지났다고 늘 봄이 오는 것은 아니다. “풀썩 주저앉고 싶은 순간도, 이를 악 무는 순간도 많았다”던 싸움에서 합의안을 끌어낸 것은 오씨의 힘이었다. 평범한 주부이자 엄마였던 오씨는 문중원 기수가 숨진 뒤 거리를 떠나지 못했다. 과천에서 청와대까지 오체투지로 기었고, 마사회에 들어가려다 경찰에게 힘으로 진압당했다. 남편의 주검 곁에서 날마다 추모제를 열고 ‘헛상여’로 행진해왔다. 오씨는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그 가운데서도 가장 힘들었던 건 강제철거를 당했을 때다. 참담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27일 종로구청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이유로 공무원 100명과 용역인력 200명, 경력 12개 중대를 동원해 시민분향소를 철거했다. 충격과 슬픔에 탈진한 오씨는 현장에서 쓰러졌고, 나흘 뒤부터는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오씨는 “그럼에도 사랑하는 남편이 남기고 간 우리 아이들이 있었고, 옆에서 든든하게 버팀목이 되어주신 양가 부모님들이 계셨고, 끝까지 제 손 잡아주신 공공운수노조, 시민대책위, 민주노총이 있어 버틸 수 있었다”고 말했다.
‘렛츠런파크 부산경남’ 기수 고 문중원씨의 부인 오은주(맨 오른쪽)씨와 시민대책위 관계자들이 7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인근 문중원 기수 시민분향소 앞에서 ‘죽음을 멈추 는 희망차량행진’ 참가 차량들이 경적을 울리며 도착하자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또 다른 문중원이 없도록 하려는 합의안에는 △부산·경남 경마 시스템과 업무실태에 관한 연구용역 △경쟁성 완화와 기수 건강권 보호를 위한 제도 개선 등의 내용이 담겼다. 특히 마사회의 연구용역 결과를 정부에 보고하게끔 함으로써, 그동안 감시 사각지대에 있던 마사회를 감시의 틀 안에 가둘 수 있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문중원 기수가 유서에서 뿌리 깊은 한국 경마 시스템의 부조리를 지적한 데 따른 것이다. 오씨는 “현직 기수들에 대해 제도 개선이 이뤄지게 되는데, 앞으로 일할 기수들이 조금 덜 힘들게 되지 않았나 싶다”고 평가했다. 다만 그는 “책임자 처벌(약속)을 명확하게 하지 못한 게 안타깝다”고 했다. 오씨와 대책위는 강력한 처벌을 주장했으나 마사회 쪽은 “경찰 수사 결과가 나와야 책임자를 징계할 수 있다”는 뜻을 고수했다고 한다. 후배 기수들에게 더 좋은 세상을 남기고, 9일 문중원은 영면에 든다. 그가 말을 달렸던 부산경마장에서의 노제를 끝으로 ‘노동열사의 성지’라 불리는 경남 양산 솥발산공원 묘원에 묻힌다. 오씨는 “남편은 유서 마지막에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썼다. 제가 아는 모든 분들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저는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 투쟁으로 얻은 (힘으로) 더 강한 엄마가 되어보려 한다”고 말했다.
전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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