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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무릎 꿇는 진정성을 차별금지법 찬성으로 인정받자

등록 2020-06-13 07:27수정 2020-06-13 07:44

[토요판] 표창원의 여의도 프로파일링
⑩ 차별과 혐오의 정치심리학

조지 플로이드 사건이 드러낸 진실
차별 뒤에는 선동하는 정치인 있어
1968년 영국 보수당 이녹 파월
‘피의 강’ 연설이 차별선동의 선례

한국에서도 ‘더러운 유산’ 이어가는
극우 정치인들 20대 국회에도 있어
모든 차별 반대하는 퍼포먼스 벌인
미래통합당 21대 초선 의원들
여야가 차별 반대로 경쟁할 때
미래통합당 전주혜(왼쪽부터), 이종성, 한무경, 조태용, 김용판 의원이 지난 10일 국회 본관 중앙홀에서 ‘모든 차별에 반대한다’ 성명서를 낭독한 뒤 ‘8분46초’ 동안 무릎을 꿇고 묵념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래통합당 전주혜(왼쪽부터), 이종성, 한무경, 조태용, 김용판 의원이 지난 10일 국회 본관 중앙홀에서 ‘모든 차별에 반대한다’ 성명서를 낭독한 뒤 ‘8분46초’ 동안 무릎을 꿇고 묵념하고 있다. 연합뉴스

백인 미국 경찰관의 무자비한 폭력으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한 사건의 파장이 세계적인 인종차별 반대 운동으로 확산되고 있다. 미국 일부 지역에서는 이 틈을 탄 약탈과 방화 등 집단적 폭력이 벌어져 우리 교민 등 또 다른 소수인종이나 사회적 약자들이 참담하고 안타까운 피해 상황에 내몰리기도 했다. 이 사건 발생 9일 만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인종차별은 용납할 수 없는 문제’라며 미국 경찰의 인종차별 범죄를 강하게 규탄하는 한편, 폭력시위에 대해서도 ‘자기파괴적이며 자멸적인 행위’라고 비판하면서 모든 폭력을 당장 멈춰달라고 호소했다.

유럽 프로축구 구단과 선수들을 포함한 세계의 유명인들도 목소리를 보탰다. 다행히, 이후 약탈과 폭력은 눈에 띄게 줄어들고 평화시위 양상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백인 경찰관들의 유색인종을 대상으로 한 폭력과 가혹행위들이 추가로 발생하고, 백인 청년들이 플로이드 사망 당시 모습을 철없이 재연해 온라인에 공개하고 공유하는 ‘플로이드 챌린지’를 이어갔다. 백인우월주의 테러단체 케이케이케이(KKK·큐 클럭스 클랜)단 리더를 자칭하는 백인 남성 해리 로저스(36)가 인종차별 반대 시위 군중을 향해 트럭을 타고 돌진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또 다른 케이케이케이단 소속 백인 남성이 시위대를 향해 총기를 휘두르다 검거되는 등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자칫 53명이 숨지고 수천명이 다친 1992년 ‘엘에이(LA) 폭동’의 재발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2016년 말 평화로운 촛불시위로 부패한 권력을 몰아내고 세상을 바꾼 우리 대한민국 시민의 위대한 지성, 시민정신과 비교되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원인과 배경이 된 ‘차별’과 ‘혐오’ 문제를 놓고 보면 우리 상황도 그리 나을 것이 없어 보인다. 저개발국 출신 외국인,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를 향한 차별과 혐오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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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혐오 부추기는 ‘이녹 파월의 후예들’

미국과 대한민국 모두 이러한 망국적인 차별과 혐오 뒤에는 정치인들이 도사리고 있다.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과 그 지지세력의 이민 반대, 백인우월주의적 정책과 발언들이 보수매체 등을 통해 확대 전파되고, 이후 극우성향 단체, 집단, 개인의 혐오표현과 증오범죄로 이어졌다. 나아가 인종차별 의식을 가진 경찰관들의 폭력 및 가혹행위로도 분출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우리 20대 국회도 가히 ‘차별과 혐오 발언의 경연장’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8년 예멘 난민 사태 당시 국회 법사위에서는 인종차별, 이슬람 혐오, 난민과 이주노동자 증오 발언들이 여과 없이 쏟아졌다. 대법관과 헌법재판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헌법재판소와 대법원 국정감사 현장에서는 ‘동성애를 찬성하냐, 반대하냐?’라는 잘못된 차별적 질문과 ‘동성애가 에이즈를 전파시킨다’는 등 근거 없는 괴담 등 성소수자 혐오 발언이 쏟아졌다. 잘못을 지적하고 문제를 제기해도 그때뿐, 시간과 장소가 바뀌면 똑같은 차별과 혐오 발언이 계속되었다.

미국과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외국인과 이민자, 소수 유색인종, 난민, 성소수자 등에 대해 차별과 혐오 발언을 지속하는 것은 그들의 소양과 지성이 부족해서만은 아니다. 한번 실수라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문제를 지적받고도 지속하는 것은 분명히 ‘고의적’이다. 윤리적, 도덕적, 학술적으로 잘못된 것일지라도 득표나 지지 획득에 도움이 된다는 ‘정치적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특히 경기 침체와 높은 실업률 등으로 자국의 주류 그룹 사이에 불만이 팽배할 경우 외국인, 소수인종, 사회적 소수자 등 ‘이방인’을 비난하고 공격하면 다수의 지지와 공감을 얻게 된다. 소수자 혐오를 부추기고 사회적 분열을 야기한다는 학계나 사회단체의 비판은 조금만 견디면 지나가버린다고 이들은 이미 학습했다. 중세 십자군 전쟁에서 대패한 뒤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자행한 ‘마녀사냥’과 ‘종교재판’이 그랬고, 세계를 전쟁의 참화로 몰아넣은 독일 나치의 ‘유대인 악마화’ 역시 마찬가지였다. 1923년 일본 관동대지진 당시 일본 내무성이 “재난을 틈타 이득을 취하려는 무리들이 있다. 조선인들이 방화와 폭탄에 의한 테러·강도 등을 획책하고 있으니 주의하라”는 내용의 지시를 각 경찰서에 하달한 이후 자행된 조선인 학살 사건 역시 궤를 같이한다.

현대 정치사에서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아마 1968년 영국 보수당 국회의원 이녹 파월의 ‘피의 강’(Rivers of Blood) 연설일 것이다. 고대 그리스 문학 전공의 교수 출신인 파월은 당시 영국 사회에 팽배한 국수주의, 인종주의에 호소했다. 너무 많은 이민자가 들어와 영국 내 일자리를 차지하는 바람에 실업률이 높아지고 영국인들은 일자리를 잃었다고 주장하며 당시 집권 노동당이 추진하던 ‘인종차별 금지법안’에 대한 강력한 반대 의사를 천명했다. 연설의 파장은 엄청났다. 학계와 언론, 시민사회단체는 파월을 맹비난했고 그가 소속된 보수당에선 파월을 징계하고 출당했다. 하지만 이른바 ‘샤이 보수’를 비롯한 다수의 영국 백인 유권자들은 파월에게 동조하며 총선에서 보수당에 표를 몰아줬다. 보수당은 예상외의 대승을 거뒀다. 파월은 정치적으로 몰락했지만, 그가 남긴 ‘더러운 유산’은 보수 우파에게 승리를 안겨준 것이다. 지금도 미국과 유럽의 극우 정치인들은 제2, 제3의 이녹 파월이 되어 극단적인 이민 반대, 외국인 혐오, 인종 차별, 성소수자 차별 발언과 정책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나라의 극우 성향 국회의원과 정치인들도 유사한 행보를 보였다. 다행히 1968년과 다른 점은 그사이 시민과 사회의 인식과 태도가 변하고, 집단지성의 작동 기제가 무척 발달했다는 것이다. 플로이드 사망 사건 이후 미국 대선후보 지지 여론조사 결과나 우리나라의 21대 총선 결과가 보여주듯, 눈앞의 이익과 선동에 휘둘리는 극우 국수주의 성향 시민은 소수가 되었고, 인류 보편의 가치와 이상을 공유하는 민주 시민이 다수를 차지하는 것이 21세기의 현실이다. ‘제2의 이녹 파월’이 나타나는 정당이나 정파는 거의 예외 없이 냉혹한 여론의 심판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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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을 현혹하는 ‘차별의 논리’

지난해 10월17일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회원들이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열린 ‘혐오와 차별 해소를 위한 각 정당의 입장에 대한 질의서’에 대한 응답을 촉구하는 항의 집회에서 춤을 추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지난해 10월17일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회원들이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열린 ‘혐오와 차별 해소를 위한 각 정당의 입장에 대한 질의서’에 대한 응답을 촉구하는 항의 집회에서 춤을 추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인종차별의 뿌리는 깊다. 그리고 그 뒤에 도사린 악마적인 이익의 크기도 막대하다. 미국의 인종차별은 1501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유럽인들이 사탕수수·목화 등을 대규모로 재배하기 위해 아프리카에서 원주민을 사거나 납치해 온 ‘흑인 노예’ 제도가 그 뿌리다. 어쩌면 일제강점기에 조선인을 미개한 이등 시민 취급하며 학도병, 일본군 ‘위안부’, 노동자로 강제동원하고 잔혹한 차별을 자행한 맥락과 매우 유사하다. 학식과 교양이 있는 백인 상류층이 같은 인간을 소나 말 등 가축과 같은 ‘상품’, ‘재산’으로 취급하고 소유의 대상으로 삼으며 무자비한 매질과 고문, 성폭력 등을 자행한 ‘흑인 노예 제도’는 사이비 기독교 속설인 ‘카인의 후예’론을 바탕으로 해서 가능했다. 대규모 사탕수수·목화 농장을 운영해 큰 이윤을 남기기 위해서는 대가도 받지 않고 강도 높은 노동을 할 인력이 필요했던 자본가들이 생김새가 다른 아프리카 흑인들을 노예로 삼을 수 있는 논리적 근거와 합리화의 명분을 기독교 속설에서 찾아낸 것이다. 5~6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아르메니아 동방교회의 성서 <아담 북>(Adam Book)에 “하느님이 카인의 얼굴을 내리치사 그의 얼굴이 마치 석탄처럼 검게 변했으며 그 이후 카인의 얼굴은 계속 검은색이었다”는 내용이 기술되어 있었다는 주장이 제시된 것이다. 정통 기독교에서 인정하는 성경 해석도 아니고, 진위가 확인된 것도 아니었지만, 백인 자본가들의 이해에 부합하는 주장이었기에 마치 진리인 듯 받아들여졌다. 노예제도가 폐지되었고, 인종차별은 범죄가 되었지만, 여전히 할리우드 영화나 드라마, 신문, 잡지 등에는 흑인이 어둡고 음험한 역할과 이미지로 자주 등장해 대중의 무의식 속에 ‘카인의 후예’ 속설을 깊이 각인하고 있다. 특히 백인이 다수인 미국 경찰은 공식 교육과 훈련에서는 인종차별 금지를 강조하지만, 이들의 하위문화나 법집행 관행에는 인종차별이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다. 통계상 범죄 비율이 흑인·히스패닉 등 유색인종에게서 높게 나타난다는 점을 내세워 검문검색과 단속 활동을 흑인 등 유색인종 중심으로 하는 ‘인종 프로파일링’(racial profiling)이 행해질 정도였다. 하지만 우리의 ‘유전무죄’ 문제처럼, 같은 범법행위를 한 백인과 유색인종에 대한 경찰과 검찰, 법원의 대응이 달라 백인보다 유색인종 범죄율이 과도하게 공식 범죄통계에 반영된다는 것이 다수의 범죄학 연구와 조사에서 밝혀졌다. 이런 사실을 간과한 대표적인 ‘통계 오해 내지 악용 사례’로 꼽히는 인종 프로파일링은 클린턴 대통령이 금지 명령을 내리고, 법무부에서 금지하면서 공식적으로 불법화되었다. 하지만 미국 경찰 실무에서는 여전히 실행되고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발표되고 있다. 우리나라 보수 정치인들이 자주 사용하는 ‘외국인 범죄율이 높다’, ‘동성애가 에이즈를 퍼트리는 주원인이다’, ‘5·18 광주민주화항쟁은 북한 특수부대원 600명이 주도한 것이다’ 등 차별과 혐오를 부추기는 가짜 논리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럴듯한 허위 혹은 유사한 사진, 경험담, 통계 등을 가져와 마치 사실인 양 대중을 속인다. 그 허위와 기만을 밝히긴 쉽지 않고 지난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잘 아는 정치인들이 대중을 속이고, 쉽게 선동해서 지지세력을 결집하고 정치적 이익을 챙기기 위해 이녹 파월처럼 선동해 ‘차별의 논리’를 내세우고 전파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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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혐오의 정치를 끝내자

세계에서 가장 돈 많고 힘센 나라 미국. 민주주의와 인권의식에서도 선진국임을 내세우며 다른 나라에 외교간섭과 군사개입까지 해오던 ‘세계 경찰’ 미국도 인종차별이라는 뿌리 깊은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세계인의 신뢰와 존경심을 잃게 될 것이 분명하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확장된 G7(G11 혹은 G12)’의 일원으로 세계 경영에 동참해달라는 요청을 받는 대한민국도 마찬가지다. 미국 흑인들처럼 일제로부터 뼈에 사무치는 차별 피해를 겪은 우리가 아시아·아프리카 출신 외국인들을 차별하는 것은 자기부정이다.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자행하면서 ‘카인의 후예’와 유사한 엉터리 합리화 논리를 동원한다면 부끄러운 자기기만이다. 다행스럽게도 미래통합당 초선 의원들이 모든 차별에 반대한다면서 단체로 한쪽 무릎을 꿇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그동안 소속 정당이 강하게 반대하던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찬성, 아니 입법 발의와 통과를 주도하는 ‘행동’으로 이어진다면 그 진정성을 인정받을 것이다. 민주당 내에도 그동안 성소수자 차별 발언을 공개적으로 한 의원들이 있었던 만큼, 누가 진정 차별과 혐오의 정치를 끝내는 참자유수호자, 진정한 민주주의 선도 정당인지 경쟁할 때가 도래한 것이다.

국제연합(UN)에서 호소하듯, ‘다양성은 위협이 아니라 장점’이다. 미국 경찰의 인종차별 살인 범죄를 규탄하고, 백인우월주의 극우 정치 종교인들의 억지 주장을 비판하며, 모든 종류의 폭력에 반대하는 국제표준, 시대정신에는 여야 좌우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우리 안의 혐오와 차별, 폭력에 대한 반대 역시 마찬가지다. 21대 국회의원 전원, 그리고 모든 정당이, 한쪽 무릎을 꿇은 미래통합당 초선 의원들의 뜻과 의지에 동참해 차별과 혐오의 정치를 끝내고 차이를 존중하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자유와 민주주의에 기반한 멋진 ‘정치 경쟁’을 시작하기 바란다.

▶표창원: 전직 국회의원이자 ‘범죄 프로파일러’인 표창원 박사가 의원으로서 보고 듣고 겪은 사실과 언론과 정부, 대중 등 정치 환경, 정치인 언행의 동기와 의도 등을 종합·분석해 독자들에게 보고한다. 한국 정치의 병리현상을 해부하고, 문제의 원인을 추적해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국민을 위한 국회와 정치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염원을 담았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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