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2018년 11월13일 국회의원을 상대로 불법 후원금을 제공한 의혹을 받는 서울 마포구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뒤 자료를 상자에 담아 나오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2017년 5월 대선 결과로 여야가 뒤바뀐 직후 한 보수 야당 국회의원한테서 연락이 왔다. ‘우리 지역에 좋은 분이 있는데 여당 의원을 소개해 달라고 한다’는 것이다. 어떤 분이 왜 소개를 해 달라는 것인지 물었다. ‘아주 좋은 분이고, 다른 이유 없이 좋은 여당 의원을 만나보고 싶다고 하니 한번 만나만 달라’는 답이 돌아왔다. 바쁜 일정 등을 이유로 여러 차례 만남을 미룬 뒤에도 요청이 이어져 결국 공개된 장소인 의원회관 2층 로비에서 보좌진과의 만남에 동의했다.
약속 장소에 갔던 보좌진이 사색이 되어 돌아왔다. 자기소개를 마친 뒤 용건을 물으니 의원을 직접 만나고 싶다고 해서 그럴 수 없다 하니 현금이 든 봉투를 내밀더라는 것이다. 바로 정색을 하고 거부한 뒤 돌아왔다고 했다. 얼마 후 후원금 계좌 관리 직원이 고액 후원금 입금 보고를 했다. 바로 그 사람이었다. 후원금을 돌려보낸 뒤 보좌진을 통해 후원금을 받지 않겠다고 밝힌 후 다시 한번 이런 행위를 하면 ‘뇌물 공여’ 혐의로 신고할 것이라고 강한 경고를 보냈다. 이후 연락이 없었다. 과연 반성하고 ‘정치 로비’ 시도를 포기했을까, 아니면 다른 의원으로 목표 대상을 변경했을까? 혹시 야당에서 나를 ‘비리 정치인’으로 만들기 위해 꾸민 공작은 아니었을까 의심이 들어 소개해준 야당 의원과 주변의 동향을 살폈지만 특이한 정황은 발견할 수 없었다. 여당 의원을 만나려 했던 그 사람은 지역의 한 민간단체장으로 자신과 자신이 대표하는 단체의 이익을 위해 국회와 정부, 지방자치단체 등을 대상으로 민원 청탁 등 로비가 필요했던 사람이라는 평가를 확인했다.
고액 후원금 들고 찾아온 사람
이런 식의 접근과 만남, 관계가 국회와 정치권에 만연해 있을 가능성을 확인한 경험이었다. 3년여가 흘러 21대 국회가 출범했는데 여전히 의원들의 ‘비리 의혹’이 보도되고 있다.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에서 불법 의혹이 큰 거액의 후원금을 받은 의원들에 대해 경찰
이 지난해 9월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지만 검찰은 의원들을 형사입건하지 말라며 반려(결국 최근 경찰 내사 종결)해 현재 논란이 되고 있다. 여야 의원들이 지역구 지방선거 출마 후보자들한테 거액 후원금을 받은 사건도 기사와 비난 댓글만으로 유야무야 넘어가고 있다. 권력을 이용해 원하는 방향으로의 법 개정이나 정책 입안, 국정감사 증인 배제, 맞춤형 질의 등 편의나 이익을 제공한 대가로 거액의 금품을 받은 국회의원 등 고위 공직자와, 본인 혹은 지인 자녀들에 대한 불법 특혜 채용 이익을 얻은 혐의를 받는 전·현직 국회의원들과 관련된 재판도 여러 건 진행 중이다. 청탁을 하는 자와 받는 자 간의 만남, 사건의 구체적인 차이와 다양성은 있지만 구조와 원리는 같다. 두 가지 질문을 던진다. 첫째, 과연 드러나고 밝혀진 것이 전부일까. 둘째, 부패한 정치인들 개개인이 문제인가, 아니면 구조와 제도 문화와 관행이 더 큰 문제인가.
범죄학과 행정학 등 부정부패를 연구하는 학문에선 부패 공무원을 사과상자 속에서 발견된 ‘썩은 사과’(rotten apple)에 비유해왔다. 한쪽에선 ‘대다수는 깨끗한데 일부 부패한 개인들이 있으니 이들을 발견해 색출하고 처벌하면 된다’는 주장을 한다. 깨끗한 사과를 담은 상자 속에 실수로 썩은 사과 몇개가 들어갔으니 눈에 보이는 썩은 사과만 골라내서 깨끗한 사과로 바꾸면 된다는 ‘과일 유통·판매 회사’의 시각이다. 반면에 밝혀지고 드러난 부패행위자들은 단지 ‘빙산의 일각’이기 때문에 이들이 부패행위를 할 수 있게 만들거나 돕거나 방치한 구조와 환경을 개선해야 문제가 해결된다는 시각이 있다. 눈에 보이는 위쪽 사과가 썩을 정도면 아래 깔린 사과들은 생산과 포장, 유통 과정에서 더 많이 썩어 있을 것이기 때문에 전면적인 조사와 문제 해결 노력을 해야 한다는 소비자단체의 시각과 유사하다.
정답은 당연히 ‘둘 다 문제’다. 대책 역시 개별 부패행위자를 철저히 찾아내서 엄하게 처벌하는 한편, 발견된 사례가 예외적인 특별한 사례가 아니라 음습한 만남과 은밀한 거래가 만연한 구조와 제도, 문화와 관행의 결과일 수 있다는 전제 아래 전면적인 조사를 거쳐 개선책을 강구해 나가야 한다. 몇몇 심각한 부패 정치인 사례를 일반화해 ‘모든 정치인은 썩었다’는 정치혐오로 확산돼서는 안 된다. 하지만 국회의원과 정치인의 부패 비리는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고, 법안이나 질의는 물론 전화나 만남 등을 통해 자신이나 지인의 이익을 도모한 ‘이익 충돌’ 의혹 역시 무수히 제기됐다. 정치자금이나 후원금 회계 문제, 외유성 출장 등 세금 낭비 사례 역시 고장난 레코드처럼 반복된다. ‘정치는 그런 것’이라는 합리화 논리도 퍼져 있다.
사과가 문제일까, 사과상자가 문제일까
정치인들이 자신의 부패와 비리, 그리고 이익 충돌 문제에 둔감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인식을 가지고 있는 데엔 분명히 이유가 있다. 이들이 행정부 공무원이나 기업인, 시민단체 관계자 등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거의 완벽을 요구하는 듯 무섭고 철저하고 엄격한 기준과 잣대를 들이대는 것을 보면, 부패와 비리 및 이익 충돌 전반에 대해 무지하거나 무감각한 것은 결코 아니다. 일부 국회의원과 정치인들 사이에는 법안 제출이나 회의 석상에서의 발언, 피감기관이나 행정부처, 공공기관, 기업 등에 대한 요청 혹은 요구 등을 무제한으로 할 권한이 있다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특정인, 업체, 집단 등의 이익을 위해 법안을 제출하고 관련 장관을 질책하고, 고위급 담당자를 의원실로 불러 혼내거나 전화를 걸어 호통을 치는 것도 정당한 ‘정치’ ‘의정활동’이라고 생각한다
. 이와 관련해 후원금 또는 향응을 제공받거나 지인의 채용이나 인사 등 특혜를 받는 것도 유죄 판결을 받을 정도의 지나친 경우만 아니라면 ‘통상의 업무’ ‘선의의 표시’라고 여긴다.
심지어 그 결과로 이익을 얻은 집단이나 단체가 자신과 소속 정당을 지지하고, 선거 승리에 도움이 된다면서 ‘매우 훌륭한 정치활동’이라고 널리 자랑하기도 한다. 일부 지역구 의원들은 지역 유지나 영향력이 큰 사람이나 업체, 단체의 청탁을 ‘정당한 민원’으로 중시하고 그들의 이익을 국회에서 대변하거나 관련 부처 등을 압박해 업무나 정책, 규정 등에 무리한 변경 등을 하게 하는 것을 ‘정치 역량’이라고 과시한다. 청탁성 민원을 제기하는 쪽에서는 늘 ‘억울하고 부당한 피해’를 강조하고, ‘자신만을 위한 일이 아닌 사회 공익의 문제’라고 강변하며 의원과 정치인들의 심리적 부담을 덜어준다. 하지만 그 구분은 권투 선수가 링에서 글러브를 낀 채 휘두르는 펀치와 조직폭력배가 선량한 시민에게 휘두르는 폭력의 차이처럼 명확하다. 신고, 제보, 고발 등으로 ‘걸리면 비리’가 되지만 그러지 않으면 ‘정당한 권한과 업무’로 인식하는 위험한 사고 구조를 가진 정치인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지난 18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9 한국의 사회지표’는 여전히 국회가 국가기관 중 ‘가장 신뢰받지 못하는 기관’임을 확인해주었다. 군대(48%)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압도적인 신뢰도 꼴찌(19%)를 기록한 것이다. 일은 안 하고 싸움만 하는 국회, 정쟁과 당리당략에 매몰된 정치 등 수십년째 반복되고 있는 문제가 이토록 고집스럽게 개선되지 않고 있는 영역이 또 있을까.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 바닥과 중심에는 ‘권력이 주는 단맛’을 결코 잃고 싶지 않은 반면, ‘권력을 잃은 비루함’을 견디기 싫은 1차원적 욕구가 짙게 깔려 있다. 권력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닐 것이다. 사회를 개혁하고 정의를 구현하고 강자로부터 약자의 권리를 지켜내는 힘 역시 권력에서 나온다. 정치인, 정치집단 혹은 정당이 스스로 옳다고 믿는 이념과 가치, 그리고 정책을 실현하기 위한 ‘선한 권력의지’를 공정하게 발휘하라고 만든 것이 선거와 정당, 국회 등 정치 관련 법과 제도다. 그런데 그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장치와 수단과 방법에 기를 쓰고 저항하는 이유는 ‘불공정이 주는 이익’ ‘기득권의 유리함’에 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선거에 이기면 수없이 많은 공직 혹은 공직 유관 일자리에 동지나 측근, 지인, 신세 진 사람을 앉히는 모습을 모든 국민이 지켜본 것이 이미 수십년째다. 국회의원 만나서 밥 사고, 술 사고, 골프 접대하고, 돈을 주거나 고액 후원금을 내려는 사람이 줄을 서는 현상을 보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반대로 ‘낙선한 정치인은 사람과 동물 사이에 있는 비참한 존재’라는 말이 정치권에 퍼져 있다. 야당이 되면 사납고 전투적이 되는 것도 유사한 이유다. 이렇다 보니 스포츠처럼 엄격한 규칙을 지키며 공정한 경쟁을 하면서 ‘질 수도 있는’ 예측 불가능한 긴장된 상황을 허용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정치란 그런 것’이라는 합리화 논리를 내세우며 이익 충돌 금지, 독립적 윤리조사제도 구축, 윤리특위 상설화 등의 국회 윤리 강화 제도 마련에 소극적이다.
2017년 12월14일 오전 국회 정치개혁특위 정당 정치자금법 심사소위원회가 국회에서 회의를 하기에 앞서 여야 의원들이 인사를 나누고 있다. 가운데는 자유한국당 소속의 김재원 소위원장.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정치적 음해’ 주장 버릴 때가 됐다
비리 정치인을 도려내고 정치와 국회의 청렴성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솔직함’과 ‘용기’가 필요하다. 의혹을 무마하고, 혐의를 축소하고, 감추고 덮는 구태는 문제의 본질과 깊이를 파악하지 못하게 가로막는다. 구태를 이겨내려면 솔직한 인정과 문제해결에 뒤따를 충격과 손실, 비용과 변화의 무게를 감당할 용기가 필수적이다.
첫 단계는 ‘제 식구 감싸기’ 척결이다. 흔히 ‘내로남불’로 불리는 한국 정치의 고질병을 애용하는 이들이 비리 정치인들이다. 자기편을 향해 ‘정치적 음해 피해’를 강조하며 ‘다음번엔 당신이 나처럼 될 수 있어’라고 호소하면 집단적 ‘의리’가 발동된다. 물론 과거에 실제 정치권력, 사법권력, 검찰권력에 의한 비리 조작 사건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과장하고 부풀리거나 혹은 반대로 축소하고 왜곡하려는 시도들은 지금도 발생할 수 있다. 철저히 경계하고, 대한민국 역사가 구축한 진실규명과 사법 시스템에 의한 적법 절차를 신뢰하고 지켜보며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정치와 수사, 사법 절차는 철저히 분리되어야 하며 상호 독립성을 존중해야 한다.
다음 단계는 정치 비리 사건의 원인에 대한 철저한 규명이다. 정당이나 정파 간에 서로 상대방의 비리 혐의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시도하는 순간, 철저한 원인규명은 엄두도 내지 못하게 된다. 셋째 단계는 비리의 원인으로 작용한 법과 제도의 미비를 개선하고 문화와 관행을 고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개선과 개혁의 결과를 점검하고 분석해서 미비한 부분을 보완하거나 추가 개선, 개혁을 실시하는 ‘정치개혁의 제도화’를 이루는 것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케이(K)-방역, 케이팝, 문화 한류, 경제와 기술 수준을 일궈낸 대한민국 국민은 이제 그 국민 수준에 맞는 깨끗한 정치, 신뢰할 만한 국회를 가질 때가 되었다.